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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술관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

하계훈

21세기 미술관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
사립미술관 관장과 큐레이터의 역할을 중심으로




1. 서론

사회의 공적(公的) 기구로서 미술관이 이제까지 담당해 온 기본적인 역할은 수집과 보존, 연구와 전시 그리고 교육을 통하여 관람객들과의 적극적인 상호소통을 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인 기능들은 21세기에도 큰 변화 없이 지속될 것이다. 기관을 운영함에 있어서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 본질적 역할이 있는 것이며 미술관의 경우에도 이러한 기본 기능들은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각 기능 가운데 보다 우선적으로 강조되는 기능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거나 다소 확대 또는 축소된다거나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새로운 기능이 부분적으로 추가될 수는 있다.

원래 미술관은 고대와 중세의 종교적 활동과 연계하여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근대에 들어서면 사회의 상류계층에서 지적 호기심과 호사가적 취향을 누리기 위하여 작품을 모으는 것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시민사회가 도래하기 이전에 왕과 귀족들은 자신과 주변의 소수의 지인들만을 위하여 미술품과 진귀한 물건을 모아놓은 방을 꾸몄으며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수집된 소장품들은 수집가의 신분, 개인적 교양, 재력 등을 나타내주는 지표로서 작용하였으며 이 때문에 한 사회의 상류계층 사람들 사이에서는 경쟁적인 수집활동이 일어났었다.1)
19세기에 시민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이렇게 수집된 미술품 컬렉션들은 공공미술관의 형태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대중들을 위한 미술관으로 보편화됨으로써 과거에 왕족과 그 주변의 특수한 소수자들만을 위하여 운영되었던 미술관이 이제는 이전과 달리 공공적 이익에 봉사한다는 새로운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한편 산업자본의 축적과 이에 따른 기술과 학문의 발달에 의해 자본가에 의한 미술품 수집과 학자들에 의한 학문연구 대상으로서의 미술품 수집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수집활동의 결과물들은 왕과 귀족의 수집품과 더불어 시민국가 사회의 대중들을 위한 미술관의 설립과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미술관은 소수의 특권층만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대중 전체를 위해 개방하고 그들에게 봉사해야 하는 공공적 성격을 띠는 기관이 된 것이다. 대중에게 개방된 미술관은 정치적으로 평등사상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공간이기도 하며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도 국내적으로는 대중계몽과 산업생산성 향상에 기여하였고 국외적으로는 국가간의 문화적 경쟁 속에서 애국심을 함양하는 중요한 도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미술관의 개방성과 공공성은 국공립미술관은 물론이고 사립미술관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다. 미술관이란 비록 사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립한 사립미술관의 경우에도 그 기능상 어느 정도 공공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각 나라마다 미술관 운영에 관련된 정부의 재정 지원이나 세제상의 혜택 등이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미술관 설립의 바탕에는 미술관의 운영주체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공공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술관의 공공성이란 초기의 사설 컬렉션에서 개인이나 특정 소수집단의 주관적 취향을 반영하였던 것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술관이 공공성을 띤 기관으로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의 폭넓은 계층의 관람객으로부터의 인정과 호응이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술관 관람객으로부터 만족스런 반응을 얻을 수 있을 때 그 미술관의 공공 기관으로서의 운영은 성공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적 목표는 실제에 있어서 쉽게 달성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관람객의 양적 확대에서 오는 다양한 관람객 집단들의 서로 다른 성향 때문이다. 오늘날 미술관 관람객들 가운데에는 전문적인 미술인이나 미술이론 연구가들에서부터 미술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거의 없는 문외한 집단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단일 미술관이나 소수의 미술관들이 이들 모두의 요구를 충분하게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다양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사립미술관들은 국립이나 공립미술관들이 수행하기 어려운 차별화된 대중봉사 기능을 가질 수 있다. 사립미술관의 특징은 설립자의 열정과 관심에 의해 특정 분야의 수집품이 상당한 깊이를 갖고 오랜 시간동안 수집되는 과정을 거쳐 미술관이 탄생한다는 점이며,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행정 절차에 의해 임명되는 국공립미술관의 관장이나 그 밖의 직원들에 비하여 미술관 운영에 있어서 헌신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우리는 열성적인 수집가와 공공화된 미술관의 관장이 항상 동일한 속성을 가지며 동일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므로 설립자가 곧 관장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립미술관이 갖고 있는 공익적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으로부터 호의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설립자와 관장의 역할 구분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수집가 개인의 취향이 강력하게 반영된 수집품을 바탕으로 탄생한 사립미술관의 경우에는 공공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미술관 설립 후에 소장품에 대한 정리에서부터 여러 가지 업무를 재구성할 필요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록 개인의 힘으로 설립한 사립미술관이라 하더라도 일단 미술관을 설립한 이후에는 그 미술관은 개인의 손을 떠나 대중의 기관으로 사회에 귀속되어 존재하는 것이며 더 이상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전제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도 사립미술관에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사립미술관이 우리사회에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설립자의 사회적 의무감과 필란트로피 정신이 제대로 수립되어야 하고 그 위에 전문 인력들이 설립자의 설립정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각자의 전문성을 투입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정부는 사립미술관의 공공성을 인식하고 재정과 제도 등의 측면에서 공공적 지원을 아끼지 않도록 하여야 사립미술관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미술관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인적 요소에 대하여 간단하게 고찰해보고자 한다. 논의의 핵심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이 글에서는 다양한 미술관 가운데 사립미술관으로 그 범위를 좁히고 미술관 운영의 중심에 있는 관장의 역할과 관장을 보좌하면서 미술관의 전시나 교육 등의 핵심적인 활동의 중심에 위치해있는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하여 간단하게 고찰해보고자 한다.


2. 미술관의 인적 조직과 경영 관리

하나의 인적 조직으로서 미술관도 그 기관을 움직이는 인력의 질과 그 인력을 조직하는 방법에 따라 미술관의 사회적 평가와 미술관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속도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찰스 핸디(Charles Handy)는 우리가 속한 사회의 여러 조직을 경성(硬性)조직과 연성(軟性)조직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미술관을 연성 조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2) 경성조직은 상하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반면에 연성조직은 횡적이고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을 구성한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군대조직이나 공장과 같은 생산조직처럼 신속한 의사전달과 행동이 필요한 조직에서는 상하의 구분이 분명하고 명령과 집행의 절차가 종적(縱的)인 구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상사는 부하보다 권한과 책임의 양이 많고 동시에 업무수행 능력과 경험 등에 있어서도 우월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창의적인 사고 및 전문 영역간의 유기적인 결합과 협동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에서는 종적 구조보다는 횡적(橫的)구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병원을 예로 들 때, 내과와 외과, 안과, 피부과 등 다양한 전공의 의사들 사이에는 상하관계와 명령-복종 관계가 아닌 상호 협력 관계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아무리 능력있는 내과의사라도 안과나 피부과 등 자신의 전공과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사들 사이의 관계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병원 원무과에서 전공의사들의 고유 업무를 간섭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미술관의 경우에도 소장품과 관련된 큐레이터의 전문영역이나 전시 디자이너, 교육담당자 등의 역할은 종적 명령과 복종보다는 횡적 협력에 의해 보다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국공립미술관뿐 아니라 사립미술관에서의 조직을 구성함에 있어서 미술관의 핵심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큐레이터나 에듀케이터 등의 업무를 중심으로 하여 이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른 기능들이 횡적 협력이 이루어지는 조직의 형태를 지향하여야 한다.

미술관은 일반 행정기관과 다른 특성을 인정하여 비록 공공기관일지라도 자율적 운영을 위한 환경을 최대한 보장해주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그러한 운영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조직의 구성에 있어서도 종적이기보다는 횡적인 조직이어야 하고, 따라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빠르게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여야 하는 연성 조직이어야 한다. 그리고 물론 이러한 자율성에는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업무수행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함께 부과되어야 하며 공정한 평가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직이 융통성이나 자율성이 극소화된 조직의 규율이나 제도에 발목을 잡힌 채 운영된다면 국가와 국민의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하여 수립한 미술관의 훌륭한 목표가 쉽게 달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1) 큐레이터의 역할
기관의 설립에는 그 목적이 분명하여야 한다. 미술관은 국가나 개인에 의해서 수집된 미술품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대중들이 문화적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학문적 시야를 넓히며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감상함으로써 관람객들이 즐거움을 느끼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회의 문화적 생산성을 높이고 학문적 성과를 높이며 공동체의 화합과 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은 무엇보다도 미술품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고 그 미술품에 대하여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그 연구의 결과를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알 고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큐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어원적으로 큐레이터(curator)란 라틴어로 돌본다는 뜻의 ‘curare에서 파생된 말로서 영어에서는 cure(치료하다)’라는 단어와 어원을 공유하고 있다. 근대의 미술관이 탄생하기 이전에 중세 영어에서는 큐레이터를 ‘curatour라고 표기하여 수도원에서 영적인 치료를 하는 수도사나 법적으로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금치산자(禁治産者)나 한정치산자(限定治産者)를 대리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보호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근대미술관이 설립되면서 미술품을 보호하고 돌본다는 의미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큐레이터라는 용어가 사용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의미 속에는 초기의 미술관이 전시나 교육 등의 활동을 통한 소장품의 활용보다는 큐레이터를 통한 소장품의 보존과 보호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초기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미술품을 수집한 수집가에게 고용된 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거나 파손된 미술품을 수리하는 일을 주임무로 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업무의 성격 때문에 초기의 미술관에서는 화가나 조각가와 같은 작가가 큐레이터로 활동한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까지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란 주로 미술품을 돌보고 자신이 돌보는 작품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을 의미하였다. 이 말에는 기본적인 전시를 제외하고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세 가지 기능 즉, 보존, 연구, 교육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3) 결국 큐레이터는 미술관에서 핵심적인 임무를 맡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인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큐레이터에 대한 정의가 지나치게 기능 나열형이라는 비판의 의견도 있다. 어떤 학자는 큐레이터의 직무에 임하는 정신적 태도나 윤리의식, 그리고 업무의 범위나 기준이 좀 더 상세히 제시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카바나(Kavanagh)는 큐레이터를 “대중을 대신하여 소장품을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해석하며 기록하여 관람객에게 전달할 지식을 확장시키며 이것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4)

오늘날 미술관의 개념 확장과 기능의 다양화에 따라 전통적인 큐레이터의 역할은 보다 확대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미술품을 보존하고 돌본다는 사전적인 의미의 큐레이터에 대한 설명만으로 오늘날의 큐레이터의 역할을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현대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란 이러한 기능 이외에도 현재 진행중인 작품활동에 대한 흐름을 이해하고 이러한 흐름을 자신의 미술관에 신속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 런던의 시티 대학장을 역임한 에릭 무디(Eric Moody) 박사는 이런 의미에서 큐레이터를 “특별전이나 소장용 작품, 그리고 미술관을 위한 다른 형태의 홍보를 위해서 작가를 선택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5)

현대의 미술관이 과거에 비하여 관람객을 위한 전시나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확장함에 따라 큐레이터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탈리 하인리히(Nathalie Heinrich)와 마이클 폴락(Michael Pollak)도 이러한 큐레이터의 역할 확대를 연구하여 큐레이터는 이제까지의 고유 업무 이외에도 행정업무를 비롯하여 전시의 컨셉을 정하고 함께 작업할 협력자를 구하며, 카달로그에 수록한 지식을 준비하고 건축가와 의견을 나누는 등의 다양한 역할을 추가로 담당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6)

요약하자면 오늘날의 큐레이터의 역할은 소장품을 보호하며 그 소장품을 더욱 풍부하게 늘리고, 그것들을 연구하여 대중들을 위하여 전시하는 일이다.7) 이렇게 다양한 업무들이 큐레이터에게 부과되는 것은 자칫하면 학문적 연구라는 큐레이터의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학문적 연구와 대중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의 경우 큐레이터를 바라보는 시각은 학문적인 성취도 면에서 대학의 학자들과 대등하며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에서 이론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갖게 되기도 한다. 큐레이터와 학자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큐레이터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학문적 언어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는 두 가지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8)


2) 관장의 역할
미술관의 고유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좋은 인력의 적재적소 배치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임무의 정점에는 그러한 인력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구성할 때 행정적으로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그 정점을 차지하는 사람으로서 관장이 자리 잡고 있다.

칼 커트(Karl Guthe)에 의하면 관장은 ‘뮤지엄 업무수행의 방법과 목적에 정통하여야 하며, 뮤지엄의 이상적인 운영을 위해 마치 전도사와도 같은 정열을 쏟을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계층의 인사에게도 친근감을 주고, 사무적으로는 뮤지엄을 원활하게 관리, 운영하고, 전문가에게도 뮤지엄의 기능을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뚜렷한 자신과 인내력, 그리고 독창력이 필요하다. 뮤지엄의 운영위원회나 평가위원회에서는 그 탁월한 능력과 판단이 크게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9)

물론 이 말 가운데 일부분은 제도적으로 관장의 임명권을 이사회가 아니라 대통령이나 국무위원이 갖고 있는 나라의 공공 뮤지엄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으며 뮤지엄의 탄생과 진화의 단계에서 그 뮤지엄이 어는 단계에 있는가에 따라서도 관장에게 요구되는 이상적인 능력과 배경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어는 경우에도 관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뮤지엄의 관장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가 소속된 기관의 소장품과 관련된 분야에서 학자로서의 전문성과 뮤지엄이라는 조직을 관리하는 행정가로서의 경영능력을 겸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관장직을 맡을 사람이 이 두 가지 성격 가운데 한 쪽이 모자라거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성향을 갖고 있을 경우 그가 이끄는 뮤지엄의 운영은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밖에도 최근에 와서는 관장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요소로서 기금모금 능력이나 심지어 대인관계에 있어서 사교성이 높은 성격 등이 추가로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관장에게 요구되는 능력을 두루 갖춘다는 것은 사실상 누구에게나 힘든 것일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와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점차 제대로 자격을 갖춘 관장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1994년경 비슷한 시기에 10여 개의 뮤지엄들이 관장을 구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겨두었던 때가 있었으며 최근에 다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가 이처럼 막중한 관장의 임무를 떠맡기를 꺼려하기 때문이었다.10)

오늘날 뮤지엄의 관장은 학문적 업적이나 행정능력 외에도 자신의 기관을 이끌어갈 장기적인 안목과 리더쉽, 고도의 도덕성, 그리고 그의 인품에서 나오는 상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직책이기 때문에 외국의 경우에는 국공립이나 사립을 불문하고 중요한 뮤지엄에서는 관장직이 공석이 되었을 때, 적임자를 선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지며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한다.

18세기 말 유럽에서 공공 뮤지엄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에는 관장직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놓은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해당 소장품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깊게 관심을 갖고 있었던 애호가나 예술가, 심지어 정치가나 관료 등이 관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따라서 뮤지엄의 운영이 오늘날의 기준으로 생각해볼 때 아쉬운 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도기의 혼란 속에서도 몇몇 대표적인 인물들은 오늘날의 뮤지엄들을 제 궤도에 오르게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여 뮤지엄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뮤지엄은 인간의 생활과 이에 관련된 문제에서 파생되는 자료들을 다루기 때문에 비록 그 기본적인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우리의 생활이 변화함에 따라서 시대적으로 그 성격이나 단기적으로 지향하는 목표, 중점사업 등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전쟁이나 혁명 등 사회적 변화가 급속히 벌어지던 시기의 뮤지엄에는 적극적이고 신속한 판단력을 가진 활동적인 관장이 필요했을 것이고, 안정기에 들어서서는 역사학이나 미학 등의 관점에서 소장품 수집과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학자적이고 고도의 감식안을 가진 관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기의 대표적인 관장들로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초대 관장인 도미니크 비방 드농(Dominique Vivant Denon, 1747-1825)과 독일 베를린 왕실 뮤지엄의 총관장을 지낸 빌헬름 폰 보데(Wilhelm von Bode, 1845-1929)를 들 수 있다. 드농은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에서 루브르를 세계 제일의 뮤지엄으로 만드는데 공을 세운 초대 관장으로서 오늘날 루브르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간이 남아있으며 보데 역시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받아 베를린에 뮤지엄들이 한데 모여있는 박물관섬(Museumsinsel)에 위치한 한 박물관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유럽의 뮤지엄들이 계몽군주나 시민혁명 정부의 주도하에 탄생, 발전하였던 반면에 미국의 대표적인 뮤지엄들은 개인 사업가들의 주도와 후원으로 설립, 발전되어 왔다. 미국의 경우에는 제 1차 세계대전과 그에 따르는 경제적 성장 및 외교적 역할 확대라는 국제정세 속에서 뮤지엄 문화가 도약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도약을 가능하게 해줄 관장의 역할이 필요한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인물이 27세의 젊은 나이에 뉴욕 근대미술관을 이끈 알프레드 바아(Alfred H. Barr, 1902-81)였다.

아직까지 분야별 전문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러한 초기의 관장들은 대부분 관장으로서의 역할 이외에도 오늘날의 큐레이터나 전시 디자이너, 교육담당자 등 여러 사람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황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독선적인 운영도 종종 나타났지만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 있는 관장의 경우에는 그의 독성이 강한 추진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뮤지엄 문화의 초기에 군주나 귀족들의 생각과 취향을 반영하던 뮤지엄이 대중들을 위한 뮤지엄으로 변신하고 현대에 와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대중들의 다양한 요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전문가로서의 관장의 역할이 점차 중요시되게 된다. 따라서 초기의 행정가나 학자적인 기질을 가진 관장의 역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대두되어서 오늘날의 관장의 조건으로는 이전의 기본적인 조건 이외에도 미술시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경영감각을 가지고 국제적인 정보에도 능통한 그야말로 팔방미인 격의 관장을 요구하게 된다. 실제로 외국의 국제적 규모의 뮤지엄에서는 이러한 환경에 대한 대응으로서 오래 전부터 관장을 국적을 초월하여 선임하기도 하였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감독이 외국인으로 임명되는 것처럼 우리의 뮤지엄들도 필요하다면 국적의 제한 없이 관장을 선발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뮤지엄의 운영에 있어서 재정적인 측면이 전면으로 부상될 경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자칫하면 뮤지엄의 본질이 도외시되거나 가볍게 여겨지고 비영리 기관인 뮤지엄에 기업이나 다른 영리기관처럼 손익을 저울질하는 경영개념이 지나치게 부각될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뮤지엄의 경영에 있어서 학문적 성과와 이러한 성과의 대중적인 보급이라는 사명과 경영학적 관점에서의 수지균형 유지라는 양립하기 힘든 목표는 때때로 관장과 임명권자인 정부나 이사회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현명한 관장은 변화하는 뮤지엄의 환경 안에서 대중성과 엘리트적 예술성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적, 학문적 성과와 재정적 안정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잡아내느냐에 그 능력이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11)


3. 결론

미술관에는 시대가 바뀌어도 별로 변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기능이 있다. 다만 여기에 새로운 사회 현상에 따르는 몇 가지 역할이 부가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미술관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평생 교육 기능으로서의 미술관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기능을 담당할 전문 인력이 체계적으로 양성되어야 한다. 특히 미술관을 이끄는 중심 인력으로서의 관장과 큐레이터의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상 198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뮤지엄의 역사에서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문화의식이 부족한 관료나 공공 의식이 부족한 자본가들에 의해서 소극적으로 전개되었고, 따라서 전문적인 관장이나 큐레이터들이 제대로 역할을 해볼 기회도 이제까지 별로 없었다. 사립미술관의 경우에도 애호가로서의 수집활동은 높이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사립미술관을 설립하였을 때 스스로 관장의 역할을 하기에는 학문적 전문성이나 경영능력에 있어서 검증되지 않은 인사가 관장직이나 큐레이터 등의 중요 직책을 수행함으로써 발생하는 비능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국제적인 정보가 초고속으로 유통되는 시대를 맞아 백년 넘게 앞서 출발한 서양의 뮤지엄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따라서 우리는 외국에서 오랜 시간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오면서 축적해온 여러 가지 일을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경험해야 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관장과 큐레이터들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러한 인력을 육성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1) 미술관의 전개에 대한 일반적 사항은 Alma S. Wittlin의 Museums: In Search of a Usable Future (MIT Press, 1970)와 Germain Bazin의 The Museum Age,(Desoer, Brussels, 1967)를 참조할 것


2) Charles Handy, Understanding Organizations (Penguin Books, Limited (UK); 4th edition,1999)참조


3) C.V. Horie, “Who is a curator?”, International Journal of Museum management and Curatorship, (1986) vol. 5, pp. 269-270, see also Jane R. Glaser(ed.),“Museum Professional Positions: Qualifications, Duties, and Responsibilities” Museums: A Place to Work,(London, 1996) pp.80-82 and John Murdoch, “Defining Curation”,Museums Journal, (Mar., 1992) pp.18-19


4) Gaynor Kavanagh, “Curatorial Identity”,Museum Provision and Professionalism, (1994) p.127


5) Eric Moody, “Toward a New Relationship between Artists, Curators and Audience”, Third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rts Management, pp.186-190


6) Nathalie Heinrich and Michael Pollak,From Museum Curator to Exhibition Auteur, Thinking about Exhibition, (ed. by Reesa Greenberg, Bruce W Ferguson, and Sandy Nairne, 1996, Routledge) pp. 231-25


7) Nathalie Heinrich and Michael Pollak, ibid, p.232
마리 카르멘 라미레즈(Mari Carmen Ramirez)는 이러한 큐레이터의 역할을 수집(acquisition), 전시(exhibition), 해석(interpretation)으로 규정한다. Mari Carmen Ramirez, “Brokering Identities: art curators and the politics of cultural representation” Thinking about Exhibition (ed. by Reesa Greenberg, Bruce W. Ferguson, and Sandy Nairn, London, 1996) p.22


8) Morten Lerhard, “The Ethics of Double-Dealing”,Siksi, (Finland, pt.3, 1995) pp.28-9



9) 이난영, 『박물관학 입문』삼화출판사, 1993, 107쪽에서 재인용


10) 동아일보 1994년 4월 7일자 기사 참조


11) 하계훈, “뮤지엄(Museum) 경영에 있어서 관장의 역할”, 『예술과 경영』(유민영 (편),2002, 태학사) 143-162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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