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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의 문화탐험]<6>자유를 향한 구도의 몸짓

윤진섭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예술가들은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상상력이 꿈의 원천이다. 그들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꿈속에서 거침없이 산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읊었다. 속세의 때가 묻어 세계를 바로 보는 능력을 상실한 어른들에게 있어서 아이들은 교사요, 아버지라는 뜻이다. 예술가들도 그렇다. 그들은 투명한 눈으로 세계를 보고 존재의 새로운 의미를 작품으로 보여준다.

필자가 이상현을 만난지도 어언 20년이 넘었다. 1980년대 후반, 그가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독일에서 잠시 귀국했을 때였다. “전 독일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상현이라고 합니다. 잠시 만나 뵐 수 없을까요?” 전화선을 타고 군더더기 없는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직접 만나보니 그는 펑크 머리에 날씬한 몸매를 한 동년배의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그 후 20여 년 간 이상현이 한국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한 과정은 ‘인생유전(人生流轉)’ 그 자체다. 부평초처럼 프랑스 파리를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 곳을 떠돌며 작품을 발표해 온 그는 귀국 후에도 그다지 안정된 삶을 살지 못했다. 1988년, 당시 동숭동에 있던 토탈미술관에서 5부작 퍼포먼스 ‘잊혀진 전사의 여행’의 마지막 편을 발표한 후, 한동안 그는 미술계의 떠오르는 스타로 군림했다. 그 절정은 ‘떠오르는 지구달 계획’을 발표했던 9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국내 모 재벌 기업의 후원으로 사하라 사막에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건립한다는 획기적인 내용이 보도되면서 그의 이름값이 치솟았다. 그러나 이 원대한 계획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결국 취소되기에 이르렀고, 그는 좌절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열린, 유럽 전위미술의 거점으로 알려진 동귀화랑에서의 개인전은 그의 작품세계를 유럽 미술계의 본산인 파리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상현의 삶의 부침은 그의 인생 여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는 한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의 주연배우였다. 그는 그때 외설시비의 뭇매를 맞고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겪었다. 그는 그 뒤 필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지닌 이중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우리 사회가 겪은 전대미문의 IMF라고 하는 실의와 좌절의 시기였다. 그런 정서를 바탕에 깔고 이 영화는 전개된다. 중년의 한 남자가 미성년자인 한 여자와 함께 이 여관 저 여관을 정처없이 떠돌면서 겪는 갖가지 성애의 모습은 출구가 막혀버린 인생의 막장에 도달한 인간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거기에 무수한 몸의 부딪힘이 있었다. 전희를 위한 도구로 회초리, 쇠사슬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출구가 막힌 상황에서 그들의 절실한 몸의 부딪힘, 곧 성희는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타나토스로 이르는 길이다.

이 사건 이후에 이상현은 한동안 좌절과 유랑의 시기를 보냈다. 그는 이 시기에 겪은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나는 ‘거짓말’이후 얼굴이 알려져서 4∼5년 동안 어디를 다니기가 어려웠다.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는 사회에서 외설논란을 빚은 영화의 주연배우로 내 얼굴이 알려진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욕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영화 속의 인물로 나를 보는 것을 느꼈다. 세상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일까? 그리고 나는 진짜 누구일까? 그런 것을 생각하며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가 ‘거짓말’의 주연배우로 출연한 것은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는 한때 잘 나가던 미술계의 스타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의 행위는 예술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볼 때, 미술이 됐든 영화가 됐든 진실을 위한 ‘몸의 투신’이란 점에서 상찬되어야 할 일이다.





거짓말’의 출연 이후에 이상현이 한동안 불교의 선(禪)과 요가의 수행에 빠진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런 일이리라. 깨달음은 큰 충격에서 비롯된다. 일상적이며 안정적인 상태에서 깨달음을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삶의 온갖 간난과 신산을 겪고 난 후에, 혹은 그 과정에서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온다.

미국의 전위음악가인 존 케이지(1912∼1992)는 동양의 선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음악에 침묵의 요소를 도입했다. 그의 ‘4분 33초’라는 작품에서 피아노 소리는 단 한번도 나지 않았다. 관객들은 그 시간 동안 기침소리, 심장의 박동소리, 휴지가 구겨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음악이었다. 이에 대해 존 케이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에는 좋다거나 나쁘다는 그런 것이 없다. 또한 추하다거나 아름다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을 삶과 구분해서는 안 되며, 삶 속에는 오직 행위만이 있을 뿐이다. 우연한 사건으로 가득 차고 다양하며 무질서하고, 단지 순간적인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뿐인 모든 삶을 사랑하자.”

이상현의 ‘자아이탈적 명상’(디지털 프린트·130x200㎝·2005)은 그 자신이 여성으로 분장을 하고 요가를 하는 동작을 촬영한 것이다. “인생은 큰 꿈을 꾸는 것, 어찌 삶을 수고롭게 할 것인가.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겨 허공 속에 앉아있네”라고 한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현실과 허구, 진실과 가짜, 선과 악, 여성과 남성, 좋음과 싫음 등등 이분법적인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불교적 선(禪)의 세계에 맞닿아 있음을 말해준다.

이상현은 지금 지난날의 삶의 간난과 신산을 툴툴 털어버리고 다시 사진과 퍼포먼스의 세계에 빠져 있다. 자신이 발명한 ‘시공간 이동호’를 타고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그가 자유연상에 의해 만들어내는 디지털 사이버 세계의 출력물들은 마치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와도 같다. 그는 그 세계 속에서 거침없이 산다.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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