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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공미술의 현황과 전망

윤진섭



1. 들어가는 말

90년대에 접어들어 우리 사회에 나타난 뚜렷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지방자치제의 실시를 들 수 있다. 1991년의 지방의회 의원 선거를 필두로 1995년 6월 27일에 실시한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의원 및 단체장 선거는 우리사회가 명실공히 주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한 민주화 사회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는 다시말해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가 더 이상 사회교과서 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나아가서는 직접적인 참여의 형태로 존재하는 고유의 정체성을 획득하였음을 말해준다. 주민들이 자신의 민의를 전달하고 대변해 줄 수 있는 의원과 단체장을 직접선거로 뽑는 일은 참여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원칙이지만, 그 동안 왜곡되었던 우리의 정치현실은 국민의 기본적인 주권마저 억압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지방자치제의 실시 이후에 뚜렷이 나타난 징후 가운데 하나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술 부문에 대한 관심이다. 1995년에 창설된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 청주의 [공예비엔날레], 서울의 [미디어 시티 서울], 경주의 [경주관광엑스포], 부산의 [부산국제영화제], 부천의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춘천의 [국제마임페스티벌] 등 많은 문화예술행사들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봇물이 터진 듯, 경향 각지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문화축제 러시현상의 이면에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자신의 지역을 타지역과 차별화하여 부각시키려는 선의의 경쟁심리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작년의 문화예산 1% 달성에서 보듯, 그동한 깨닫지 못했던 문화예술의 고부가 가치적 측면에 눈을 뜨게 된 상황의 변화도 자리잡고 있어 우리 사회가 어느덧 ‘삶의 질’을 추구하는 선진국형 사회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의 경우, 공공미술(Public Art)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야외조각공원과 환경조형물의 조성이 날이 갈수록 확산되는 것과 비례하여 그 문제점 또한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진단에 따른 처방이 시급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단 및 처방이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2. 공공미술의 개념

일반적으로 ‘공공미술(Public Art)’은 “지역사회를 위해 제작되고 지역사회가 소유하는 미술”1)을
일컫는다. 이러한 의미는 ‘다수의, 혹은 공공의’란 뜻을 지닌 영어의 ‘public’이란 형용사가 “대체로 공중의, 공중에 속하는, 혹은 공중에 관계되는; 크게는 지역사회의, 지역사회에 의한(of, belonging to, or concerning the people as a whole; of or by the community at large)”이라고 풀이한 Websters New World Dictionary의 정의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공공복지’를 의미하는 영어의 ‘public welfare’란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공리적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공공미술이란 용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공공의 기금이나 재원으로 공중, 혹은 지역사회를 위해 제작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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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기쉬운 현대미술의 개념풀이, 로버트 앳킨스 지음, 박진선 옮김, 시공사, 130쪽.


소유되는 미술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사유화의 대상이 절대로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아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공공미술을 시행해 가는 과정에서 무원칙하고 공정치 못한 처사를 항용 목격하게 되는데, 이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가령, 건축물 1%법에 의한 환경조형물이나 최근에 급속히 번지고 있는 야외조각공원의 조성에 따른 각종 잡음은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데, 이는 밀실행정이나 담합, 브로커의 농간, 심사의 불공정 등 각종 제도적 병폐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공미술은 혼히 공공장소(public place)에 놓여지는 미술을 일컫는다. 공원, 광장, 공공건물 등 다중이 생활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고 즐기는 장소에 놓여지는 미술작품이 곧 공공미술 작품인 것이다. 가장 초기의 형태로는 선사시대 원시인들의 거주지였던 동굴 속의 벽화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외에도 주술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거석기념물이나 종교적 의미를 지닌 나무 기둥 등이 공공미술의 원시적인 형태로 간주된다.

이러한 공공미술은 맥락적인(context) 특성을 지닌다. 항상 ‘무엇과 무엇과의’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건물과 사람, 건물과 광장, 사람과 장소와의 교류 등 요소들 간의 관계항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건축학자 얀 겔(Jahn Gehl)은 공공장소의 기능으로 교류(meeting), 교역(market), 교통(traffic) 등 세 가지를 들고 있는데2), 이는 현대 도시의 특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울과 같이 인구 1천만 명을 상회하는 거대도시(megalopolis)는 대부분의 경우 면적에 대비한 과잉 인구로 인하여 교통 및 환경문제, 소음, 각종 공해, 슬럼화 현상 등 세계 공통의 문제를 앓고 있다. 거대도시는 늘 이러한 제반 문제점들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처럼 병든 도시 공간에 마치 허파꽈리처럼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공공미술’인 것이다.
공공미술은 궁극적으로 도시의 인간화를 지향한다. 공공미술은 현대도시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지양하므로써 각종 병리현상으로 인해 황폐해진 도시환경을 예술적 차원에서 치유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모더니즘의 탄생 이후,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정신은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작품을 양산하므로써 대중과 예술 간의 괴리현상을 낳았다. 또한 모더니즘이 지닌 순수지향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개별 예술 장르들 간의 분화 현상을 촉발시켰다. 건축과 조각 간의 전통적인 친화관계가 허물어지므로써 합리적 기능주의 건축물에 환경적 고려가 없는 추상조각 작품이 놓여지게 되는 살벌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공공미술은 행정관료, 미술가, 조경예술가, 건축가, 도시계획전문가, 디자이너, 지역주민들과의 공동연구와 협력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환경적 특성을 예술적인 차원에서 담아내고 승화시키는 협업적인 미술의 한 형태이다. 그것은 예술가가 고독하게 작업실에 들어앉아 예술작품의 초기 구상단계에서 완성에 이르는 작업의 전과정을 책임지는 결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참여와 과정으로서의 미술’이다. 즉, 일종의 퍼포먼스이며, 토탈 아트(total art)로서의 예술이 바로 공공미술인 것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야외 조각 심포지엄’을 들 수 있다.

희랍어 ‘symposion에서 유래한 심포지엄(sympisium)은 Websters New World Dictionary에 의하면 1) 고대 희랍에서 지적인 대화가 있는 술 파티, 2) 사상이 자유롭게 교환되는 어떤 모임이나 사회적 회합, 3) 어떤 특별한 주제에 대한 토론을 위해 조직된 회의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볼 때, 야외 조각 심포지엄은 작업실에서 완성된 조각품을 단순히 야외에 설치해 놓은 것이 아니라, 제작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므로써 대중이 제작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때로는 참여하기도 하는 교육적 측면과 작가와 미술관계자, 지역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축제적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조각 심포지엄을 매개로 주민들을 비롯한 지역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므로써 한바탕 흐드러진 잔치를 통해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는 문화적 기제의 하나가 야외 조각 심포지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적 이벤트인 이상 거기에는 잔치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고도의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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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현미, 지방자치시대의 공공미술, 미술세계 1997년 6월호 151쪽에서 재인용.


3. 한국 공공미술의 개관

우리나라에서 야외 조각공원을 비롯한 환경조형물, 환경조각 따위의 공공미술에 직접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88올림픽을 전후해서이다.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마련된 올림픽 조각공원은 1987년 여름과 1988년 봄 등 두 차례에 걸쳐 조성되었는데, 세자르, 스타치올리, 아바카노비치, 디트만 등 세계적인 작가들과 한국의 정상급 조각가들이 참여하였다. 한국의 경제적 성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88올림픽은 체육과 함께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일깨워준 하나의 사건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현재까지 토탈미술관 야외조각공원, 문신미술관 야외조각공원, 일산 호수 조각공원, 김포 야외조각공원, 통영 야외조각공원, 이천 야외조각공원 등 많은 수의 공․사립 야외조각공원이 90년대에 들어서 세워졌고, 또 지금도 꾸준히 세워지고 있는 중에 있다. 특히 최근에는 문화관광부가 정책적으로 야외조각공원의 조성을 장려하는 시책을 폄으로써, 야외조각공원 조성 붐이 일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념동상, 환경조각, 환경조형물, 야외조각공원 등 사회적 공공성을 지닌 조각품의 역사는 1920년대의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김복진이 <최송설당여사상>을 비롯한 다수의 동상조각을 제작한 것을 필두로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당시 박정희 정권하에 설립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에 의해 광화문의 충무공 이순신상을 비롯한 15점의 동상이 세워졌다3).
환경조형물관련 법규의 시작은 1972년 예술문화의 진흥을 위해 마련된 문화예술진흥법 및 그 시행령에서 비롯된다4). 동 진홍법 제 13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또는 이상의 건물물의 건축에 대하여 그 건축 비용의 1/100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 조각 등의 미술장식에 사용하도록 권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처마높이 13m 이상 혹은 연면적 3,000 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 증 사무소, 학교, 병원, 공연장, 체육관, 호텔, 백화점 등”으로 그 대상까지도 명기해 놓고 있다. 그러나 권장사항에 불과했던 이 규정이 1985년 의무사항으로 바뀌면서 환경조형물의 수효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가시적 변화는 당국의 실질적인 문화예술진흥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기 보다는 88올림픽을 앞둔 눈가림식의 전시행정의 결과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법규는 그 시행과정에서 권장과 의무를 반복하는 사태를 빚게 되는데, 가령 권장사항으로 다시 바뀐 1992년의 동 법규는 1995년 1월 5일 개정이 확정되어 동년 7월 5일 시행된 개정 문화예술진흥법에서는 제11조의 건축물에 의한 미술장식에 대하여 “대통령이 정하는..........미술장식에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 건축물의 미술장식품 설치를 의무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규는 최근에 다시 권장사항으로 바뀌면서 그 비율을 0.7%로 하향조정하고 있다.

이처럼 조령모개식의 일관성없는 환경조형물관련 법규 아래서도 환경조형물은 꾸준히 증가하여 전국의 환경조형물은 괄목할 만한 양적 팽창을 기하게 된다(표 참고). 동상을 비롯한 각종 환경 조형물의 건립은 작가와 건축주, 그리고 알선자 사이에서 파생되는 많은 문제점을 낳기도 하였는데, 각종 이권에서 비롯되는 알력은 때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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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윤범모, 한국 기념동상의 제문제, 조형연구, 경원대학교 조형연구소 발행, 6쪽.
4) 안인기, 환경조형물, 무엇이 문제인가, 월간미술 1996년 7월호, 57쪽.
공공미술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의 특집을 참고할 것.
환경미술의 현실과 전망, 월간미술 1996년 7월호.
공공미술은 있는가, 공공미술업체․프로젝트 분석, 미술세계 1997년 5월호.
진단, 공공미술, 가나아트 1996년 7/8월호.
1%법, 도시환경조형물, 가나아트 1997년 9월호.
지방자치시대의 미술문화공간, 가나아트 1997년 10월호.
조형연구, 경원대학교 조형연구소 간, 2000년 2호.






<표, 전국환경조형물현황, 1993.9.30현재, 자료:전국환경조형물현황, 1993.12 문화체육부>

최근에 불거진 강남 포스코 빌딩 앞의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 <아마벨>의 철거시비는 공공미술이 종종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1년 6개월 동안의 제작기간을 거쳐 1997년에 설치된 이 작품은 9미터의 높이에 30여톤의 무게를 지닌 초대형 철조인데, 17억 5천 4백만원이 소요되었다. 문제의 발단은 포항제철의 경영진이 새로 바뀌면서 미관상의 이유를 빌미로 이 작품의 철거를 결정,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에 하였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심의한 결과, 인수를 유보하였고 또한 강력한 사회적 여론에 밀려 철거 문제가 유야무야되었다5).
로댕의 발자크 상 사태에서 보듯이, 공공미술은 때때로 예기치 못한 사태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것은 공중의 미의식이 작가의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철거라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4. 19 혁명 이후 남산에 세워져 있던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 철거는 비근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4. 맺음말

공공미술은 사회적 기여에 관한 숭고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그 시행과정에서 늘 말썽의 소지가 있는 분야이다. 동상이든, 환경조형물이든, 야외조각공원이든 간에 예산이 적지않다보니 작가적 사명감 보다는 이권에 눈이 어두워 작가 본연의 자세를 잃고 염불보다는 젯밥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이 공공미술을 둘러싼 오늘의 세태인 것이다. 한 미술잡지의 앙케트 조사에 의하면, 1%법의 문제와 관련하여 조사에 응한 23명의 미술이론가들 중 87%가 이 법의 존속을 지지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이 법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주요원인으로 건축주의 책임(56.5%), 심의기구의 문제(43.5%), 작가의 양심․책임의식의 부재(26.1%), 법제도의 문제(21.8%)를 지적하였다.
이들은 그 대안으로 전문컨설팅업체의 출현(52.5%), 심의기구의 개선(43.4%), 공모제(21.6%), 기금조성(13%) 등을 들었다6).
1% 법에 의해 시행되는 환경조형물도 문제거니와 보다 심각한 것은 야외조각공원의 조성문제일 것이다. 주지하듯이, 야외조각공원의 조성은 비단 조각분야만이 아니라 토목, 조경, 건축 등이 함께 어울려 이루어지는 협업체제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후에 문제가 발견될 경우 그 조정이 쉽지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내에서 조성되었거나 현재 조성되고 있는 야외조각공원의 상당수가 전문기획자들로 구성된 합의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거주의 영향력이 있는 조각가가 해당지역의 행정관청과 협의하여 주먹구구식의 사업을 벌이는 행태는 지양되지 않으면 안된다. 작가선정은 해당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겨 객관적인 기준하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관할 관청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공정한 정책을 집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야외조각심포지엄은 지역의 문화축제라는 인식아래 유능한 축제전문가를 영입하여 이벤트화할 때 공공미술의 의의를 더욱 살릴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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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최태만, 서울지역 환경조형물의 현황과 문제, 조형연구, 경원대조형연구소 발행, 27쪽.
6) 최태만, 앞의 책,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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