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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책임운영기관 운영방안--해외사례를 중심으로

하계훈

1. 서론

공공 미술관/박물관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소장 자료와 관련된 연구 인력의 전문성과 재정운영의 건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한 요소의 상승이 다른 한 요소의 상승을 촉발시키는 상호촉진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의 전문성과 재정의 건전성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관람객들의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데에 있다. 그런데 관람객이라는 집단은 박물관/미술관의 전개과정의 초기 단계처럼 동일한 속성을 갖는 비교적 균질적인 집단이 아니라 점차 다양해져가고 있으며 각 집단마다 시간의 흐름이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의해 그 속성이 계속해서 변화해간다. 따라서 현대의 박물관/미술관은 그들이 봉사해야 하는 대상인 관람객의 성분이 다양하고 그 정체성이 유동적이며, 그로 인해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비용과 시간, 전문성의 증가를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박물관/미술관의 정책을 수립하는 주체는 이러한 관람객의 속성을 이해하고 이것을 정책에 반영하여야 하는데, 여기서 다시 양자택일의 상황을 맞게 된다. 정책수립의 기조를 관람객의 요구를 맞춰줄 것인가, 아니면 관람객의 취향을 개발하고 선도하여 나아갈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박물관/미술관의 영원한 딜레마였던 대중주의와 엘리트주의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물론 절충적인 제 3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으나 어느 경우라도 사실상 양자 가운데 한 쪽으로 비중이 두어질 수밖에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설립 35년, 과천 이전 18년만에 중대한 전환의 시점에 와있다. 소위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행정자치부의 설명에 의하면 책임운영기관이란 정부기관 가운데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정부의 통제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부여받는 기관을 말한다.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미 유럽이나 일본에서 이와 비슷한 제도를 일찍이 1980년대 초반부터 실시해왔으며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이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이라는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는 데에 관하여 행정자치부와 문화관광부는 찬성의 입장에서 조기시행을 예정하고 있고 당사자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직원들은 대부분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있어서 사실상의 재정적 측면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획예산처는 기관의 운영형태보다는 예산의 절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를 둘러싼 미술관련 기관들 가운데 몇몇 기관은 반대성명을 선언하였으나 아직까지 이 계획의 졸속성과 관료주의적 발상에 대한 비판 이외에 다른 대안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는 주체는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장기간의 준비와 검토를 거친 것이 아니라 얼마 전에 갑자기 공론화된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의견검토를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도 아직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대하여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을 고려해 볼 때, 본 발표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그 운영에 있어서 오랜 동안 거의 변화 없이 지속되어 온 것에 주목하며, 이에 대하여 이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모종의 변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입장에서도 변화하는 관람객의 추세와 문화계 전반의 변화의 흐름에 부응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일정한 전제조건을 충족해준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을 조심스럽게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다.


2.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

국립현대미술관이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을 성공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보다도 명실상부한 자율성 확보에 있다. 물론 이러한 자율성은 책임이 수반되어야 하며 자율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앞에서 언급한 관람객에 대한 충실한 봉사에 있고, 이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구 인력을 중심으로 한 전문성과 기관의 재정의 안전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이 성공하기 위해서 미술관의 관장은 책임과 권한을 모두 올바르게 확보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에서 마련한 안에 따르면 관장은 일반 행정 공무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사권을 가질 수 없게 되어있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문제를 안고 있는 상당부분은 행정직 공무원 비율의 비대함과 그들 중 상당수 인원의 시대착오적인 관료주의적 사고와, 문화발전보다 자기보신을 최우선으로 삼는 비문화적 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적 구성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에 대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정부가 운영의 효율성과 비용의 효과적인 절감을 요구하면서 어떻게 외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무국장이라는 쓸모없는 고위직책을 그대로 유지한 채 효율성을 지향하는 책임운영기관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길 바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어떻게 총원 89명 가운데 2/3가 넘는 62명이 사무국의 일을 하는데 매달려있어야 하는가? 미술관에서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 학예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때때로 병원이 원무과 직원들 중심이 아니라 의사들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과 비유된다. 병원에 의사보다 원무과 직원이 더 많아야 한다든지, 의사가 없을 때에는 원무과 직원이 대신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물론 이 문제는 실정법상으로 행정자치부 소관의 정부조직법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문화관광부와 행정자치부가 진정으로 효율적인 기관운영의 의지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이러한 쓸모없는 직책부터 제거함으로써 쓸데없는 예산을 지속적으로 낭비하지 않도록 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선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지 못할 때 문화관광부의 행정공무원들은 이번 제도의 변화를 기회로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참고로 영국의 박물관/미술관 위원회(Museums & Galleries Commission)에서 조사한 영국국립박물관/미술관의 지표에는 소속기관의 인력을 학예직(curatorial), 작품보호직(warder)과 기타(others), 이렇게 3종으로 구분하여 파악하고 있으며 그 비중에 있어서도 전체 인원 가운데 학예직 인력이, 런던의 대영박물관은 약 30%, 국립초상화미술관의 경우에는 약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 박물관에서는 45%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러한 백분율 수치는 작품보호직을 제외하면 더욱 높아져 학예직의 비중이 50%를 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수치가 시사하는 것처럼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행정직원의 비중이 2/3를 넘게 차지하는 조직은 이미 비정상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이다.

정부가 스스로 천명하고 있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에 있어서 진정으로 기관장의 인사권과 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주지 않는다면 이러한 조직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관장에게 부여되는 인사권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불필요한 행정직의 비대현상이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외국의 사례를 인용하는 것은 하나의 참고가 될 뿐이지 우리의 사정과는 맞지 않는다며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우리는 외국 사례의 성공과 실패를 참고삼아 어느 정도 우리 미술관의 미래를 계획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일본 국립미술관의 독립행정법인화

우리가 새로운 정책의 수립이나 제도의 도입에서 흔히 참고로 하는 일본의 경우 2001년 4월에 독립행정법인화라는 명칭으로 정부기관 50여 곳을 선정하여 자율적 운영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별 기관에 부여하였으며 대상 기관 가운데에는 도쿄국립박물관을 비롯한 3개의 국립박물관과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을 비롯한 4개의 국립미술관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발표자는 2002년 8월 도쿄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의 학예과장과 서무과장을 만나 직접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간략하게 일본에서 미술관을 독립행정법인으로 전환하는 정황을 파악해 볼 수 있었다. 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일본 국립미술관의 독립법인화가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에 시사하는 바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국립미술관들의 독립행정법인으로의 전환이라는 변화는 일본 경제의 침체와 이에 따른 기업과 정부의 재정적 부담이 증가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일본사회에는 그동안 3,000개에 가까운 공사립 미술관과 박물관이 설립되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 시작된 경제적 침체의 여파로 박물관/미술관의 운영은 재정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된 독립행정법인화의 핵심 내용은 이제까지 정부로부터 미술관들이 정부의 일반회계의 틀 속에 갇혀 1년 단위의 단기적 운영에 그칠 수밖에 없었고 한 번 편성된 예산을 쉽게 수정하기 어렵다는 집행상의 경직성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업과정에서 절감되거나 미집행된 예산을 차기년도로 이월하거나 전용하지 못하고 국고로 귀속시킬 수밖에 없었던 한계에서 벗어나 수년간에 걸친 장기계획 수립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과 앞으로는 각 기관이 독립적으로 신축성있게 예산의 배정비율을 수정한다거나 이제까지 금지되었던 외부로부터의 기부금이나 협찬금을 모금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까지 국공립 미술관이 정부에서 배정해주는 예산으로 안이하게 운영해오던 타성을 벗어나서 이제는 각 기관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자극을 주게 되었다. 독립행정법인으로 지정된 기관들은 예전에 정부로부터 지원받던 운영보조금이 약 90-94%로 삭감되고 나머지 6-10% 정도를 스스로 확보하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게 되었다.
이렇게 스스로 확보하여야 하는 예산비율은 과거 5년간의 입장료 수입을 중심으로 한 수입금의 평균값으로서, 이제 관람객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이 기관의 적자를 의미하게 되므로 기관의 생존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관람객을 끌어들일 전략이 필요하게 되며 동시에 기금모금에도 전례 없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독립행정법인화된 기관들은 재정면에서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를 위하여 미술관들은 기구를 개편하여 이전의 조직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기금모금 담당자나 마케팅 부서를 편성하고 관람객을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묘책들을 내놓고 있다. 놀랍게도 발표자가 방문했던 국립서양미술관의 경우에는 당시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관람객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미술관이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데 소홀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국립서양미술관의 이러한 느슨한 운영에 긴장감을 부여한 점은 독립행정법인화를 통해 기관운영을 적극적이고 소비자(관람객) 지향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2002년을 기준으로 국립서양미술관에는 총원 31명이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당시까지 볼 수 없는 기금모금담당자인 사업추진관(事業推進官)이라는 직위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행정직과 연구직으로 구분되어 있는 조직에서 우리나라의 학예실장에 해당하는 연구직의 차장(次長)이 일반직으로 옮겨지면서 부관장이라는 직제가 새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조직의 환경변화에 따라 기금모금과 같은 비학예연구 활동의 비중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학예직의 고유 업무를 포함한 일반행정 업무를 행정직보다는 학예직에 배정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으로 판단한 조처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의 국립미술관들을 독립행정법인화시킨 것은 각 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한편으로 일종의 재정적 위기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국립서양미술관의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비록 과도기적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새로 만들어진 기금모금담당자 자리에 이름만 바꾸어 이전에 근무하던 내부직원을 이동시켜 임명하는 정도로는 이 변화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국립미술관의 독립행정법인화에서 실패요소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출발 초기에 조직개편에 수반되는 전문인력의 확보에 실패하고 이전과 동일한 인력의 풀에서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고이는 식의 비효율적인 인사에서 기인하였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려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실패 사례를 무심히 보아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또 하나의 문제는 운영의 자율성과 관련되는데, 독립행정법인화된 박물관들과 미술관들은 각 기관이 하나의 법인조직 속으로 통합되고, 독립행적법인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합하는 법인본부 사무국이 법인 이사회를 두게 되어있어 개별 기관의 진정한 자율성 확보에 문제가 있으며 정부가 법인본부 사무국을 통하여 개별 기관의 완전한 자율성을 견제하였다는 점에 있다. 책임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자율권이 제대로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의 독립행정법인화 조치에서 배울 점은 해당 기관들에게 각 기관마다 초기의 시행착오를 감당해낼 수 있도록 5년간의 초기 사업계획을 비교적 여유롭게 준비한 중기목표를 문부과학대신(文部科學大臣)의 인가를 받은 법률형태로 제정하고 출발하였으며 학예직을 비롯한 직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연수나 외부로부터의 기부금 수혜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하고 출발하였다는 점이다.


4. 영국의 국립박물관과 미술관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는 이론적인 근거로는 일본의 사례와 함께 일본이 참고로 삼았던 영국의 1980년대 초의 책임운영기관화 사례를 자주 인용하고 있는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영국 역시 1970년대 말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집권 노동당은 보수당에게 정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새롭게 집권한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 수상은 정부 재정에 대하여 모종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던 상황에서 이러한 전환을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실제로 영국의 사례는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5년이 넘는 준비기간과 자율운영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는 재정관리에 대한 법안의 정비 등이 선행되었고 독립적인 기금도 마련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경우 정부기구의 책임운영기관으로의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 대상 기관을 살펴보면 영국은 단 하나의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시키는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영국에서는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시킬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국의 국립박물관과 국립미술관들은 이미 그 이전부터 문화예술이라는 컨텐츠를 다루는 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관료주의적 행정 간섭의 폐해가 예상되는 정부의 긴밀한 통제 아래 놓아두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그 명칭으로부터 알고 있는 영국의 국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실제로는 국립기관의 기능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법적 성격은 독립된 이사회를 갖춘 일종의 법인성격으로 운영되었으며 정부예산의 지원도 대부분 정부가 아니라 의회로부터 직접 배정받는 형식을 갖추었다. 이러한 재정운영 방식에 내포된 의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같은 문화기관은 비록 그것이 국립기관의 성격을 갖고 공공적인 기능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정부의 통제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정부의 관료주의적 통제에 들어갔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산의 배정도 정부가 아닌 의회를 통해 배정되었으며 기관의 운영도 각 기관의 이사회를 통하여 자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모범사례로서 영국의 사례를 인용하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다.

영국의 국립박물관과 미술관들에 대해서는 법에 의해 총체적으로 정의되어 있는 것이 없다. 다만 개별 기관이 특별법에 의하여 그 기관의 성격과 권한 및 의무를 정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대표적인 국립미술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의 경우는 설립의 근거로서 1954년에 제정된 Tate Gallery Act를 들 수 있다. 영국에서 국립박물관/미술관이라 함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소장품을 수집, 보존, 전시하며 정부를 대신하여 이사회를 통해 운영되며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며 그 대가로 필요한 경우 정부의 요청에 대하여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영국의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해서는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그 대상기관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Museums & Galleries Commission, The National Museums (HMSO, 1988) 참조)

책임운영기관과 관련하여 우리가 영국의 국립미술관의 사례에서 배울 점은 모든 국립미술관들이 국립기관으로서의 공공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인 정책결정과 운영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이사회를 두고 기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운영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극소화되어있다는 점이며 직원들의 신분이 엄격히 말하여 공무원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직원의 해고와 채용은 상황에 따라 보다 자유로울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인건비에 관련하여 운영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무리 없이 유지될 수 있는 배경에는 영국사회가 고용과 관련하여 마련해 놓은 사회안전망이 든든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의 관장을 역임했던 David Wilson은 그의 저서 에서 대영박물관의 국제적인 명성의 원천은 학예직원의 학문적 전문성에 있으며 그들의 역량의 신장을 위하여 충분한 연구 환경을 조성해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학술적 활동과 강연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학예직원들의 연구업적은 이사회 산하의 학술위원회(Scholarship Committee)에서 그 연구의 질을 평가하여 연봉이나 승진 등의 평가에 반영되므로 학예직원들은 자신의 전공영역에서 항시 연구를 소홀히 하지 못하며 평생을 학문적으로 긴장하며 지내게 된다.
이러한 전문성의 신장은 기관에 대한 신뢰성을 높임으로써 정부의 지원을 확대시킬 뿐 아니라 민간영역으로부터의 지원과 기증, 기부가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직의 경우 그들의 연구 환경이 열악한 점은 이해가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전문직으로서의 노력을 해왔는가에 대한 내부로부터의 자기반성,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 능력 신장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자문이 이루어지기를 권한다.


5. 그 밖의 사례들

정부의 관리 하에 운영되어 오던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을 민영화한다든지 또는 독립법인화나 책임운영기관화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전세계적으로 적지 않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정부재정 부담의 축소가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관심사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을 포함한 문화유적을 민간기업에 임대하여 운영하는 방식을 채택하고자 시도한 적이 있으며, 스페인의 국립 프라도미술관의 경우도 작년 봄 국왕의 칙령에 의해 미술관 조직 구성이나 이사회의 권한, 예산의 수립과 조정, 직원의 고용과 임금의 조정 등의 권한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작년 11월에는 의회에서 이를 완전하게 승인받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 통제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프랑스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루브르박물관의 경우 이제까지 매년 입장료 수입의 45%를 사실상 프랑스 정부가 운영하는 박물관협회(Runion des Muses Nationals)로 납부하여 전체 국립박물관/미술관에 재분배되던 것을 올해 초부터는 자체적으로 입장수입을 관리할 수 있게 변경하였을 뿐 아니라 미술관의 전시, 예산 등에 대하여 자율성을 부여받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6. 결론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둘러싼 미술계의 논의는 찬성이나 반대라는 이분법적인 의견제시에 앞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본질적인 문제에서부터 변화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의 성격이나 운영의 형태는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든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든 정부에서 미술관을 바라보는 관료주의적 시각이 변함없는 한 별로 의미가 없다.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함으로써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자율성이 높아진다는 그럴듯한 의미부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각과 의식의 변화가 없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행정기관으로의 전환을 통해 우리가 기대할 것은 별로 없으며 오히려 현재상태에서 더 나빠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앞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관의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변화의 밑바탕에는 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와 함께 행정공무원들로 구성된 박물관과 미술관 조직의 비효율성과 관료주의적인 비문화성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 문제의 핵심은 행정공무원들의 관료주의적이고 집단이기주의적인 사고를 타파하고 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제대로 확보하는 문제와 함께 전문 직원들의 자기노력과 관람객에 대한 봉사정신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성격은 독립행정법인이든 책임운영기관이든 아니면 그 밖의 어떤 형태가 되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발표자의 생각에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는 법령과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과 그들의 의식에 있는 것 같다.

참고문헌

David M Wilson, The British Museum--Purpose and politics, (British Museum Publications Ltd., 1989)
Museums & Galleries Commission, The National Museums (HMSO, 1988)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연보 2003> (2004. 3)
최석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언제 햇볕이 들까” (가나아트, 1996 7/8) 140-44쪽
하계훈, “일본문화정책의 변화 -- 박물관과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일 문화정책 비교세미나--일본문화공간의 현황조사를 통해 본 한국의 문화정책 개발>(2002. 10.16. 국회문광위원회, 추계예술대학교)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화를 반대한다” (월간미술 2004. 8) 42-3쪽
최열, “서비스 강화와 자율성 증대를 위한 구상” (월간미술 2004. 8) 44쪽
김찬동, “책임운영기관 전환의 필요성과 전제조건” (월간미술 2004. 8) 45쪽
獨立行政法人國立美術館, <獨立行政法人國立美術館關連法規等> (2001)
國立西洋美術館, <獨立行政法人國立美術館 國立西洋美術館要覽> (2002)

- 민족예술 200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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