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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의 뿔

하계훈

미술계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대부분의 작가들이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공모전에 응모하기도 하고, 전시회에 참여하고, 조촐하거나 또는 굵직한 전시의 큐레이터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얼굴을 익혀가며 주변인들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작업의 결과에 대해 반응을 듣는다. 이렇게 그들은 한편으로는 작가라는 예술생산자로서 살아가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면서 경제생활의 소비자로서의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창출하는 생활이나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생활이 바람직하고 가치 있으며 권할 만한 생활이라고 여기는 오늘날에 작가로 사는 일은 그 생활에 함유되어 있는 가치들을 쉽게 증명하기가 어렵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증명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의 생산과 소비의 방식이 노동생산에서 기계생산을 거쳐 첨단 정보사회, 디지털 사회로 진화해오는 동안 작가의 작품생산 방식은 약간의 창작도구의 발전은 있었으나 여전히 작가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경제적인 측면이나 능률의 측면으로 볼 때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쁘기 때문에 혹은 관심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외면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대다수의 작가들은 자신의 직업을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수시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딜레마의 뿔>전은 6명의 작가가 이렇게 미술인으로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많은 기억과 고민을 동시대의 관람객들에게 털어놓는 자기공개형 전시였다. 우리는 전시장에서 대부분의 경우 작가의 창작 프로세스를 거친 완성작과 대면한다. 말하자면 한 작품의 창작과정에서 작가가 생각하고 경험하고 고민하던 과정에 대해서 보다 밀착하여 알아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예술적 이상과 당장의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딜레마 속에 양자택일을 하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 작가들의 선택과정, 그 과정에서의 고민과 성취욕, 가능성과 한계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1층과 2 층으로 구성된 전시실 가운데 1층 전시실은 6명의 작가들 중에서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박미나와 사사에게 주어졌고 2층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나머지 4명의 작가인 김월식, 류현미, 배인석과 진훈에게 할당되었다.
이들 여섯 명의 작가들은 작가라는 사실 이외에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실제로 전시회를 기획한 측에서도 오늘날의 작가들의 사고와 현실을 잘 반영하기 위하여 지역이나 학습 배경, 작업 경향이나 성별 등의 안배를 고려하였다고 하니 각각의 작가는 오늘날 우리 시대를 사는 수십만 명의 작가들 가운데 한 유형을 대표하는 셈이다.

전시에 참여한 여섯 명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오면서 오늘날의 작가 본인을 형성시켜준 환경과 배경, 사건 등을 이런저런 물건을 통해 저마다 펼쳐 보여주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생산된 작품들도 여기에 곁들이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그대로 전시공간으로 사용한 작가도 있었으나 배정받은 공간을 작업실이나 개인의 방 또는 동아리 공간 등으로 연출한 작가들도 있었다. 관람객들은 그들이 연출해놓은 공간 깊숙이 침투하여 작가의 사생활 엿보기를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거의 모든 작가가 그 시절에 유행하던 모 출판사의 미술서적들을 손때 묻은 채로 간직해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미술계의 작가 양성 루트가 얼마나 단선적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빈약한 담론을 통해서는 풍부한 예술작품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번 전시는 참여 작가들이 전시 기획자의 의도를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밝혀낼 수는 없지만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낸 공간연출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물적 증거들을 통해 관람자들은 작가 개개인의 성장과정과 생각, 작품의 진화를 읽어낼 수 있으며 개별적인 것들을 종합할 때 결국 우리 미술계의 지난 수 십 년의 궤적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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