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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영 / 집단 속의 개별성

박영택

집단 속의 개별성

화면에는 사람들만이 가득 들어차있다. 빽빽하고 조밀하다. 다양한 얼굴들이 그득한데 그만큼이나 다채로운 얼굴의 생김새와 표정, 옷의 색채, 문양 등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무리를 이루고 있는 그들은 집단적인 행동,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그것인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대부분 무표정하고 무감각한 얼굴, 기계적인 동작, 획일적인 틀 안에 채워져 있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접했던 무수한 군중들, 스치듯 지나가고 파도처럼 밀려오고 거품처럼 사라져버린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기억하면서 그린 것 같다. 동시에 그들이 짓고 있는 표정, 동작, 시선을 떠올려보았다.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가 보고 느낀 인간에 대한 여러 상념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의 얼굴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작가는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다양한 생김새와 표정을 지녔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획일적이고 엇비슷한 안면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가 벽이 되어 서있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면서 외면하고 있다. 무관심하고 무표정하고 차갑고 지친 표정들이다. 입을 꾹 다물고 무표정한 체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도시에서, 거리에서, 주변에서 늘상 만나는 얼굴이 저런 얼굴이다. 그 얼굴들은 작은 상처가 되고 기이한 충격이 되어 망막에, 가슴에 자꾸 쌓인다. 그것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부풀려준다. 그러면 머리는 물 먹은 솜처럼 묵지근하다. 여러 상념이 안으로 쌓이고 누적되어 가라앉는다. 저 사람들은 누구일까? 왜 저런 표정, 행동을 할까? 무엇을 위해 살까?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나는 이런 풍경이 낯설다. 나는 이 삶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이런 식의 삶이 아닌 다른 식의 삶을 꿈꾼다. 주어진 현재의 삶의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는 그들을 보면 나는 어딘지 낯설고 이질감이 든다. 그들 속에 끼지 못하고 섞이지 못하는 나는 이방인이다. 스스로 강한 소외감을 느낀다. 아마 작가 오영의 마음과 생각이 그런 것이었던 가 보다. 나하고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이들은 거대한, 단호한 차가운 벽과 같다. 해서 작가는 그런 얼굴들을 화면 가득 채웠다. 이 작가가 느끼는 현대인이자 주변사람들의 풍경이다. 아마도 작가는 일정한 유학기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서 그런 이질감을 예민하게 느낀 것 같다. 자신이 유학했던 유럽과 무척 차이를 보이는 이곳 대한민국의 삶과 사람들의 모습은 분명 심리적인 갈등이랄까. 공황이랄까 혹은 이곳 풍경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한 것 같다. 그런 시간 속에 생명력이 없고 어딘가로 몰려다니는 동시대 한국인들을 그려보게 되었다. 한국사회를 보니 사람들 간에 막연한 적대감과 폭력적인 부분이 많고 타인을 배려하거나 인정하기 보다는 과도하게 간섭하거나 거칠게 대하는 한편 집단적으로 강제하는 부분이 유독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경험이 그녀로서는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곳 현실계에 잘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 그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고민거리이자 실존적 문제이며 따라서 그것이 자연스레 그림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이런 삶에 적응이 안 되는 본인을 위한 그림이다. 이른바 ‘개밥에 도토리’거나 섞이지 못하고 기름처럼 겉도는 자신의 심리는, 그 내면을 그림으로 그려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회나 현실적 삶의 틀에 잘 적응을 해서 살아가는데, 다들 의심없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유독 나만 왜 이런 삶이 불편하고 의심스럽고 불안할까? 공연한 까탈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어째든 오영이 본 한국인들은 이 사회에 다들 적응을 잘하는 것으로 보이며 다들 의심없이 똑같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무척 의심스럽고 기이했다. 기이함과 궁금증은 그녀를 화폭 앞으로 호출하고 있다. 따라서 오영의 그림그리기는 결국 현재 자신의 내면과 머릿속에서 떠도는 생각을 형상화하는 일이자 이를 외부로 유출하는 일이다. 자기 생각을, 개념을 이미지로 풀어내는 일이 그림인 것이다.특유의 얼굴들이 그려져 있다. 코와 인중, 삼각형으로 자리한 입술 그리고 굵은 목과 어깨가 유난히 두드러지고 강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실적인 재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파악하기 어려운 그림도 아니다. 불쑥불쑥 차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짜깁기한 그들 무리는 기이한 부조화의 만물상이 되었다. 작가는 삶에서 파생되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느낌을 그렸다. 그림은 전통적인 그리기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자가만의 형상화로 불거져 나온다. 다분히 개성적인 형상회화다. 획일성에 저항하는 주제에 연결되게 그림 자체도 어딘지 생경하고 낯선 방식으로 그려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각형의 한정된 화면에 밀집된 인간들은, 그 얼굴들은 강제된 상황을 은유한다. 어딘가에 박혀서 옴짝도 못하는 상황성이 감지된다. 유사한 옷과 거의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게 한결같이 줄을 서고 있거나 도열해 있는 구성 안에 한, 두 사람만이 그와는 반대되는, 거스르는 포즈, 표정, 옷차림을 하고 있다.

마치 숨은 그림찾기를 하듯 눈여겨 살펴보아야 발견한다. 그들은 집단적 체제 안에서 파열음을 낸다. 자신의 개별성, 개체성을 주장한다. 다들 똑같은 방향에 시선을 줄때 유독 한 사람만은 다른 곳에 시선을 준다. 다른 색의 피부, 머리스타일, 옷차림을 보여준다. 다른 시선처리를 지녔다. 결국 작가는 집단 속에 이질적 존재 하나를 심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고 집단 속에서 그녀가 바라는 삶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전체주의에 반하는 것, 진정한 개인성으로 사는 것,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예술이 추구하는 길이다. 진정한 아티스트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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