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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주 / 현실을 넘어선 현실

윤진섭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석주에 대한 평가는 주로 극사실주의와 관련하여 논의돼 왔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를 다룰 경우 그는 이 범주에도 속한다. 전자에 관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또 하나의 일상-극사실 회화의 어제와 오늘’(2009. 7. 14-8. 27, 성남아트센터 미술관)을 들 수 있으며,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구상미술의 오늘-꿈과 현실의 대결’(1992. 7. 21-8. 6, 압구정 현대백화점 현대미술관)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이석주의 회화세계가 다면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극사실주의요,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초현실주의적 접근이 가능함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미술사적 측면에서 볼 때 극사실주의적 입장에서의 접근은 벽돌을 소재로 그린 7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시기의 활동에 국한된다. 그러니까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석주의 존재는 극사실주의의 태동과 관련이 있는데, 이 무렵의 대표적인 극사실주의 작가들로는 고영훈, 김홍주, 지석철, 변종곤, 이호철, 김창영, 주태석, 김강용, 서정찬, 차대덕, 조상현 등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활동한 극사실주의 화가들의 경우 공통된 현상은 일상을 주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는 산업화 시대로 막 진입하기 시작한 당시의 사회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이 무렵은 공사장에서 들리는 불도저의 캐터필러 굉음이 근대화의 상징처럼 들리던 시절이었다. 일상성은 도시화가 진행되던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자연스럽게 생성된 소재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작가들은 대중의 소비생활이나 도시와 관련된 이미지들에 시선을 집중했다. 고영훈의 코카콜라, 김강용의 벽돌, 지석철의 쿠션, 주태석의 철로, 조상현의 공사장 가림판 등등은 이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석주가 붉은 벽돌을 소재로 택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석주의 벽돌 그림은 캔버스 전체에 벽돌담의 일부를 선택, 클로즈업한 것이다. 농촌의 흙벽돌과 대비되는 도시의 붉은 벽돌은 그 자체 도시를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 뚜렷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던 때문이다. 이석주는 당시의 암담한 현실을 벽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내려 했다고 최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사르트르의 단편소설 <벽>이 암시하는 것처럼 인간존재의 불가항력적인 운명, 즉 실존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작가의 내면적 입장에서 볼 때는 이십대 중반의 작가가 자신의 진로와 관련하여 겪지 않으면 안 되었을 암담한 사회 현실이 반영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즉 내면의식의 투사(投射) 대상으로서의 ‘벽’이 그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이석주는 벽돌이란 한정된 소재를 벗어나 보다 폭넓은 일상의 세계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때 눈에 보이는 도시의 현실이란 곧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들과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이었다. 그는 매우 정치한 붓질로 도시인들과 사물들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카메라의 뷰파인더 속에 들어온 대상들 같았다. 스냅사진처럼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는 캔버스 속의 등장인물들은 어느 모로 보나 익명적이다. 캐주얼한 복장의 남녀들은 마치 거리를 배회하는 방랑자들처럼 보인다. 승용차 안에서 바라본 도시의 현실, 곧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매우 익숙한 광경임에도 화면에서는 낯설어 보인다. 이 작품에서 이석주의 위치는 그림의 밖, 즉 관객이 서있는 지점에 있다. 작가의 시점은 운전석에서 차창을 통해 밖으로 뻗어나간다.


초현실적 풍경이 주를 이루는 이석주의 그림을 요해할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아마도 내면의 진술이 아닐까? 그러나 그의 경우 내면의 진술은 외부 현실을 소재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하다. 초기의 벽돌에서 시작하여 도시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익숙한 현실의 단편들이다. 그 소재의 품목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하게 등장한다. 책을 비롯하여 기차, 말, 시계, 낙엽, 구름, 천, 꽃에 이르기까지. 이석주는 기억에 떠오르는 이 품목들을 화면에 조합한다. 그것은 이미지의 조합이다. 항용 이석주의 그림이 난해해 보이는 이유는 그가 이러한 이미지들을 직조하는데 있어서 환치나 몽타쥬와 같은 기법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단편을 놓고 보면 현실적 존재인 이미지들이 화면에서 서로 부딪치면서 현실과는 다른 초현실적 세계를 드러낸다. 그의 작품을 초현실주의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시각이 그의 회화세계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 또한 아니다. 그의 작품이 극사실주의의 관점에서 거론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현실을 정치하게 묘사하는 고유의 기법에 있다고 할진대, 이처럼 대상을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처럼 묘사하는 기법은 현실의 단면들의 조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단면들의 조합이 그의 그림을 초현실적 지평으로 이끄는 요인이다.


선화랑에서 가진 근작전에서 이석주는 책을 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기존의 말, 기차, 낙엽, 천, 꽃 등등의 소재가 주로 등장하는 작품들과는 다른 면모다. 책과 고전 명화를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이것들을 하늘이나 들판과 대비시키는 화면구성을 시도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손길에 나달나달하게 닳은 책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외국서적, 그것도 특히 화집이 주류를 이루는 책들은 마치 서가에 꽂혀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다. 그런데 이 구성 방법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앵그르와 베르메르의 그림 속 이미지들을 현재 우리 미술계에 유행하는 고전명화의 인용과 다르게 볼 수 있는 전거를 제공해준다. 즉, 그 이미지들 역시 하나의 현실적 존재로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작가의 전략일 수 있다. 즉 기존의 고전 명화들이 일종의 패러디로 인용된 것이 대다수라면, 이석주의 작품에 등장하는 고전 명화들은 책의 표지 장정이나 삽화로서 현실적 이미지인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정작 이석주가 집요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세월의 흔적이다. 이 부분이 일상 속에서 시간의 문제를 다룬 기존의 작품들과 근작이 연계되는 지점이다.



이석주는 과거 내면적 풍경을 다룬 그림들에서 기차와 시계를 등장시켜 시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해 왔다. 그것이 보다 직접적인 방법이라면 근작에 등장하는 낡은 책의 등장은 간접적인 방법이랄 수 있다. 그는 왜 유독 낡은 것에 집착하는가? 사람의 손때가 묻은 책은 시간이 육화한 대상이요, 시간의 집적물이랄 수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손때가 묻고 그러면서 점차 나달나달해진 책들은 마치 박물관 진열장 속의 유물처럼 우리들에게 시간을 환기시킨다.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 속의 책들은 그것이 사진의 프린트가 아니라 화가의 육필에 의한 것이란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림의 후광(aura)이 발산하는 진원지는 바로 이 지점이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의 역사를 본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일 수도 있고 문명의 역사일 수도 있다. 이석주가 이 책들의 뒤로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배치한 이유도 자연의 무한성에 인간 역사의 유한성을 대비시키고자 한 까닭이 아닐까? 이석주의 이러한 문명사적 시선은 포토샾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간편하게 합성할 수 있는 디지털 기반의 가상현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시간의 투자가 요구되는 그림이란 포토샾에 비할 수 없는 고유의 결과 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시간에 기반을 둔 역사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아날로그의 힘이란 것을 그가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석주의 그림은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그림은 ‘현실을 넘어서 있다(hyper, beyond reality)’는 측면에서 ‘극사실주의’의 본령에 가장 충실하다. 그의 그림은 현실을 통해 현실을 넘어선 어떤 지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 월간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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