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윤진섭의 문화탐험]<1>퍼포먼스,인류를 위한 몸의 사육제

윤진섭

[미술평론가 윤진섭의 문화탐험] <1> 퍼포먼스,인류를 위한 몸의 사육제

■우리 사회는 왜 몸에 열광하는가?

몸이 폭발하고 있다. 대중들은 과거처럼 정신에 집중하기보다 몸에 온 관심을 쏟는다. ‘몸짱’이니 ‘얼짱’이란 신조어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면서 시작된 몸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단순한 관심사를 넘어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몸의 현상을 진단하고자 ‘First-Class 경제신문’ 파이낸셜뉴스는 미술평론가이자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인 윤진섭 교수(호남대)의 ‘문화탐험:몸의 언어, 21세기 문화지도를 그리다’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라는 명제는 김아타의 작업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그래서 그는 최상의 기록매체인 카메라로 존재하는 사물을 담아낸다. 그의 <온 에어 프로젝트> 시리즈에는 움직이는 사물과 부동의 사물이 혼재해 있다. 가령, 뉴욕의 거리 풍경을 찍은 <온 에어 프로젝트 110-7 ‘57번가’>(188x248㎝·2005)는 여덟 시간에 걸친 장 노출로 완성한 것인데, 거리의 한 가운데 희뿌옇게 남아있는 흔적이 움직이는 사람들과 차량들의 잔재다.

오랜 노출을 통해 움직이는 사물들은 소멸돼 버리고 건물이나 신호등과 같은 부동의 사물들은 사진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들마저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 한 장의 사진이 문명의 흥망성쇠를 은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아놀드 토인비의 저 유명한 ‘도전과 응전’의 법칙을 들지 않더라도 지구상의 모든 문명은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다. 자체의 내적 요인에 의해서건, 화산과 같은 대 재앙에 의한 외적 요인에 의해서건, 인간이 이룬 것은 때로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또 앞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우리는 폼페이의 유적에서 한 순간에 닥친 대 재앙의 처참한 결과를 목격하고 한없는 전율을 느낀다. 그렇다. 자연은 우리에게 수많은 혜택을 베푸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전갈의 독 또한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매일 조금씩 녹아내리는 극지의 빙하는 미래의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인가.




예술가들의 예민한 촉수는 뚜렷이 단정할 수는 없지만 뭔가를 감지한다. 그리고 빨간 경고등을 켠다. 그들은 “인류의 미래가 위태롭다”고 말한다. 그래서 때로는 부드러운 은유로, 때로는 촌철살인의 기지로 위험신호를 보낸다. 그것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우리가 무지하거나 무신경하기 때문이다. 세계 제1차 대전 무렵, 스위스의 취리히에 모인 일단의 예술가들이 그랬다. 한스 리히터, 트리스탄 차라, 마르셀 쟝코와 같은 다다(dada)의 예술가들은 매일 밤 캬바레 볼테르에 모여 기상천외한 짓거리로 전대미문의 인류의 야만성을 공격하고 조롱했다.

그들은 ‘천하태평의 매미들에 둘러싸인 선견지명이 있는 개미’(한스 리히터)들이었다. 그들은 예민한 촉수를 지닌 메기들이었다. 지진이 닥쳐올 것을 맨 먼저 알아채는 생물은 연못 속의 메기라고 하지 않던가.

몸(body)에 관한 담론을 준비하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적 증상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몸의 범람은 그 중의 하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몸에 관한 이미지의 범람이다. 이른바 ‘몸짱’이니 ‘얼짱’이란 신조어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몸에 관한 허접한 이야기들은 이제 단순한 관심사를 넘어 심각한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왜 그토록 몸에 열광하는가. 극장의 간판에 흔히 등장하는 여배우의 매력적인 육체와 화장품 광고에서 보이는 고혹적인 모델의 시선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른바 육체가 정신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데비 한은 화장품 광고가 지닌 속악한 자본의 속성에 저항하여 80세의 노경에 이른 할머니들을 예쁘게 화장시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 드러난 할머니의 모습은 소녀처럼 아름답다. 데비 한의 작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식과 색> 시리즈는 한국에서 독일, 그리고 일본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화장품 모델이 지닌 작위적인 이미지에 저항하여 평범한 여성들을 모델로 기용했다. 그녀는 직접 자신이 선택한 모델을 화장시키고 우메보시, 소시지, 사시미 등으로 옷을 만들어 입혔다.





상업광고는 몸의 이미지를 통해 ‘성(性)의 상품화’를 촉진시키는 대중 매체다. 게다가 발달된 디지털 사진 기술은 모델의 얼굴을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바꿔놓는다. 이른바 가짜가 진짜보다 더 실제 같은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시대인 것이다. 그 앞에서 평범한 여성들은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허기진 사람처럼 허상의 이미지를 좇아 막대한 돈을 소비한다.

성형수술은 또 어떤가. 성형수술은 우리의 시대가 명백히 가짜의 시대임을 증명하는 사회적 현상 가운데 하나다. 미인이 되고 싶은 여인의 심리를 이용하여 인공적인 미인을 만들어 내는 성형수술은 최근 유행하는 웰빙 현상과 반대의 짝을 이룬다. 그러나 성형수술을 통해서라도 미인이 되고 싶은 평범한 여성들의 소망은 ‘탄탈로스의 목마름’처럼 갈증만을 유발할 뿐이다. 수술의 부작용은 차치하고라도 비슷한 코와 입과 눈은 청순한 여성들을 개성이 없는 로봇처럼 만든다.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정신이 증발돼 버린 몸의 범람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프랑스의 유명한 행위예술가인 올랑(Orlan)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1485년 작)과 같은 유명한 명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얼굴 이미지를 합성하여 ‘미인’의 전형을 만드는 성형수술 퍼포먼스를 행한 바 있다. 끊임없이 변조되는 그녀의 얼굴은 ‘가짜’ 이미지가 범람하는 우리 시대의 무신경한 대중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다.

몸이란 무엇인가. 몸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인 물질로 이루어진 그것은 어루만질 수 있고 들어올릴 수도 있다. 몸은 정신이 머무는 거처이자 정신을 담는 그릇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플라톤이래 열등한 것으로 간주돼 왔다. 인간의 몸이 주요한 테마로 다시 떠오른 것은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퍼포먼스 또는 보디아트(body art)는 몸에 관한 활발한 담론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몸의 중요성을 일깨워 줬다.

‘육체의 반란’이라고 부를 수 있는 퍼포먼스의 등장은 캔버스 안에 갇혀있던 몸의 이미지가 실제의 사물로 전환되었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당신이 보고 만질 수 있는 이 고기 덩어리가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피와 고름, 살로 범벅이 된 헤르만 니취(Hermann Nitsch)의 제의적 퍼포먼스는 강렬한 감각적 체험을 통해 인류의 반성을 촉구하는 발신음이다. 그것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yoonjs0537@hanmail.net

■사진설명=① 데비 한의 뷰티86. ② 데비 한의 색정(色情). ③ 김아타의 온에어 프로젝트 110-7:타임스퀘어, 뉴욕시리즈.

- 파이낸셜뉴스 2008. 4.18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