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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순황 / '보는 것'과 '느끼는 것'에 대한 회화적 질문

윤진섭

'보는 것'과 '느끼는 것'에 대한 회화적 질문

 


HYE SOON HWANG의 작업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노동집약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의 작업은 선인장이나 솔방울과 같은 자연물에서 소재를 얻어 점진적으로 추상화(抽象化)의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모두 추상적인 것은 아니다. 작업의 초기에 실험한 기하학적 형태들을 제외하면 비록 추상적(抽象的) 경향을 띠더라도 완전한 추상이 아니며, 거기에는 대상을 식별할 수 있는 형태소(形態素)가 있다.


2010년에 제작한 일련의 기하학적 드로잉 작업을 통해 HYE SOON HWANG은 자신의 작업의 기조(基調)가 되는 반복적 수행(performance)을 시도했다. 반복은 곧 그의 작업의 화두이자 행위의 기본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평소에 자연의 모습과 인간의 행위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해 왔다. 그리하여 어떤 자연물은 같은 모양을 한 단위의 반복이며 인간의 일상의 대부분은 같은 동작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스님들이 부처에게 절을 하거나 혹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통해 같은 동작을 되풀이 하듯이, 인간의 행위 속에는 반복의 요체가 담겨 있다. 가령 걷거나 손을 이용하여 음식을 입에 넣는 행위는 발과 손의 반복 동작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행위들, 즉 김 아무개가 음식을 먹거나 걷는 행위들은 구체적이나 동사, 즉 '걷다', '먹는다'와 같은 언표는 추상적이다. 도대체 '먹는다'고 했을 때 누가 무엇을 먹는다는 말인가? HYE SOON HWANG의 기하학적 드로잉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HYE SOON HWANG의 2010년 드로잉 연작은 종이 위에 마치 거미줄처럼 중심을 향해 배열된 여러 개의 직선들을 촘촘하게 연결한 수많은 빗금들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이후 그의 전 작업을 일관하는 작업의 요체가 잘 드러나 있다. 기하학적인 형태와 반복적 행위가 그것이다. 이를 풀이하자면 반복적 행위가 기하학적 형태를 낳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곧 형태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을 일종의 수행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작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노동집약적 행위는 그리하여 서서히 형태를 갖추게 되며, 그는 최근 몇 년간 선인장이나 솔방울과 같은 자연의 대상을 빌어 행위의 구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소재는 그의 추상적 행위를 목적적이며 구체적인 행위로 전환시키는 동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역설적인 것은 선인장이나 솔방울과 같은 자연 대상의 단위체들이 일종의 집합을 통해 다시 기하학적 형태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가령 동그란 솔방울들이 화면 위에서 원형적 형태로 확장된다든지 연꽃 모양과 같은 구체적인 형태를 이루게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HYE SOON HWANG은 최근의 작업을 통해 구체적인 자연의 형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추상화(抽象化)하는가 하는 문제를 보여준다. 그는 선인장 혹은 솔방울의 파편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두꺼운 종이에 그리고 이를 오려낸 뒤, 그것을 종이에 대고 그 안에 오일 파스텔과 왁스를 사용하여 반복해서 그려나간다. 그것은 오려진 형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제한적 조건을 갖게 된다. 매우 꼼꼼하고 섬세하며 반복적 행위의 특징을 지닌 그의 제작 방식은 다시 완성된 하나의 단위가 다른 단위들과 덧붙여지는 가운데 전체적으로는 연꽃과 같은 아름다운 형태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리켜 연꽃이라 할 수 있을까? HYE SOON HWANG의 작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형태(gestalt) 심리학에서 다루는 미적 반응의 한 흥미 있는 예이다. 


HYE SOON HWANG의 작업은 요즘처럼 미디어 아트가 득세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화에 대한 재고(再考)를 요구한다. 회화의 근본 문제를 묻고 있는 그의 작업은 미술의 현재적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어쩌면 더욱 긴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 기하학적 형태와 유기적 형태의 틈에서 아주 역사가 오랜 회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서 파생되는 미적 경험의 문제를 화두 삼아 HYE SOON HWANG은 집요하게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윤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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