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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 디지털 사진을 통한 두 가지 시각

하계훈

영상작업과 사진작업을 병행하는 작가 김지수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디지털 사진의 특성을 강조하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인물의 뒷모습이나 나무와 같은 자연의 사물을 촬영한 뒤 화면에 조작을 가하여 한 화면에서 상반되는 두 개의 흥미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밤거리의 불빛을 의도적으로 디포커싱(defocusing)하여 불빛이 허공에 부유하는 듯한 영롱한 화면을 제시하기도 한다.

인물이나 사물을 촬영한 사진에서 작가는 화면의 중간부분 쯤에서 이미지를 세로로 나누어 한 쪽만을 선택한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한 쪽의 화면에는 경계선을 따라 이러한 인물과 사물의 이미지가 구성되는 최소 단위요소로서의 색소를 추출하여 수평적으로 바코드처럼 화면의 테두리부분까지 연장시킨다. 이렇게 되면 그의 작품은 절반의 사실적인 이미지와 나머지 절반의 추상적인 색선의 집적으로 형성되는 이미지, 또는 절반의 3차원의 입체적인 이미지와 나머지 절반의 2차원적인 평면의 이미지가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게 된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일상적으로 관찰하던 인물이나 자연의 사물들이 새로운 시각적 감수성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수하게 그어진 색점의 연장선 속에서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색채들이 그 모습을 확장하여 드러내주고 인접한 색채와의 조화 속에서 어울림과 두드러짐이 함께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색선 작업이 정적인 피사체의 성격과 대비되게 일종의 광학적 속도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아날로그 사진에 있어서는 사진작업 프로세스의 특성상 작가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필름에 담아 인화과정에서 재현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때때로 필요에 따라 렌즈의 교환이나 특수 필터의 사용, 또는 인화과정에서의 조작에 의해 사실적으로 재현되는 피사체에 얼마간의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 그에 비하여 디지털 사진의 경우에는 이처럼 작가가 주변의 응시 대상을 기록함에 있어서 디지털 기기와 프로그램의 다양한 조작기술을 동원하여 한편으로는 그것을 사실적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나 사물로 파악할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색채의 누적과 반복으로 형성된 오브제로 바라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김지수는 사진을 통해 재현적 이미지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방법을 한 단계 더 확대시킴으로써 단순히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과 사물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이미지가 형성되는데 동원된 조형적 요소를 찾고자 이미지를 점차 확대시킨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들이 그 대상을 바라볼 때 육안으로 미쳐 발견해내지 못한 색소를 마치 현미경을 통해 찾아내는 과정을 거쳐 제시된 듯한 이미지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서양미술사에서 광물리학과 색채학에 관심이 높았던 19세기 인상파 시기에 이미 시도되었던 대상의 고유색의 부정과 점묘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한 색소로의 해체와 망막에서의 재조합 등의 프로세스가 그의 사진 작품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지수의 사진은 부분적으로 추상사진이면서도 회화적 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나무 등걸을 포착한 작품에서는 이러한 색채들이 보다 대양하게 드러난다. 그가 나무 등걸처럼 자연의 대상에서 추출하여 색띠 형식으로 제시하는 화면에는 인물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보다 우리의 인식과 시각의 확장성이 얼마나 더 필요한가를 깨닫게 해준다. 그저 무심코 바라보는 나무 등걸에서 보라색이나 청색과 같은 색들이 이처럼 다발적으로 제시되는 것에 대해 우리 스스로도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넘어 충격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색채탐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밤거리의 불빛과 같이 좀 더 미세하게 해부될 수 있는 색소에까지 시각을 확장시켜 실험을 계속해왔다. 우리의 눈에서 그저 어두운 밤거리의 평범한 풍경으로 인식되는 불빛들이 작가의 손에 의해 해부되고 다시 순수한 색의 변주를 보여주는 색띠로 재현되는 방식에서 우리는 미쳐 느껴보지 못했던 추상적 아름다움과 도시 야경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김지수가 제시하는 인물이나 사물이 화면에서 색띠로 포현되는 부분은 형식상으로 재현과 추상 혹은 3차원과 2차원을 한 화면에 담는 조형적 실험으로 해석되면서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이러한 소재를 선택한 작가가 사소한 소재를 보다 의미있게 해석하려한다는 포스트모던한 개념이 담겨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작품에서 뒷모습을 보여주는 익명의 인물이나 자연에 흔하게 존재하는 나무의 등걸은 왠지 모르게 중심부나 주인공이 갖는 모뉴멘탈한 무게와 안정감을 준다. 특히 초점이 흐려진 밤거리의 불빛을 촬영한 작품에서는 작가가 좀 더 의도적으로 중심과 주변의 전위(transposition)를 꾀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고전적인 형식의 회화나 사진에서 화면의 중앙은 언제나 중요한 인물이나 사물이 차지해왔고 그 주변에서 배경을 형성하는 장면들은 대부분의 경우 공들여 묘사하기보다 대략적으로 표현되거나 초점이 빗나간 채 희미하게 드러나 관람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시선을 끌지 못하였다. 그러나 김지수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디포커싱된 장면의 아름다움이 강조되고 화면의 중심에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규격으로 출력된 야경 사진이 초점을 벗어난 채로 액자의 한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김지수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실험하는 이러한 색채의 문제, 재현성과 추상성의 문제, 그리고 중심과 주변의 전위의 문제 등은 미술의 역사에서 지난 수세기 동안 중요한 담론을 형성해왔다. 우리가 김지수의 작품 안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그가 디지털 사진을 통해 이러한 조형적 형식실험을 하나씩 진지하게 수행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며 그것이 사진의 영역을 넘어 회화적 실험과의 접점을 이루며 두 장르간의 상호교류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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