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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와 미술계의 구조조정

윤진섭

IMF와 미술계의 구조조정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IMF로 인한 구조조정 바람이 사회 전반에 걸쳐 거세게 일고 있다. 처음에는 기업에서부터 비롯된 구조조정의 불길이 공직사회로 옮겨붙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장 안전지대라고 여겨져 온 대학을 거쳐 이제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까지 파급되고 있다. 오늘 아침 신문은 1, 2급 등 고위공직자들의 정년을 없애는 대신 ‘정책직’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직사회 개혁방안’을 정부가 마련하고 있다는 어두운 소식을 전하고 있다. 1백 80명에 달하는 1급과 5백 17명에 해당하는 2급 공무원들이 퇴출대상에 포함됨으로써 신분상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신문은 “제2 건국 운동을 하려면 공직자부터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며, 무사안일하고 경쟁력없는 공직자들은 퇴출되는 게 마땅하다. 이를 위해 우선 1, 2급 공직자들을 ‘정책직’으로 바꾸어 대기업의 이사들처럼 정원을 별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 여권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조선일보, 1998년 8월 24일자 1면). 한 마디로 능력이 없는 사람은 물러나야 마땅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구조조정은 한마디로 말해서 거품을 걷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신체를 비유로 들어 말하자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찐 군살을 빼자는 것이다. 몸에 쓸 데없는 군살이 붙으면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게으름을 피게 되니까 다이어트로 몸을 날씬하게 해서 신체가 지닌 본래의 순발력을 되찾자는 것이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이상과는 달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호시절에 몸에 밴 편안함과 나태, 무사안일의 습관에는 이미 관성이 붙어서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려면 몇 갑절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 엄청난 시련과 혼란은 바로 이러한 적응 과정에서 오는 필연적인 통과의례로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절차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대가를 치루게 되는데,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노사간의 갈등을 비롯한 기업의 연쇄부도, 범죄의 증가, 실직, 대량해고와 같은 각종 사회문제들은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요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미술계는 과연 어떠한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술계 역시 이러한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그동안 부지불식간에 몸에 밴 허례허식, 임기응변식 처방, 과장과 허장성세의 습관은 우리 미술계의 대외경쟁력은 물론 대내적 신인도 마저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했다. 문제는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어물쩍 넘어가려 했던 우리 미술인들의 마음가짐에 있다. 이를테면 작품가격의 책정을 둘러싼 작가와 화상, 고객간의 마찰과 불신은 이를 조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와 장치의 결핍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찍이 그처럼 중대한 문제의 해결에 너나할 것 없이 인색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파국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미술시장이 안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점들, 예컨대 유통의 난맥상, 가격책정의 비합리성, 화랑의 구조조정 등은 그동안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했던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어디 그 뿐이랴. 소위 학연과 지연을 둘러싼 각종 미술제도의 파행적인 운영은 우리 미술계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병인(病因) 가운데 가장 고질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미술대전을 비롯한 각종 공모전의 파행적 운영과 같은 문제들은 매우 뿌리가 깊기 때문에 단기간에 걸친 대증요법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한 입장에 처해 있다. 그 밖에 정실비평과 보도, 작가선정에 따른 각종 폐단들 역시 그 환부(患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이러한 소아병적 이기주의에 그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여름은 난데없는 홍수로 인해 유난히 고통스런 기억을 온 국민들에게 안겨주었다. 억수로 퍼붓는 비속에 쓸려나가는 이웃들의 재산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나는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기상학자들은 전지구촌적인 규모로 번지고 있는 이 재앙을 엘리뇨와 라니뇨 현상의 탓으로 돌리지만, 나는 그것을 낳은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들의 이기심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은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들에 대해 자연이 내리는 심판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환란(患亂)의 책임 역시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을까? 정치의 난맥상이 곧 경제의 난맥상이요, 사회의 난맥상이 곧 문화의 난맥상이란 점을 통찰한다면,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이 환란의 원인제공자는 역시 우리 자신인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자연의 이치에 귀를 기울여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슬기를 발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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