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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

박영택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


1839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세계 최초로 카메라의 발명이 공표된 이후, 사진은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제 사진이 단순한 기술의 차원을 넘어 독자적인 예술장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미술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열리는 수많은 전시 중 상당수를 사진이 차지하고 있으며 주요 기획전 역시 사진 매체가 두드러지게 자리하고 있고 미술시장에서도 역시 사진이 중요한 상품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사진의 르네상스,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사진이 미술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심 매체가 된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라 사진이 현대미술의 리더가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현대미술이란 동시대 혹은 최근의 미술을 지칭한다.) 이는 사진작가들이 현대미술의 중심 리더가 되었다는 말이기 보다는 사진이란 매체가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현대미술의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현대미술계에서는 장르와 전공을 불문하고 다양한 작가들이 사진을 흥미롭게 다루면서 자신의 작업세계를 전개해나가고 있음을 본다. 카메라는 간단한 조작술만 익히면 누구나 쉽게 촬영할 수 있고 더구나 디지털카메라와 컴퓨터의 등장은 매우 간편하게 이미지를 전유하고 활용, 조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특히 오늘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각환경 자체가 이미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진이미지로 도배되고 있기에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들에게 사진은 더 이상 회화나 다른 미술장르, 매체와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게 되었다.

알다시피 화면은 2차원적인 평면이다. 사진이미지가 얹혀지는 인화지 역시 납작한 평면, 피부에 불과하다. 평면에 빛으로 그려진 하나의 ‘상’이 바로 사진인 것이다. 그렇다면 2차원에서 3차원을 재현하는 것은 회화의 수법의 문제이자 사진의 문제이기도 하다. 회화와 사진은 모두 피부위에서 그 어떤 환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둘 다 평면에서 보여줌과 동시에 눈으로 사물, 세계라는 3차원을 재현하는 것이다. 우리 몸이 지각한 현실의 한 단면이 평면, 피부위에서 기이한 환영적 체험을 야기하는 것이 회화이고 사진이다. 특히나 사진은 표면에서 실제적인 외부 환경을 입체적으로 환기시키는데 그것이야말로 사진이 지닌 미묘한, 불가사의한 힘일 것이다. 사진은 그런 힘을 이용해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 세계를 작가의 눈과 감성으로 다시 보여주면서 모종의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사진이란 매체를 공유하지만 이들에게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나 개념의 도상화가 아니라 사진이란 매체 자체를 질문하고 사진이 구체적인 실세계를 담아내면서 그것이 평면위로 안착되어 오는 과정에서 야기하는 지각체험을 문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사진이 담보하고 있는 객관성과 재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거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세계의 상들을 사진으로 다시 보여줌으로써 그 대상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사실 모든 이미지는 그것 자체로 머물지 않고 보는 이들에게 보는 즐거움과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uruth, 1954-)는 1973년부터 1980년까지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에서 베허와 리히터에게 사진과 회화를 배웠으며,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사진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유럽, 아시아, 미국 등지의 거리, 빌딩, 광장, 그리고 미술관 등 무의식적인 생활공간을 객관적인 시각과 거대한 규모로 포착한 사진을 통해 유명해졌다. 스트루스의 사진은 일상의 평범함이나 이외의 장소를 주변적인 시각으로 담아냄으로써 규모가 거대한데도 불구하고 친근감을 주며, 사회나 문화의 상황을 반영하는 효과를 주는 사진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그는 몰개성적인 유형학적 거리 풍경에서 박물관 내부의 중성적 문화풍경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의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미술관 사진 시리즈(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회화, 조각, 건축 등의 미술작품, 작품을 보는 관람자, 그리고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이란 세 가지 모티프를 촬영한 것이다. 그는 미술관 사진을 통해 사진의 발명과 회화의 환영 문제, 사진 발명 이전과 이후의 변화된 미술의 역사에 대해 언급하였다. 또한 미술관에 끊임없이 들고 나는 관람자까지 촬영함으로써 작품과 관람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또한 사진의 객관성을 이용하여 작품이 놓인 공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전시 공간과 전시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렇게 사진을 통해 미술에 대해 언급하는 메타적 특성은 그의 미술관 사진이 사진의 발명 이후로 시작된 사진과 미술의 관계 사이의 접점에 위치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제도화된 특정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주목하고 있으며 시대적 변화 속에서 달라진 공간, 장소의 역할 또한 드러내고 있다.

그의 최근작 역시 오늘날 세계의 어떤 공간을 보여준다. 특정 장소를 촬영했다.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첨단의 장비로 촘촘히 무장한 공장, 산업시설 등이 그것이다. 컴퓨터와 알 수 없는 정밀한 기계에서 빠져나온 복잡한 선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거대한 규모로 조립되고 구축된 시설, 그 시설의 내부를 자잘한 나사와 못, 기계부품과 금속성의 도구들, 장비들이 순대를 채운 당면과 여러 내용물처럼 가득하다. 차가운 금속성, 다채로운 색상들, 온갖 형태를 지닌 완벽하고 정밀한 기계들이 느닷없이 시선에 가득 차오르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저런 기계와 장치, 부품과 전선으로 인해 이 세계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도 하고 전기도 사용하며 자동차를 타거나 이러저런 물건들도 구매하고 쓸 수 있는 것이다. 새삼 현대과학과 기계문명이 이룬 놀라운 경이를 목도한다. 동시에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무심하게 넘겼던 어떤 내부, 시스템을 보고야만 그런 느낌도 든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삶은 저런 기계와 부품의 정교한 작동에 의해 섬세하고 치밀하게 조율되고 있고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혀 모르거나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은폐되어 있는 것들, 그러나 그것이 없어서는 이 세계도 없는 그런 것들이다. 이 사진을 찍은 스트루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른바 유럽사진계, 그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독일사진계의 중심에 서있는 이다. 독일은 80년대 유럽을 휩쓸었던 자국의 전형적 다큐멘터리 스타일, 즉 유형학(Typology)적 스타일을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에 접목시켜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킨, 현대사진의 중심국가다. 여기서 유형학이란 원래 낱낱이 존재하거나 다양한 현상 사이의 차이에 착안하여 그 차이 중에서도 비슷한 점을 추상하고, 이것을 기초로 몇 개의 유형을 설정하고 분류함으로써 그 본질을 이해하려는 연구방법론을 말한다. 사진을 이용하여 유형을 분류하고 기록하는 일은 사진매체 자체의 특성과 잘 부합한다. 사진이 정밀성, 객관성, 중립성에 적합하기에 그렇다. 스트루스 역시 특정 공간을 유형학적으로 채집, 분류, 반복함과 동시에 객관적이고 비개성적이며 격양되지 않는 어법으로 사진을 촬영, 최대한 정밀한 사진을 제작한다. 그러니까 그의 사진은 방법적으로는 유형학을, 형식적으로는 대형컬러사진을 사용한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고전적인 작품에서 따온 듯한 섬세한 구성과 색감, 장식성, 그리고 그런 사진을 독특한 장치 속에서 반짝이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디아섹이 그것이다. 디아섹이란 플렉시글라스 판과 사진을 화학작용으로 밀착시킨 뒤 프레임으로 고정시키는 방법을 지칭한다. 먼지나 공긴, 여타의 접착흔적이 남지 않고 매우 선명한 사진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데 무척 감각적이고 고급스러우며 완벽한 물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진은 다분히 독일민족답다. 엄격성, 중립성, 중성적 태도는 독일 사회와 문화적 특징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하겠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트루스는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학 후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그림을 공부하다 사진을 접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사진의 발명은 화가들의 것이었고 그것은 보이는 대상, 사물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기계적 수단을 활용하다 결국 사진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는 사진과 회화의 구분이나 경계는 더 이상 없다. 화가들 역시 사진을 참조하고 활용하면서 보다 색다른 이미지를 창안해내거나 자기 식으로 사진을 보여준다. 스트루스는 전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미술관, 도시풍경, 산업시설, 거대한 기계와 컴퓨터시스템에 의해 조율되는 공간을 촬영했다. 몇 년전에는 한국에도 와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주로 도시풍경, 미술관, 공장의 내부나 산업현장을 찍고 있다. 그것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공간이자 그 공간에 사는 이들의 삶과 감각을 규정짓는 그런 장소다. 또한 수많은 사물들로 빼곡한 곳이다. 늘 보는 장면이지만 어딘지 장엄하고 기괴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모든 사진은 익숙한 장면을 새삼 낯설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인해 생각하는 거리, 반성의 지점이 확보된다. 그러니까 사진 한 장은 우리에게 새삼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다. 이미지는 생각을 복잡하게 해준다. 자연스레 그 이미지를 감상하고 해석하게 된다. 좀 더 근접해서 꼼꼼히 읽어나간다. 알다시피 사진이란 어떤 물체, 대상, 사건에 빛이 지나간 흔적을 말한다. 또한 사진은 단지 표면에 보여지는 대상이 닮음에 머물지 않고 좀 더 나아간다. 단지 형상의 지표가 아니라, 해석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간다. 사진은 작가의 의도가 담긴 하나의 작품이며 따라서 해석의 대상이 되는 하나의 상징인 것이다. 결국 한 장의 사진은 그 사진을 찍은 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코멘트이다. 문장이다. 스트루스의 사진은 형식적으로는 사진적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는 사진기법을 사용하여 표면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리얼리티를 강화하여 촬영한다. 조작이나 왜곡 없이 그대로 공장이나 산업시설의 내부를 찍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차가운 기록성의 다큐멘터리스타일이다. 인화지 위에 찍어낸 듯한 사진의 재현적 능력은 사진예술이 가진 공통적 속성이다. 그는 이러한 리얼리티를 더욱 강조하여 사진을 제작한다. 그런데 그의 이 투명한 사진이 좀 이상하게 다가온다. 분명 특정 장소를 기록하듯 촬영했지만 어딘지 순수한 기록은 아닌 듯 하다. 이른바 ‘불투명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지점이 균열을 일으키고 ‘에러’를 발생시킨다. 그의 사진은 대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며 가리키고 있는 지표라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도구로서 사진을 이용하고 참조하기 보다는 사진 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 자체를 하나의 해석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내용, 이미지를 통해 좀 더 다른 것을 생각하게 해주려는 것이다. 이른바 이런 사진을 개념적인 사진이라고 한다.

그는 동시대의 공간을 주목했다. 우리 시대의 사회, 문화, 경제, 산업적 상황을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풍경이다. 공간은 비어있는 곳이 아니다. 공간은 사람들이 삶과 감수성을 규정하고 강제한다. 그리고 결국 모든 공간은 한결같이 사회적 제도 속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그가 보여주는 이 공간은 도대체 무엇일까? 오늘날 현대문명을 구축하고 있는 거대한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의 사회는 어떤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고 조율되는가? 이 같은 공간과 사람들의 삶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런저런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의 사진은 거리, 건축물, 공간 등 각각의 피사체 자체를 다루고 있기 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체계 속에서의 다양한 관계를 보여주는 편이다. 그는 객관주의적 표현양식을 빌어 우리에게 모종의 생각을 안긴다. 작가란 존재는 우리와 함께 늘상 보는 비근하고 일상적인 풍경, 장면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볼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다.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시선을 깨주는 이들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사진은 명확한 언어를 갖고 있는데, 사진의 언어라는 것은 사람, 건축, 풍경과 같은 주제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이러한 주제를 향한 사진가의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스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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