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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미술

하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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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한국ㆍ베트남 수교 15주년을 기념하는 미술 교류전으로, 베트남 정부가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을 개방하기 시작한 1980년대 초 공개된 베트남 사회와 유럽 및 동남아 등의 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하노이와 호치민시의 중견 작가들,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연령층에서 우리나라의 미술계를 이끌어 온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동시에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회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베트남 현대미술의 특성에 대응함으로써 평면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부분적으로 입체 작품도 포함되어 있으며 내용 면에서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양국의 현대미술의 단면을 비교 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에 출품한 베트남 작가는 이미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레 꽁 딴(Le Cong Thanh)을 비롯한 하노이 작가와 Dang Xuan Hoa와 같은 호치민 작가를 포함하여 모두 11명이며, 국내 작가로는 한국적 모더니티를 잘 드러낸 회화와 조각 분야의 작가 8명이 참여한다.

이번 교류 전시는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을 이어왔으며 근대 이후의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겪어왔고, 미술 분야에 있어서 현대화 과정에서 서양 미술과의 접촉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발전해온 아시아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한국-베트남 양국 간의 현대미술의 현황과 흐름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베트남 예술인과 한국 예술인들의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교류의 장소가 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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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베트남의 미술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12세기 이후의 불교미술이나 도자기, 나전칠기, 비단 그림 등은 베트남 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발전해왔다. 그러나 최근까지 베트남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것은 예술가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장인(artisan)의 활동으로 인식되어 온 면이 강하며 현대적인 미술교육 제도도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던 1925년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83년부터 베트남을 식민통치하던 프랑스는 프랑스식 사회개발과 계몽이라는 명분으로 베트남에 연구시설, 의료시설, 교육시설 등을 설립하였으며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1925년에는 프랑스식 미술교육기관인 인도차이나미술학교(EBAI, Ecole des Beaux Arts dIndochine)를 하노이에 세웠다. 물론 이에 앞서 호치민시(당시에는 사이공시) 근처의 지아딘(Gia Dinh)이라는 곳에 드로잉 학교가 세워지긴 하였지만 그 규모나 베트남 미술계에 미친 파급효과 등을 고려할 때 베트남 현대미술의 분수령을 1925년 인도차이나미술학교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1)

베트남의 현대 미술은 정확하게 그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다. 노라 앤슬리 테일러(Nora Annesley Taylor)와 같은 사람은 베트남에서의 현대미술은 1990년대 들어서야 비롯되었다고 보기도 한다.2) 그러나 일반적으로 베트남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인도차이나 미술시대,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시대, Doimoi 미술시대로 크게 세 개의 시대로 구분한다. 그 첫 번째 시대인 인도차이나 미술시대는 1925년 프랑스인 화가 빅토르 타르듀(Victor Tardieu)에 의해 설립된 인도차이나 미술학교로부터 시작하여 1954년까지를 말한다. 이 기간 동안 10명의 조각가를 포함한 128명의 작가가 배출되었으며 그 중 10여 명의 작가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31년 파리에서 개최된 Exposition Coloniale과 1937년의 세계박람회를 통해 L Ph, Vu Cao Dam, Nguyn Phan Chanh 등의 작가들은 일찍이 유럽의 컬렉터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미술의 영향을 베트남에 도입하게 된 첫 세대의 작가들이었다.3)

3년으로 시작하여 5년으로 늘어난 인도차이나 미술학교의 교육과정을 담당한 교수와 강사는 베트남인과 프랑스인, 그리고 러시아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시대의 화풍은 주로 서양 미술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섞여 있으며 부분적으로 베트남 전통에 기반을 둔 나전칠기와 실크 그림이 제작되었다. 이곳에서 배출된 대표작가는 Nguyen Sang, Nguyen Tu Nghiem, Bui Xuan Phai 등으로 인도차이나 미술학교 학생이었던 이들이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다시 후학을 지도하는 교사로서 이 시대의 베트남 미술계를 이끌었다.

베트남 현대 미술의 두 번째 시대는 1954년부터 1980년까지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경향은 민족주의적 주제와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주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미술은 하노이를 중심으로 공산사회주의 이념 아래 당내에 중앙문화사상반을 설치 운영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사상과 선전을 핵심으로 민중에 가깝고 민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공업, 농업, 군대, 호치민 주석 등이 그림의 주요한 소재가 되었으며, 특히 호치민 주석의 활동이나 전쟁기간 동안의 여성들의 반외세 활동 등이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따라서 미술은 혁명을 위한 선전, 홍보효과를 극대화하였지만 개인의 창작개성이나 작품성은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이 시기는 정부가 서유럽과 미국으로부터의 접촉을 철저하게 차단한 시기여서 베트남의 작가들은 러시아나 동유럽을 통해 미술에 관한 정보를 흡수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로 유학한 작가들이나 베트남에 들어오는 예술가, 언론인 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동시대의 서양미술이나 미술에 관한 정보가 전해지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내용이 작가들의 작품에 직접 반영되기는 어려웠다.

베트남에서 당시에 작가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외국 작가 가운데에는 파블로 피카소와 빈센트 반 고흐가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피카소는 작품 내용에 있어서는 당시의 정부가 표방하는 이념과 잘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었으나 작가 자신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졌고 반 고흐의 경우에는 작가의 고통스런 삶에서 베트남 작가들이 공감하면서 관심을 끌 수가 있었다. 결국 이 두 작가는 서유럽의 미술계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와는 좀 다른 이유로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작가가 되었던 셈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대인 Doimoi(개혁) 미술은 1980년부터 현재까지를 말하며 미술 분야에서의 개방은 1986년 정부가 공식적으로 Doimoi를 선언하기 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사회주의 사상지향 없이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도록 젊은 미술가 작품 전시회와 미술창작을 위한 행사들이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초반, 미술전시회에서 일부 작가들이 검열에 저촉될 만한 민감한 주제를 다루었으나 공산당에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고, 80년대 중반 전시회에서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용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9년 제 3회 미술협회 총회가 개최되었을 때에는 베트남 미술이 지나치게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일부에서는 점차 사회주의의 이념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베트남 현대미술이 전개된다는 점을 두려워해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견제의 의견도 대두되게 된다.

베트남의 현대미술 전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 가운데 하나는 1986년부터 1989년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공식적인 사회개방에 의해 작가들의 의식과 태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시기로서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Nguyen Quan(b. 1948)은 미술잡지 의 편집장이자 베트남 미술협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베트남 미술의 혁신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1986년에 Nguyen Quan은 하노이 북부의 다이라이(Dai Lai)에서 작가들을 위한 워크숍을 운영하여 작가들 사이에 미술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장을 제공하기도 했다.4)

1986년 제 6차 전국공산당회의에서 정부가 개방선언을 하자 그 이듬해부터 하노이와 호치민시에는 상업화랑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베트남 미술협회도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작품을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1990년대부터는 개인이나 NGO 기관이 베트남에 많이 들어와 활동을 하게 되면서 해외의 사상과 흐름이 소개됨에 따라 개인적인 특색을 지닌 미술이 등장하게 되고, 미술이 다양성과 질적인 면에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해외에서의 베트남 미술전시는 베트남 현대미술을 알리고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새로운 기회였다.

Doimoi 미술은 틀에 박힌 사회주의 현실미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 미술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초창기 작가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학교에서 강의가 금지되었던 현대미술 특히 세계 현대 예술가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베트남 미술은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하였으며 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금지되었던 개인전을 많이 개최하는 동시에 소규모 미술시장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정부부조금을 받고 활동하는 기존의 미술협회 중심의 미술가들로부터 해외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이들로 미술활동의 주도권이 넘어가게 되었으며, 사회주의 사상, 창작주제에 대한 제약 등이 점점 없어지면서 금지된 주제인 누드, 추상 등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Doimoi 미술은 크게 3세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세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대에 활동하였던 60대 작가들이 포함된 초기 작가들로 80년대, 90년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난 작가들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Thanh Chuong, Nguyen Trung, Buu Chi 등이 있다. 두 번째 세대는 40~50대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Doimoi 미술시대에 작품 활동을 한 세대이다. 이들은 비록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졸업 후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표현한 작가들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Dang Xuan Hoa, Dao Hai Phong, Le Thiet Cuong, Nguyen Tan Chuong 등이 있다. 이번에 출품한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세대에 속하며 이들은 많은 해외전시를 통해 작품판매를 하고 사실상 베트남 미술을 주도해 가고 있다. 세 번째 세대는 90년대 이후의 젊은 작가들로 일부는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으며 해외 미술 흐름을 쉽게 접하고 좀 더 자유로운 미술활동을 하는 세대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Nguyen Van Cuong, Phan Phuong Dong 등이 있다. 이와는 별도로 비록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대에 미술활동을 하였지만 동 미술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던 Le Cong Thanh, Tran Luu Hau, Luu Cong Nhan 같은 작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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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품한 베트남 작가들은 이러한 베트남 미술계의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전통을 체험하며 미술교육을 받고 하노이와 호치민시, 그리고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작가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베트남 미술계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던 1980년을 전후하여 미술교육을 받음으로써 비록 학창시절에는 사회주의적 예술관을 주입받았지만 이어서 불어온 개방의 바람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창작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고 외국전시나 여행을 통해 새로운 예술관을 함께 세례받은 전환기의 작가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주제와 내용이 담겨있으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공산주의 사회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외부에 개방된 사회라는 베트남 미술계의 특별한 사정 때문에 작가의 생각과 겉으로 드러나는 작품의 형식 사이에 다소의 괴리가 나타나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함께 출품하는 한국 작가들은 이번 전시가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15주년을 기념하는 양국 작가들 사이의 교류전이란 성격을 고려하여 비슷한 연령대에서 한국의 현대미술을 잘 보여주는 작가들로 구성되도록 노력하였다. 베트남이 20세기에 들어서서 앞에서 본 것과 같은 진화를 거쳐오는 동안 한국의 작가들도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통해 서양미술을 접하게 되고 6. 25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 중심의 서구생활과 문화가 수입되는 과정에서 미술대학 교육을 받거나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베트남 작가들의 경험과 사상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발견된다고 생각된다.

베트남의 doimoi정책이 베트남 현대미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면 한국에서는 1980년대 민주화 항쟁을 통해 사회 전반이 보다 자유롭게 발전하고 미술에 있어서도 표현의 자유가 신장된 시기를 그것과 수평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과 한국은 사회체제는 달랐지만 그때까지 작가들이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기에는 국가적 통제가 불필요하게 작용해온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까지 민중미술 활동이 노골적으로 탄압받아온 사실도 이런 면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번 전시에 민중미술 운동의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을 포함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때마침 일어나고 있는 미술시장의 붐 때문에 출품이 좌절된 것은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준다.

베트남과 한국의 현대미술의 현상에서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점은 베트남의 경우 국내 미술시장이나 내국인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외국 관광객이나 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자본가들에 의해 작품이 매입됨으로써 작가들의 창작의욕이 자극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하여 한국의 미술계는 비록 급작스럽게 비약하는 현상을 목격할 수는 없었지만 정치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비례하여 자연스럽게 국내 미술시장과 국내 관람객들에 의해 미술계가 점점 활기를 띠어 온다는 점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최근에 와서 외국 미술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대부분 국내에서 미술시장이나 평론계를 통해 작품에 대한 검증을 거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 출품한 한국 작가들 가운데 오원배, 최진욱, 최석운은 유신정권의 말기에 미술대학에서 훈련을 받은 작가들이다. 석철주와 안혜림은 다소 늦은 나이에 미술에 투신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영역을 개척해오고 있으며 좀 더 후세대인 최영걸은 한국사회가 상당부분 민주화를 성취한 시대에 미술대학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였다.

오원배는 작품을 통해서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연과 싸우며 이룩한 문명이 이제는 오히려 인간과 자연을 위협하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있으며, 프레스코 기법으로 도시풍경 속에 놓인 현대인의 소외를 작가 특유의 형이상학적 표현으로 화면에 옮겨놓고 있다. 최진욱은 대학시절부터 미술계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사실적 표현으로 우리 주변의 삶을 관찰해 온, 시대의 증언자로서의 작가의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석운은 일찌감치 전원지역인 양평으로 내려가 창작생활을 해오면서 생활 속의 모습들을 해학과 유머로 풀어서 작품 속에 표현해오고 있다.

석철주의 경우는 한국화를 전공했으나 서양화 재료인 아크릴을 이용하여 전통적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안혜림의 경우에는 여행을 통해 포착한 다양한 장소의 풍경들을 밝고 화려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놀림을 통해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보는 이들의 마음을 경쾌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현대미술에서도 전통과 현대의 조화와 창조적 변용의 문제가 작가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최영걸이 묵묵히 표현해오고 있는 전통적 한국화에 바탕을 둔 현대적이고 사실적 풍경화들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최영걸은 자연에 대한 철저한 관찰을 통해 대상과의 충분한 교감을 이루고 그로부터 일어나는 심리적 반응을 극사실적 묘사로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출품작 가운데 조각 작품은 신현중과 성동훈이 출품하였다. 신현중은 힘찬 조각의 볼륨감을 강조하고 있으며, 주제 면에서 인간에 대한 신화와 역사고고학과 생태학에 대한 예술적 해석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성동훈은 소나 말, 닭 등의 동물들을 통해 인간성의 우화적인 요소를 표현하는 구상적인 작품과 전쟁과 평화의 공존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특히 이번에 출품되는 거북이 형상의 작품은 우리에게는 동화 속의 우화를 연상시키지만 베트남인들에게는 환검(還劍)설화5)와 관련된 이미지로서 거북이를 친숙하게 여기고 있는 점에서 교묘하게 두 나라 사이의 정서적 접점을 찾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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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15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양국의 현대미술 작가전은 이제까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호교류가 별로 없었던 양국 사이에 미술교류를 통해 역사적, 문화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보고 근대에 들어서서 두 나라에서 서양의 미술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의 일부분을 비교 관찰해 봄으로써 앞으로 미술 분야에 있어서 보다 심층적인 교류와 제휴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나 지역에서 시각예술이 갖는 가치와 의미는 예술적 관점 이외에 사회와 역사, 종교와 풍속 등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한 고려와 직접적인 교류 및 체험을 통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품하는 작가들이 전부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작가들과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은 양국간의 우호적인 미래를 여는 의미있는 행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품을 비교 전시하는 것은 물론 양국의 작가들 간의 많은 대화와 접촉을 통해 양국간의 우의를 돈독히 할 수 있게 되고 이번 기회를 시발점으로 하여 앞으로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보다 깊이 있는 교류가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1) Catherine Noppe, Jean Franois Hurbert (Parkstone Press, New York 2003) p. 186

2) Nora Annesley Taylor (University of Hanoi Press, Honolulu 2004) p.12

3) Catherine Noppe, Jean Franois Hurbert, Ibid. p. 201

4) Nora Annesley Taylor, Ibid. pp. 77-93

5) 베트남 하노이 시내에는 커다란 환검(Hoan Kiem)호수가 있다. 베트남인들은 이 호수에 사는 큰 거북이 신비의 검을 빌려줘서 베트남의 지도자가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킬 수 있었으며 그 후에 검을 호수에 사는 거북에게 돌려주었다는 설화를 기억하고 있다. 현재 호수 한가운데에는 대형 거북탑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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