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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私的) 모티브를 통한 자아 추구

하계훈

장지에 먹을 이용하여 인간과 사물의 본성에 내재된 이중적 속성을 탐구해 온 박민희의 작품은 몇 가지 사적인 모티브들을 통해 화면이 구성된다.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중요한 모티브 가운데에는 우선 선인장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인장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단단함과 굳건함은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점의 변화에 의해 화면 속에서 마치 동심(同心)으로 전개되는 꽃의 형상과 같은 아름다운 곡선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듯한 선인장도 결국 그 이름다움에 끌려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줄기에 돋은 가시로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이율배반적이고 양면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좀 더 사적인 모티브로는 모피 혹은 털 뭉치라고 부를 수 있는 오브제가 있다. 여기서는 작가 개인의 어린 시절 기억에 자리 잡은 털짐승에 관한 혐오스런 기억이 화면 속에 표현되지만 동일한 작품 안에서 모피가 주는 포근함이나 애완동물에 대한 호감을 가진 이들의 눈에 비치는 따스함도 동시에 읽힌다고 볼 수 있다. 박민희의 작품에서는 이처럼 하나의 오브제가 갖고 있는 상반된 속성이 이중적으로 혼합되어 있다.
박민희의 작품에서는 회화의 사실적 구성보다는 마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데페이즈망에 가까운 오브제의 정위치 이탈이 나타나기도 한다. 작품 가운데 하나에서 묘사된 털뭉치 속에 박힌 듯한 다리와 귀, 의자와 숫자 3은 작가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느낌은 다분히 모호하고 상징적이며 기존의 통념적인 인식을 전환시켜주는 일종의 기이한 효과를 자아낸다. 또 다른 작품에서 동물의 꼬리같은 털뭉치와 선인장의 가지가 동일한 화면에 엮인 복합체는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의 대조와 혼합, 동경과 배제, 공감과 상처 등의 정서가 이중적으로 얽혀 있다.

박민희의 작품은 다분히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사고의 축적을 드러내며 조심스럽게 관람자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작가는 한국화의 전통적인 재료인 장지와 먹을 사용하여 흑백의 화면을 구성하고 있지만 표현 형식에 있어서는 전통적 수묵화와는 다른 현대적인 모티브와 구도를 구사함으로써 현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색채를 사용하지 않지만 먹의 농담과 세필의 표현에 의해 화면의 단조로움을 회피해나가고 있으며 화면 속의 원근법과 명암의 균형을 다양한 필법으로 잘 유지해가고 있다.
최근 들어 박민희는 작품의 숙성과정에 맞춰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갈등의 이분법을 해소하고 보다 성숙한 장으로의 전환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혐오의 대상을 극복하듯이 털을 깍아낸 신체의 암시성이나 공포와 혼란의 공간을 탈출하듯이 알에서 깨어나는 존재의 상징성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검은 물에 스스로를 씻어내는, 마치 기독교의 세례의식과도 같은 상징적 행위를 통해 과거의 혼란과 번뇌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박민희의 작품에서는 작가의 자아의식이 여성으로서의 페미니스트적인 의식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마치 1차대전의 충격으로 내면적 자아를 향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자기추구 소설로서의 <데미안>이 탄생한 것처럼 박민희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사적인 경험과 사색을 객관화하면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화와 새로운 탄생을 추구하는 듯하다. 최근 들어 박민희가 작업하는 작품 속의 선인장과 모피, 검은 물과 인체 등은 모두 이렇게 진정한 자아를 구해가는 과정에 도입되는 지극히 사적인 모티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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