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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옥 / 풍경, 그 서정성과 자연의 조형

김종근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당나라의 현종이 가릉지방의 경치를 그리워하여 오도자(吳道子)로 하여금 그림으로 그려오게 한 일이 있다. 그러나 어쩐지 오도자는 가릉지방을 둘러 보고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현종이 그 이유를 물으니 `저는 비록 밑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나 모두 마음속에 담아 왔습니다.`라고 했다. 그 후 오도자는 대동전건물 벽화에 삼백리에 걸친 가릉지방의 풍경을 하룻밤에 그렸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적어도 그림이란 있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려야한다는 것이다.
김인옥의 작품들은 이러한 일화를 떠올릴 만큼 그가 살고 있는 주변의 풍경을 이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기다림>에서 시작하여 <항금리 가는 길> 로 이어지는 그의 연작과 풍경들은 보는 이들에게 너무나 따뜻하고 평안한 감정을 전해준다. 그것은 그의 그림 속에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서정성과 격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는 전형적인 동양화의 채색 작품이다. 비록 그의 그림이 깊은 정신성을 요구하는 붓과 먹의 수묵화는 아니더라도 그의 회화는 자연과 사람의 정신세계를 조용하게 담아낸다.
기본적으로 채색을 중심으로 하는 그의 회화는 자연에 대한 통찰과 사색으로 완결된다. 초기 그의 작품세계를 보면 그가 경험하고 바라본 자연관을 구체적 풍경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난 10여 년간 김인옥은 우산 꽃나비 등 자연과 오브제를 결합 시킨 추상적인 화풍 이후 자연이라는 테마에 더욱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 후 작가는 자연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채색과 조형성으로 새롭고 탄탄한 구성력의 화면을 시도했다. 특히 이러한 화풍은 동일한 장소를 봄여름 가을 겨울을 다양하면서 풍부한 색채로 자신의 양식을 구체화 시키고 있다.
‘항금리 가는 길’ 시리즈와 서정적인 정취로 자연을 가깝게 하는 ‘기다림’ 연작 등은 그러한 형식에 도달한 작가의 의지가 성공적으로 드러난 화풍으로 드러난다.
그의 그림에는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자연을 사랑하는 친화적인 시선이 내재되어 있다. 더욱이 동양화만이 갖는 진정성과 솔직함이 묻어나는데 이것이 곧 작가의 철학이다.
그 철학이란 바로 기교가 아니라 자연을 향한 시선과 정신적인 내면이다. 김인옥의 회화는 이러한 자연을 바라보는 내면의 부드러움과 은근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김인옥의 인성이기도 하다. 인간적인 면처럼 그의 작품은 환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이상향의 세계라기보다 삶의 공간에서 묻어나는 자연의 생생한 사계절의 진솔한 정겨움이 지배적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이 소박하지만 확실한 언어로 주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가슴속에 오도자처럼 내면에 확실한 풍경을 담아두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그의 자연 관찰과 표현은 조화롭고 정적이며 정직하다. 표현기법도 정적인 붓터치에 자연을 사랑하는 따뜻한 시선으로 충만해 있다. 화가로서 이 정도로 세밀함을 가지려면 눈의 훈련이 충분해야 하며 노력 또한 뒤 따라야한다.
이러한 창작을 위한 그의 자연 관찰은 걸으면서 보고 생각한 것처럼 그 풍경을 떠나 이미지로 완성한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마치 산이 가로 막히고 물이 끝나 길이 없을 듯 하지만 버드나무 우거지고 꽃이 피어있는 사이에 또 하나의 마을이 있다`는 옛 시인의 시구처럼 항금리 가는 길에 솜사탕처럼 예쁘다.
멀리는 다소곳한 풍경이 있고 사람들 집이 있고 삶이 있다. 그의 산과 풍경은 걸음에 따라 변하듯이 변한다. 푸른색 노란색 핑크빛 아니면 흰 솜방망이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배어난다.
가만히 보면 그는 대상이 되는 사물을 어떤 한 곳에서 생각하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그 풍경을 지나면서 느낌이 가장 깊으면서 생동하는 순간의 풍경을 포착한다.
이것은 작업에 임하기 전에 치밀하게 자연을 가슴에 새겨 둔다는 것이다.
김인옥은 이러한 기본적인 화가의 관습을 익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나무가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복잡한 풍경도 그에게는 필법의 기교가 충분히 걸러진 후에야 비로소 모필(毛筆)을 화선지에 옮긴다. 그의 화폭 속에 계절과 풍경이 어우러져 사람들 가슴을 적시는 그림으로 탄생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가 된다.
또한 사실주의처럼 보이면서 전통적인 화풍을 현대적인 양식의 풍경화로 연결시키는 그의 채색의 힘은 회화 표현에서 무한한 공간을 화면에 담아내는 여백을 적절하게 구사하기 때문이다.
김인옥의 이런 풍경들은 사색의 세계를 넘어 양평 부근의 사계절의 변화를 거칠고 메마른 화풍이 아니라 보다 부드럽고 온정적인 필법으로 전통적인 채색을 계승하고 있다.
즉 박생광 천경자 이숙자로 이어지는 전통채색의 정신을 그는 이어받고 있다.
이러한 그의 화풍을 시기적으로 구분할 때 시골의 정서와 풍취가 가득한 초기의 화풍과 조형성이 훨씬 깊게 개입된 최근의 작품들은 세밀한 필선으로 감각적인 효과를 가진 격조 있는 세계를 보여줌으로서 아카데믹한 전통 채색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채색의 바탕에는 화려한 장식미보다 소박미가 , 현란한 색채보다는 담백한 모노톤의 채색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낸다.
근작들은 모던한 감각으로 자연 풍경을 서정적인 채색으로 전환하는 양평 항금리의 풍경은 분명 그에게 최고의 회화적 오브제이자 대상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작업실까지 매일 오가는 과정의 풍경들 속에는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내재되어 있다.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고 있는 그의 화폭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봄에는 파릇파릇 생명의 나무와 꽃들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짙푸른 가로수와 산, 그리고 마을 들이 소품처럼 등장한다.
가을에는 황금빛의 숲속에 나무들이 색을 불러 모으고 , 겨울에는 눈 내린 평원에 우뚝 서 있는 흰색의 나무가 화면을 뒤덮는다. 이 풍경만으로도 그의 그림은 우리의 마음속 고향이되기에 충분하다.
소박하고 사치하지 않는 시골길, 그곳 골목마다 우리들의 고향이 있다. 또한 그 주변 풍경 속에는 꽃병이 놓여있고 , 꽃무늬 커튼이 고즈넉하게 널려있다.
그리하여 그 모든 환상적인 풍경이 빠짐없이 꼼꼼한 필치로 되살아나는 것이 김인옥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다.
집요하게 자연의 서정적인 풍경을 전통적인 채색으로 한결 같이 담아온 그는 최근 그 서정의 세계에 깊은 조형성을 담는 작업으로 원숙미를 더하고 있다.
이 작품들이 그의 작품세계에 향방을 충분히 가늠하게 하는 작업들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그가 중국과 양평을 오가면서 제작했던 신작들이다. 양주팔괴의 이방응이 매화를 그릴 때 `분방하게 핀 매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단지 두세 개의 가지일 뿐이니, 그 두세 가지만 빼어나게 표현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한 것처럼 작가는 많은 풍경을 단순화하거나 생략하여 가장 아름다운 두 세 가지의 형상으로 채색화의 진미를 우리들에게 근사하게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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