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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의 문화탐험]<7>권여현-상황의 동물로서의 인간

윤진섭

■‘나는 누구인가?’..말과 행위로 사회와 ‘소통’하다

인간의 몸은 욕망의 전쟁터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욕구와 감정이 솟구쳐 질펀하게 난장을 벌이는 곳이 바로 몸이다. 재물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갈망, 식욕, 수면욕, 성욕의 다섯 가지 욕망과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미움, 두려움, 사랑의 일곱 가지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교차한다. 만일 이성이 이런 감정과 욕구를 적절히 통제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가령, 식탐을 생각해 보라. 식욕이 당긴다고 음식을 계속해서 먹으면 필경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다. 또한 재물이 탐난다고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거나, 성욕이 치민다고 타인을 강간하면 범법자가 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말은 마음과 육체적 욕망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말은 곧 소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말과 행위를 통해 상호간의 감정을 전달한다. 그것은 또한 서로간의 신체적 거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때 말과 행위의 사이에서 파생되는 오해와 혼란은 거래를 어렵게 만든다. 예컨대, 한 남성이 한 여성에게 “난,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정작 눈은 근처를 지나가는 아리따운 여성을 바라본다면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존 오스틴(1911∼1960)의 ‘수행성(performance)’ 개념은 인간이 말로써 일을 하는데 따르는 혼선의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그에 의하면 말을 할 때의 주위의 상황이 ‘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령 내가 저 배의 이름을 ‘타이타닉’이라고 짓기 위해서는 내게 배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권여현의 몸은 욕망의 거처다. 그는 뭔가 ‘되기’를 꿈꾼다. 오욕칠정이 끓어 넘치는 권여현이라는 한 자연인의 몸은 뭔가가 되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것은 작가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나에게 입력된 정보들은 시간도, 장소도, 내용도 알 수 없는 모호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왜 그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하는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나의 행동은? 나의 사고방식은? 모두가 의문이고 경이롭다.”





권여현의 분장 퍼포먼스는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환원된다. 그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양한 분장 퍼포먼스를 행했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분장한 그의 모습은 다양한 직업과 계층, 성별, 신분을 보여준다. 수도사, 남자, 소방수, 여자, 광부, 전사, 거지, 무당, 신인류, 넷맨, X-세대 등등이 그것들이다. 그는 이처럼 다양한 분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그것들은 그 자신이 임의로 나눈 사회, 종교, 역사, 과학, 욕망, 사랑 등등의 여섯 가지 범주를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그에 따르면, 이 여섯 가지의 범주는 정교하고 거대한 컴퓨터와도 같은 자신의 의식 속에 채워진 정보의 산물인데, 그것들은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카메라 옵스쿠라의 작은 구멍과도 같은 눈, 코, 입, 귀 등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무의식의 창고에 저장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범주는 결국 장차 욕망의 거소로서 몸이 치러야 할 전쟁의 내용을 암시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다시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음과 양을 표현하기 위하여 일상의 모습과 여장을 하였고, 역사, 사회, 종교를 표현하기 위하여 수도사, 소방수, 할아버지 등등으로 분장하기도 하였다. 나는 나의 기억의 레이더에 포착되는 사건이나 어린 시절의 강한 기억들을 지난날의 실제사진을 보고 재현하는 분장을 했다. 또한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으로 분장을 하여 다원적이고 자기분열적인 모습이 서로 다른 형태지만 결국은 한 몸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권여현이 분장한 서로 다른 모습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론이다. 그것들은 동일한 나의 몸에서 파생된 다른 몸들이다. 그것들은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봤음직한 소망의 대리충족이다. ‘나는 이담에 대통령이 되고 싶어’ 혹은 ‘나는 군인이 될거야’와 같은 소망들은 성장해서도 소멸되지 않고 무의식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를 만났을 때 불쑥 어렸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가령 성당에서 수도사를 만났을 경우, ‘아 나도 어렸을 때 수도사가 되고 싶었지’하는 옛 추억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권여현의 분장 퍼포먼스는 또한 그의 그림이나 드로잉, 설치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이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이 교차하는 지점의 자아 정체성을 보여준다. 가령, ‘전사1’은 유년시절에 집에서 늘 보고 지냈던 아버지의 군복을 입은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 기억은 원형처럼 그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에 떠오른 것이다.

권여현의 작업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치르지 않으면 안 될 여러 가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파생되는 신체적 거래의 모습에 대한 상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몸의 언어’로 표상된다. 예컨대 중국집 주방장으로 분장한 ‘칼’은 요리사를 통하여 상업에 종사하던 집안의 분위기를 상징하는데,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이 직종에 대한 강한 공감을 드러내고 있다.

권여현의 분장 퍼포먼스는 말과 행위를 통한 인간의 사회적 소통 양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스틴도 지적하듯이, 인간은 상황의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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