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이미지로 보여주는 코리아

하계훈

리메이크 코리아 2005. 1.12 - 3.26 스페이스 *C


스페이스 *C에서 열린 <리메이크 코리아>전은 우리나라의 산수화, 미인도, 고분벽화, 민화 등 전통미술의 여러 가지 표현과 특징을 차용하고 변용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9명의 작가들의 작품전이었다. 전시 도록 서문을 쓴 미술평론가의 말처럼 전시 제목을 처음 접하면 무슨 슬로건이나 캠페인 구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번 전시는 기본적으로 ‘다시 표현하기’ 또는 ‘다시 만들기’를 통해 왜곡된 우리 근대사의 질곡 속에서 일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통미술에 대한 의식적 폄하경향을 극복하는 한편, 우리의 전통미술 속에 담겨온 현대적 재해석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추출해내고 이것을 동시대의 예술적 문맥 속에서 새롭게 구성해냄으로써 원본에서 읽을 수 없는 보다 긍정적으로 확장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한 작품들이 때로는 재치있고 때로는 진지하게 제시된 흥미로운 전시였다.

전시장의 구성은 평면과 입체, 설치와 영상 등의 여러 가지 형식을 고르게 도입함으로써 주제를 담는 형식적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시켜주었으며, 작품들의 내용 면에서는 작가의 사회 관찰자적 시각에서부터 자기 내부의 성적 정체성이나 역사의식, 개인적 삶에 대한 관조 등의 다양한 주제를 심각하거나 복잡하지 않게 다룸으로써 관람객과의 소통도 비교적 잘 이루어진 전시였다.







준비 기간동안 담당 큐레이터와 작가들 사이의 몇 차례 대화를 통해 작품의 제작과정의 경험과 주제에 대한 해석의 깊이를 좀 더 깊게 공유할 수 있었던 점이나 상업주의의 확대와 빈약한 큐레이터쉽으로 점점 애호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는 오늘날의 미술계의 현실에서 의미있는 주제를 천착해보았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주어진 주제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은 각자의 특징적 개성을 드러내면서 이와 동시에 전체적으로 몇 가지 공통점을 나타낸다. 우선 작가들마다 전통적 예술 형식의 해석에 있어서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의 개인적인 학습과 활동의 경험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이로써 작품들이 시공간적으로 과거보다 폭 넓은 시각적 보편성을 띠게 된다.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우리 조상의 시각문화에서 세속의 이콘(icon) 성격을 띠던 모티브들이 오늘날의 작가들의 재해석을 거쳐 다른 문화권과의 제휴 혹은 이종교배를 성공적으로 소화시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꽃무늬천 위에 아크릴로 그린 장희정의 초충도에서는 우리 전통미술이 작가의 손질을 거쳐서 서양인들의 생활공간에 깊숙하게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보여주며 로코코 풍의 화려한 액자 속에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보았음직한 여인의 비스듬한 얼굴이 담긴 이순종의 <초상>에서는 두 문화의 무리없는 동반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굳이 표현장르의 구분을 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에 참가한 작가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화를 전공한 김지혜의 민화를 변용한 작품이나 전시장 기둥을 이용한 원통형 설치 작품에서는 묘하게 우리 전통 민화의 모던한 성격과 전통문양의 현대적 요소를 우리뿐 아니라 보편적인 관람객들이 보다 친근하게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전통 산수화의 세부를 대형 캔버스 위에 확대하는 과정을 통해 신표현주의적 스트로크와 우리의 먹붓을 중매하고 전통 산수화를 모티브로 하여 산수화의 형이상학적 정신으로의 회귀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정주영의 작품은 작품의 규모나 색상 면에서도 전시장 공간과 잘 어울리게 배치되었다. 출품작가 가운데 가장 오래 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우리나라와 우리의 문화를 대상화하여 바라볼 수 있었던 코리안-아메리칸인 써니 킴은 전통자수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에서 우리의 전통회화뿐 아니라 전통공예의 영역에서까지 현대미술을 위한 해석과 변용이 가능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공로를 세웠다.

개항 이후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서로 어울리기 힘들어 보이는 전통문화와 서양문화가 정치적 허구와 상업적 기만에 의해서 우리에게 오래 동안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다 준 가운데 열린 이번 전시와 같은 모멘텀을 통해 우리 예술가들이 새롭게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