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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스튜디오-레슬리 드 차베즈

윤진섭

신세대적 감수성과 문화적 아이콘

고양스튜디오-레슬리 드 차베즈


윤진섭(미술평론가)



필리핀 출신의 작가 레슬리 드챠베즈의 관심사는 주로 사회 정치적 현실에 집중돼 있다. 대상에 대한 빼어난 묘사력을 지닌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유의 회화적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등장인물의 전형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특유의 회화 기법을 구사한다. 이 전형성과 회화기법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의 메스를 들이댄다. 자신의 조국인 필리핀의 현실에 대해서는 미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공용과의 대비를 통해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문화적 영향 관계를 고발하고 있으며, 한국에 머물면서부터는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삶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레슬리 이데 챠베스(Leslie E. De Chavez) 작업실, 2006


아직 채 서른이 못 된 이 필리핀 작가의 신세대적 감성은 때로 동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에 대한 강한 공감의 형태로 나타난다. <거리의 펑크족(Street Punks)>(캔버스에 유채, 85x122cm, 2005)은 배꼽티에 문신을 하고 머리카락을 화려한 색깔로 물들인 청춘남녀의 모습을 통해 필리핀에 살고 있는 펑크족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유의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려진 이 그림을 통해 그는 필리핀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문화에 대해 느끼는 저항감을 음울한 표정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단어와 기호, 상징 등이 다양한 이미지들과 함께 결합된 레슬리의 화면은 필리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배경적 지식이 없으면 독해가 곤란하다. 특히 긴 문장의 필리핀 언어가 등장하는 화면은 보편적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슬리의 그림이 우리의 가슴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의 그림이 지닌 강렬한 메시지 때문이다. 시각예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그의 그림들은 남방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인물들의 전형성 내지는 도상적 상징들이 몇몇의 영어 단어들과 결합하여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다. 마릴린 먼로, 샘 아저씨, 성조기 등등 미국을 의미하는 상징물들이 빈번히 등장하는 레슬리의 화면은 오늘날 필리핀이 처한 문화적 현실을 암묵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미국의 문화적 영향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기지촌은 분단 이후 한국의 문학과 미술, 영화 분야에서 가장 빈번히 다루어진 소재다. 한국과 필리핀이 공통적으로 처한 정치적 현실이 이 젊은 작가로 하여금 공감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유달리 한국의 문화와 정치적 현실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일본 침략의 대표적인 부산물인 거북선에 대한 관심을 비롯하여 “잊지 마세요”라는 말, 한국의 젊은이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MP3와 핸드폰 등등은 그의 근작에 빈번히 등장하는 문화적 아이콘이다.  


요즈음 레슬리 드챠베즈는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얼굴을 그리는 일에 푹 빠져있다. 이 드로잉 연작은 필리핀 벼룩시장이 열리는 혜화동에 모여드는 동포들의 얼굴을 그린 것이다. 먼 이국땅에서 겪는 신산한 삶의 냄새가 짙게 밴 동포들의 얼굴을 그리며 그는 과연 무엇을 생각할까? 그가 무엇을 생각하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강인한 삶에의 의지를 보여준다. 예술의 힘이 현실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형상화하는 데 있다면, 그의 드로잉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는 수많은 인간들의 얼굴 표정을 통하여 그 이면에 가려진 삶의 보편적 진실을 탁월한 묘사력으로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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