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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진

하계훈

얼마 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품인 모나리자의 제작 기법의 비밀이 밝혀졌다는 해외토픽을 접한 적이 있다. 외신에 따르면 다빈치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스프마토’라고 알려진 오묘하고 환상적인 표현기법을 발휘하기 위하여 겨우 2밀리에 불과한 미세한 색선을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해서 칠해가면서 오랜 기간을 들여 모나리자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사례처럼 위대한 작품에는 우리가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엄청난 양의 공력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순간의 번개같은 영감을 한 획의 붓으로 휘두르는 식의 표현도 작품 제작방식으로서 유효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식으로 표현된 작품들이 작가의 예술적 감수성과 진지하고 꾸준한 공력이 결합된 작품이 주는 무게를 능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장희진은 반복과 축적을 통해서 공들인 화면을 만들어내는 젊은 작가다. 그녀는 화면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해서 테이프를 붙인 상태에서 수십 번 물감을 바르고 난 뒤 테이프를 제거한다. 다음으로 그 위에 작가는 사포를 이용하여 화면을 다듬고 채색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화면은 골판지처럼 캔버스 위에 일정한 요철을 드러내는 골을 형성함으로써 화면에 리듬감과 변화를 주며 조명의 위치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는 옵티컬 아트의 속성도 드러내게 된다. 반복과 축적을 통해 형성된 화면에 배어있는 작가의 노력의 무게가 장희진의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렇게 제작된 바탕 화면 위에 나무나 숲과 같은 일상의 우연한 풍경의 편린을 단색으로 도입한다. 마치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나무들의 실루엣을 보는 듯한 평면적이고 단순한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이상스럽게 화면 속에서는 상당한 공간적 깊이감이 느껴진다. 장희진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방법과 가까이 다가가서 세부를 관찰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두 가지 방법은 관람자들에게 아주 상이한 시각적 체험을 하게 해준다. 멀리서 볼 때 창밖의 풍경처럼 보이던 작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일정한 간격으로 이루어진 화면의 골과 그 위에 더해진 작가의 붓놀림으로 구성된 추상적 표현으로 해체되어간다. 단색의 바탕화면에 지극히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기에 다시 한번 공력을 들이는 그녀의 작품은 추상성과 재현성이 동시에 나타나며 작품의 물성과 이미지의 재현성이나 색채의 상징성이 함께 드러나는 독특한 표현을 이룬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이고 육체노동이 수반되는 제작방식으로 탄생한 작품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완성된 그녀의 작품에서는 경우에 따라 전광판을 통해 드러나는 디지털 이미지의 명멸하는 듯한 첨단성이 느껴지며 의도적으로 도입한 금속성 바탕색과 피사체 사이의 상충하는 색상의 대비에 의해 도발적인 생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날 디지털 영상 기술의 발달은 시각적 재현을 더욱 간편하게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 미술에 있어서의 시각적 재현성을 더 이상 전문적 활동영역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에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게 화면 바탕을 반복해서 수십 번 칠하고 그 위에 사진 이미지를 세밀화에 가깝게 공들여 재현하는 장희진의 작품 제작태도는 우리들에게 작가가 창작과정에 몰입하는 과정이나 시각적 이미지의 현대적 해석과 활용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빈치의 시대나 오늘날 우리들의 시대나 자신의 작품에 진지한 공력을 들이는 작가들을 별 노력 없이 쉽게 능가하는 방법은 그리 쉽게 발견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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