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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가을

윤진섭

K 교수님께

말복을 지났는데도 한낮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의 시침이 두 시를 가리키는 걸 보니, 밖은 아마도 타는 듯한 불가마속 한 가운데 같겠지요. 이번 여름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더워서 본격적인 여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여름이 여름다워야 하고 겨울이 겨울다워야 함은 자연의 이치를 염두에 둘 때 당연한 일이겠지요. 만일 겨울이 무덥고 여름이 추우면 그것은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을 일컫는 것이니, 만일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은 필경 인위(人爲)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K교수님!
교수님은 일찍이 약관 30대 초반에 <국전>에 응모, 대통령상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국전>의 권위가 어떠했습니까? 신문의 1면에 작품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올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끌지 않았습니까? 전시가 흔치 않았던 7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국전>이 열리는 덕수궁 현대미술관 앞에는 전시를 보러온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쳤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납니다. 교수님은 그때 ‘국전 최연소 대통령상 수상’이란 뉴스 밸류 때문에 연일 매스컴을 타셨지요. 그 덕에 일찍이 교수가 돼 후진을 양성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오늘까지 매진해 오셨습니다. 그런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교수님의 머리에도 서리가 하얗게 앉아 경륜에 걸맞는 인품의 고매함을 부드럽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K교수님!
교수님은 몇 년 전 제자의 개인전 뒤풀이에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윤 선생, 내 나이가 이제 예순 다섯이요. 올해 정년이란 말이지. 헌데 후회가 돼. 젊을 땐 한정 없이 남아있을 것만 같던 시간이 어느덧 순식간에 지나가고 머리엔 흰 서리만 앉았어요. 지금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원 없이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눈에는 얼핏 눈물이 비쳤습니다.
교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정작 교수로서 당신의 삶이 매우 충실했다는 사실은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제자들이 교수님을 대하는 모습이랄지, 다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후학을 양성하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가꿔나가는 일이 왜 아니 힘이 들겠습니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교수님은 자신의 작품보다는 후진 양성이라는 천직에 충실하여 비록 예전의 화려했던 명성을 유지하지는 못하셨지만, 제자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지요. 저는 그 일 역시 화업(畵業)을 가꿔온 것 이상으로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K교수님,
작년에 00미술관에서 열린 교수님의 회고전은 정말 보기 드물게 훌륭한 전시였습니다. 대학 재학시절에 그린 드로잉에서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엄선된 수백 점의 작품들은 40여 년에 걸친 교수님의 작품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저는 교수님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전혀 헛된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교수님의 고매한 인격이 작품 속에 스며있는 것을 보고 학과 같은 교수님의 풍모가 그냥 형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날의 수확이었습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교수님은 정년퇴임을 한 다음날부터 두문불출하고 작품에 매진하셨다지요. 그 기간이 무려 오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날 전시장에서 제가 본 작품들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훌륭한 것은 역시 정년이후에 그리신 작품들이었습니다. 그 작품들에는 인생에 대한 담담한 관조가 부드러운 색조를 통해 드러나 있었습니다. 화려하고 강하지는 않으나 홍진(紅塵)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한 부드러움의 미학이 잔잔하게 배나오고 있었으니까요.

K교수님,
오늘 신문을 보니 모 지방의 공립미술관 관장에 정년퇴직한 그 지역 출신 교수가 임명되었더군요. 연령을 보니 교수님과 동갑입디다. 기사 내용을 보니 그 분도 교수님처럼 일찍이 미술대학에 자리를 잡아 그림으로 후진을 양성하셨던 모양입니다. 지역미술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끼쳤다고, 그래서 그것이 이번 임용의 가장 큰 사유라고 신문은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신문을 덮으면서 저는 크게 탄식을 했습니다. 그 지역은 몇 달 전에 제가 학술 세미나를 다녀온 곳입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왜 전문가가 미술관을 운영해야 하는지 역설을 했습니다. 저는 발표문에서 미술관장은 ‘작가 출신의 퇴직 교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다행히 미술에 대해 식견과 경험이 없는 행정가가 관장 자리에 앉는 불행한 일은 되풀이 되지 않았지만, 결과가 석연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임용에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이 다수 응모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K교수님,
비전이 있는 사회란 능력이 있고 유능한 인재들이 사회 곳곳에 배치되어 마치 기름을 듬뿍 친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하여 미장이는 미장일을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일해 응분의 경제적 보상을 받고, 미용사는 또 그렇게 열심히 일해 살림을 꾸려간다면 그 사회는 복되고 밝은 사회가 아닐까요? 그런데 만일 미장이에게 미용 일을 맡기고, 땜장이에게 고기를 자르라고 시킨다면 그들이 그 일을 감당해 나가겠습니까?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평생토록 같은 일에 종사하면 나중에는 도의 경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일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지요. 장자에 나오는 백정의 고사는 생업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우리 사회가 이런 세상의 이치를 역행하는 것 같아 참으로 보기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K교수님,
노회한 정치가들이 무슨 자리에 나설 때 마다 공통적으로 외치는 출마의 변(辨)이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다.” 거나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거창한 수사적 발언이 빗나간 경우를 저는 여러 번 봐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라의 진정한 애국자는 그런 거창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산에 나무를 심거나 거리를 청소하는 무명의 민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나라가 별 탈 없이 굴러가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거덜이 났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지난 번 국가적 위기를 맞았을 때 금을 모아 IMF를 극복한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였습니까?

K교수님,
주제넘게 너무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지인으로부터 교수님께서 교수님이 사시는 지역의 미술관 관장 직에 응모할 것을 천거 받았으나 완곡히 사양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한다. 이젠 손자들 재롱이나 보면서 살겠다.”고 말씀하셨다지요? 그러나 그 말씀은 핑계일 뿐 실은 그 자리에 합당한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하신 넉넉한 배려임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교수님의 언행이 늘 그러하시니 주변 사람들의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이 날로 더해 가는 것이겠지요.

K교수님,
맴, 맴, 매앰맴, 창밖으로 보이는 느티나무 줄기에 매미 한 마리가 앉아 한껏 목청을 돋우고 있군요. 여름이 다 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매미는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매미 소리도 사라지고 낙엽 지는 소리만 사락사락 들리겠지요.

이 무더운 성하(盛夏)에 교수님의 안부가 궁금하여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다시 만나 뵐 때 까지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문화저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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