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박지혜 / 의지와 시간, 욕망의 대상 - 말

김종근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BC 576-480)는 우주의 지속적인 시간의 변화에 대하여 매우 상징적인 말을 남기고 있다. 그는 '인간은 한번 발을 담근 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속에는 이미 한번 담근 것은 되돌릴 수 도 없거니와 그것은 처음처럼 결코 똑같아질 수 없다는 시간의 불가항력적인 진실을 말해준다. 시간이라는 그 불가역적인 것에 대해 인간은 어떻게 하든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간을 거슬러 보기도 하고 반항 해 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찌 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안과 회한, 또는 새로움과 희망을 가질 뿐이다.

박지혜의 작품 속에는 시간에 대한 철저한 회상과 의식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마도 과거의 그의 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는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많은 생각과 이전에 가질 수 없었던 소중한 경험들을 했다고 했다. 병실에 누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발이나 다리를 다쳐 본 사람은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한 것인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음식을 먹을 수 없거나 금식해야 하는 사람은 먹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아마도 박지혜는 움직일 수 없는 병상에서 그 이전 자유롭게 활동하던 자유로움을 한없이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작품이 그의 개인적인 그리움이 작품으로 베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 중요하게 나타나는 말의 이미지는 그것을 반영하는 하나의 분명한 도상으로 해석된다.

그의 작품은 대략 세 가지의 형태와 표현 형식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평면의 화면에 작은 점들의 형태와 함께 앞을 향해 가는 말의 부분적인 형상이 전후로 나타나는 작품과 켄버스 외곽에 덧 붙여진 새의 날개. 또 하나는 사각형의 상자 속에 작은 돌들과 날개가 투명한 합성수지의 결정체 속에 안에 놓여있는 것. 마지막 다른 하나는 150마리씩 양편에 300마리의 말들이 같은 형태로 각기 다른 색채와 무늬로 제작된 설치형 작품이 그것이다. 우리는 약간은 다른 듯한 이 세 개의 화법 속에서 통일되는 하나의 공통된 작가 의식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떤 불가항력으로 닫혀진 것에 대한 깊은 의식과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강렬한 열정이 작품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작은 돌들 그리고 나뭇잎과 날개들이 상자 속에 갇혀져 있는 것. 이러한 오브제들이 투명한 합성수지속에 어떤 갇혀진 상태로 모습들을 드러낸다.

이렇게 동시에 그가 갇혀진 상태를 보여준다는 것은 벗어나려는 그의 의지조차도 갇혀져 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어딘가에 혹은 무엇인가에 갇혀진 상태의 드러냄은 곧 자유의 상태를 동경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그가 처한 현재의 상태 혹은 그가 이전에 지독하게 경험했던 상태로의 기억인 것이다. 그 기억에서 그는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 기억이란 아마도 그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의 경험과 추억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그가 중요하게 설치하게되는 소형으로 제작된 무수한 말의 형상들. 그 자유에의 집념이 집적되어 이루어낸 하나의 집합미의 결정체인 것이다. 하나의 하나의 말들에는 각기 다른 이미지와 그림들과 문양들이 장식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대형으로 만들어진 그 형태 속에는 그가 관습에 의해 길들여져 있는 말들에 대한 군상을 대변해준다.

그는 그의 작품들이 그러한 관습에 길들여진 말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고 했다. 그것은 그러한 관습적인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의 의지를 반영한다. 그러고 보면 그에게 이러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예술적 의지에 바탕에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내면세계의 명상적인 태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 경험의 공간에서 그는 시간을 반추하기도 하고 그러한 욕망을 무수한 말의 형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박지혜의 이러한 회화적인 관심은 몇 가지 또 다른 특질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무대 디자인적 요소와 장식성이다. 그의 말 모양의 표면에 쓰여지는 다른 색채들과 다양한 문양을 주목 해보자. 이 다양함 속에 문양들에서 우리는 그가 회화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장식적인 공간을 배려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인식은 결국 그가 설치를 하게 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까지를 통하여 우리는 그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예술적 의지가 그의 작품 속에 비교적 내밀한 언어인 말이란 대상으로 형상화되고 있음을 감지 할 수 있다. 그러한 경험 속의 시간이든, 기억 속의 시간이든 말은 그러한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대상으로 감정 이입된 형태이다. 그러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의지가 현재로서는 그의 말 그림에 가장 중요한 화두로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면 듀러는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표현을 젊은 모습, 중년의 모습, 노년의 모습으로 화폭 속에 담아낸다.
많은 예술가들이 시간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듯이 어쩔 수 없는 인간 시간의 불가역성을 어느 철학자는 '나는 점점 늙어가지만 봄은 해마다 다시 온다'. 고 했고 플라톤(Platon)은 '시간은 움직이지 않는 영원의 움직이는 모상'이라 했으나, 시간의 본질은 불변이 없다는 것이다.

박지혜의 이러한 개별적인 경험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은 그에게 미술의 시각화에 유익하한 경험이 되고 있다.
반면 그러한 언어가 지나치게 다양하게 형상화되거나 일관성 있게 흐르지 못할 때 ,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약화되며 상대적으로 그의 미술언어도 의미와 힘을 잃게 된다. 나는 그가 이점을 좀 더 주의 깊게 생각하고 형상화 할 때 그의 경험과 의지가 충분한 예술의 언어로 빛날 수 있으리라 본다.
박지혜에게 있어 분명 말이란 대상은 그러한 작가자신의 모든 사고와 생각을 담아내는 주제이다. 결국 예술가로서 인간은 그러한 불가능한 시간의 한계, 의지의 한계, 간절하게 원했던 것들과 반항하고 싸워 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예술가의 진정한 자유와 욕망으로서의 작품일 것이다.
<<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