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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 한국에 오다

하계훈

대영박물관 한국전
2005. 4.12 - 7.10 예술의 전당 미술관


영국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영박물관의 소장품 330여 점이 한국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영박물관은 의사이며 수집가였던 한스 슬론 경(Sir Hans Sloane)이 1753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평생 동안 수집해온 서적과 자료들을 국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제안한 것이 의회에 받아들여지면서부터 설립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마침내 1759년부터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은 유럽에서 계몽주의 사상이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국적 문화와 과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증가하며 국가간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경쟁적 관심이 늘어남으로써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에 적합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요구되고 있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그 속성상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설립되기 힘들며 오랜 기간동안 자료의 축적과 그 자료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재정적으로도 준비되어야 한다. 대영박물관을 세운 영국도 이미 1700년대 전반까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골동품들과 앤 여왕시대의 소장품 및 조지 왕 시대의 사회지도층 인사가 기증한 자료 등을 정부에서 보관해왔었으며, 1700년에 로버트 코튼 경의 가족이 기증한 서적과 동전, 그리고 옥스퍼드 백작인 로버트 할리와 에드워드 할리의 필사본 등이 구입되면서 박물관 설립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모멘텀만을 기다려 온 셈이었다.







영국의 라이벌이자 이웃나라인 프랑스도 이 무렵부터 지식인들과 일부 관리들 사이에서 오스트리아와 영국의 박물관 설립 움직임을 감지함으로써 국내에서의 박물관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의 필요성이 널리 공감되었다. 여기에다 디드로와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도 박물관이나 미술관 설립을 통한 국민계몽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파리의 뤽상브르그 궁전을 대중에게 개방하는 미술관으로 준비하여 1750년부터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일반 공개를 시작하였고, 나아가 루브르 궁전의 공간을 이용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왕실 컬렉션을 대중에게 개방하기 위하여 1784년에는 화가 위베르 로베르를 왕실 컬렉션 관리인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와 영국의 박물관 설립 과정을 살펴보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프랑스가 왕실 소장품을 중심으로 국가의 주도 아래 박물관 문화활동이 전개되는데 비하여 영국은 왕실과는 별도로 의회와 일반 시민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의 지식인들과 귀족들은 사회적 의무감을 갖고 자신들의 소장품이나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필란트로피 정신을 발휘하였으며 이러한 행위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오늘날 영국의 대부분의 국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과 자료들은 크게 서양 고전주의 시대의 작품과 중세의 종교적 유물, 르네상스이후의 거장들의 미술품, 그리고 그 밖의 자료로는 중동지방과 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와 동북아시아의 민속품과 미술품들로서 비교적 폭넓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700만점에 달하는 대영박물관의 소장품들 가운데 우리나라 주관자가 마음껏 자료를 선택하여 전시할 수 없었던 것은 대영박물관 자체의 엄격한 유물관리 원칙과 담당 큐레이터의 관점, 그리고 현실적으로 제한된 재정의 규모 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적 조건 속에서도 초기의 대영박물관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나 대영도서관을 이용했던 칼 막스, 레닌 등의 친필 열람신청서 등을 복사본을 통해서라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대영박물관의 소장품들이 한국으로 소개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언급한 1753년의 개관 논의를 기점으로 2003년을 개관 250주년으로 삼은 박물관 측이 대영박물관을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고 중요한 유물을 국제적으로 대여함으로써 인류의 공동 문화유산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린다는 공익적인 목적과 함께 날로 어려워지는 박물관 운영에 있어서 재정상의 문제를 타개하는 방법으로서 국제적으로 희귀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소장품을 대여해주고 대여료를 받는 방법을 택한 것이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과 같은 나라의 문화적 욕구와 경제적 능력 면에서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의 전당 1층 전시 공간 전부를 이용하고 있는 전시장은 전시자료의 수에 비하여 전시공간이 다소 협소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공간의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나 블록버스터 전시에 몰려드는 많은 수의 관람객들을 전시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유통시키는 문제와 씨름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번 한국의 전시장 디자인은 한국 측의 전문가들과 대영박물관의 디자이너들 사이의 협의를 거치고 대영박물관의 작품 호송관들의 직접적인 방문을 통해 자료의 안전을 위한 보안장치와 온도 및 습도 조절장치 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전시 내용과는 별도로 전시 공간 디자인이나 자료관리 면에서 숙련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공교롭게도 이번 전시를 유치하기 위하여 대영박물관 측과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지난 가을에 대영박물관 전시실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때문에 담당자들이 더욱 민감해진 까닭에 한국 전시장 내의 보안상태가 강화되었고 경우에 따라서 관람객들에게 다소 불편한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이 점 역시 중요한 문화유산 보호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기 위하여 대영박물관 측에서는 10여 명의 직원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전시 뿐 아니라 아트 상품 판매 등 전시와 관련된 모든 활동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으며 5월 중에는 대영박물관장인 닐 맥그리거의 한국 방문도 예정되어 있어서 대영박물관 측으로서도 이번 전시가 갖는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전시된 자료들은 대영박물관장이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최고의 자료들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의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는 대영박물관의 소장품답게 잘 관리, 보존되어왔으며 자료 하나하나마다 담당 큐레이터의 심층적인 관리와 연구가 이루어진 점은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워낙 자료가 방대하므로 그 가운데에는 질적으로나 해석상의 의미에서 다소 중요성이 덜한 자료가 포함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이번 서울 전시에 앞서서 벌어진 일본 전시 때문에 자료보존 측면에서 대영박물관의 담당부서가 전시되었던 자료를 회수해가고 대체자료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내부적으로 대영박물관은 한 번 대여된 자료는 다시 다른 곳으로 이어서 대여하지 않고 자료의 정밀한 컨디션 관리를 위하여 일단 회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전시된 자료 가운데 의미 있는 것으로는 우선 전시장 도입부에 전시된 한스 슬론 경의 초상사진이나 지금은 없어졌지만 초기의 박물관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몬테규 공작 저택의 외관과 실내의 모습, 그리고 초기의 입장권의 복제사진 등을 들 수 있다. 입장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초창기의 대영박물관은 서면으로 관람을 신청한 사람에게 지명된 입장권이 발행되었으며 관람 날짜와 시간이 지정되어 있고 5명 단위로 그룹을 이루어 안내를 받으며 관람하게 되어 있어서, 초기에는 대중을 위한 박물관의 공개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지를 써서 박물관 관람을 신청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박물관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며 관람시간을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으로 정해놓은 것 역시 이들 노동자 계급의 관람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어렵게 관람이 허가된 관람객들도 초기에는 박물관 안내인의 인솔에 따라 전시장을 관람하여야 했었다. 그러나 몬테규 하우스의 실내를 보여주는 수채화에서 보는 것처럼 1845년에는 이미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자유롭게 전시장을 거닐 수 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영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으로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 온, 일명 엘긴마블이라는 대리석 조각들과 1799년에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발견했으나 영국군에게 빼앗긴 로제타 스톤, 그리고 이집트의 미이라, 앗시리아의 님루드 궁전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사자 조각상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은 국외 반출이 쉽지 않아서 이번 전시에는 복제품이나 자료사진 등으로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수메르 여왕의 수금이나 앗시리아의 죽어가는 사자상 부조, 미이라 뚜껑에 덮여있던 죽은 이들의 초상 패널, 그리고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멜랑코리아>나 리멘슈나이더의 목판 부조 등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도 방문 시기를 맞춰야 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었는데 이번에 국내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어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필자는 자료를 대여해주는 입장에 있는 대영박물관의 콧대 높은 태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문턱도 경험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박물관의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전문적이며 꼼꼼하게 소장품을 다루며 책임감 있게 업무를 처리하는 태도를 본받을 필요도 느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어느새 세계적인 박물관과 소장품 대여협상을 벌일 수 있는 정도까지 성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부심도 느꼈다.
물론 관련 분야의 일각에서는 이번 전시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우리 측의 큐레이팅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블록버스터전이며 국내 전시문화의 활성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못하는 외화낭비성 전시라는 비난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적 쇄국주의를 주장하거나 우리 관람객들 모두가 런던으로 박물관 관람을 갈 수는 없으므로 다소 부족하지만 차선책으로 선택한 전시로 이해하고, 이번 기회를 통해 대영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일부분이나마 국내에서 손쉽게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국제적인 문화연계의 채널을 개척하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우리의 문화를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도 모색하며, 이번 전시를 통하여 우리보다 박물관 문화에 있어서 한 발 앞선 이들에게 한 수 배우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간미술 200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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