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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윤진섭

봄날은 간다

윤진섭


 목련나무가 탐스런 꽃망울을 맺은 걸 보니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누구나 집안을 둘러보면 예쁜 그림 한 점을 사다 걸어놓고 싶을 것이다. 탐스런 목련꽃이 그려진 정물화도 좋고 개나리꽃이 활짝 핀 들녘을 그린 풍경화를 한 점 사도 좋다. 그 어느 것이든지 과히 비싸지 않은 소품으로 한 점을 골라 거실 벽에 건다면 우리의 일상적 삶은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걸어놓고 감상한다면 우리네 삶의 질은 높아갈 것이다. 


 듣자 하니 화랑들이 고사 직전에 처해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열린 화랑미술제 역시 그 전에 열린 다른 아트페어들처럼 매출이 썩 좋지 않았다. KIAF와 화랑미술제를 비롯한 국내의 숱한 아트페어들이 매출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일까? 돌이켜 보면 화랑가의 부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의 올림픽을 계기로 몇 년간 반짝 호황을 맞이한 이후, 약 10여 년간 미술시장의 불황이 찾아왔다. 한국의 경제가 기대 이상으로 약진을 하고 수출이 증대하면서 세계화를 부르짖게 된 것은 1995년 무렵이었다. 미술의 경우 이 무렵엔 광주비엔날레의 창설을 필두로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건립, 미술의 해 지정 등 겹경사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미술시장만큼은 그런 호재를 반전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흘려버린 감이 없지 않다. 때 맞춰 불어닥친 양도소득세 부과 소식은 화랑가를 덮친 악재가 되었고, 그 후 10여 년간은 양도소득세 법 저지를 위한 투쟁의 반복이었다. 드디어 양도소득세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효력을 발생시켰지만 과연 그것이 미술시장에 불황의 그림자를 드리운 요인이었는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물론 실명으로 거래하고 판매가에 대한 세금을 내야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자금의 노출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이 법이 고객의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투명한 사회로 가는 편이 음성적인 그림자를 걷어내고 보다 건강해지는 길이다. 화랑주는 화랑주대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정직하게 세금으로 낸다면 삶의 보람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반드시 그런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우리의 속담은 미술품 감상과 관련해서 볼 때 꼭 맞는 말이다. 아무리 미술에 대한 감상안이 높다고 해도 육체적으로 허기를 느끼면 그림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배가 적당히 부르고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 상태라야 비로소 제대로 된 작품 감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미술품에 대한 수요를 어느 정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은 국민소득 만 오천불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 시기가 대략 9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그런데 이 만불을 상회한 지금도 마찬가지로 호황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주식시장의 개미군단처럼 미술품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실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구입하는 개미 고객들이 존재할 때 미술시장은 활성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자신의 형편에 맞는 작품을 저축한 돈으로 사고 소중히 간직할 때 화랑가는 활기를 띠게 된다. 그러면 작가들은 수준 낮은 관객이 원하는 예쁘장한 작품을 그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취향이 다양한 고객들의 수준 높은 안목이 작가를 살리는 길이다. 고객들은 개성이 강한 작가의 작품을 선호하여 마니아가 될 때 작가도 살고 나중에 잘 투자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된다. 어느 면에서 보면 인기작가와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작가는 일치하지 않는다. 독창적이며 개성이 강한 작가, 다시 말해서 미술사에 남을 작가를 알아보는 안목은 고객 스스로가 노력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쩌면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하는 일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시련을 극복하고 노력한다면 미래에 명 작품을 소장하는 기쁨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한 바탕 흐드러진 봄날이 가고 있다. 저 희뿌연 황사바람의 끝에는 녹작지근한 봄의 햇살이 대기하고 있지 않겠는가? 


<서울문화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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