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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 / 들꽃에 담긴 예술혼과 생명

하계훈

화가 유송은 자신의 화면 안에 다채로운 들꽃들을 담는다. 유화로 그려지는 들꽃들의 실물은 대부분 아기 주먹이나 어른 엄지손톱만한 것이지만 유송의 화면 속의 들꽃들은 커다랗게 확대되어 화면 속에 꽃잎 하나하나 꽃술 하나하나가 그 자태를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림 재료로 유화를 사용하지만 물감은 얇게 발라져서 꽃잎과 꽃대는 투명하고 청순한 느낌을 주며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꽃봉오리는 춤추는 사람의 옷깃이 바람을 타고 물결치는 것처럼 율동감과 생명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회화의 역사에서 꽃이 화면 속에 등장하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양미술사에서는 대천사 미카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뉴스를 전달하는 수태고지 장면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고,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는 탐스럽게 담긴 꽃병 속의 꽃들과 그 앞에 시들어 떨어진 몇 개의 꽃잎을 통해 인생의 절정기와 쇠락기의 교훈을 읽는 그림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회화사에서는 부귀영화의 상징으로서 병풍이나 족자 그림 속에 모란꽃이 그려지기도 하고 사군자의 하나로 국화가 그려지거나 초충도(草蟲圖)에서 나비와 같은 곤충들과 함께 야생 화초들이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이렇게 동서고금의 여러 화면에서 꽃이 등장하지만 유송의 그림 속의 꽃은 성경이나 종교화 속의 상징도 내포하지 않고, 교훈적 은유를 담지도 않으며, 기복적 소원을 가시화 한 것도 아니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유송이 첫 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작가는 꽃을 그리되 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림을 그린 것이며, 그 것이 그림이 된 것이라는 말을 하였던 것처럼 작가가 그리고 있는 꽃은 작가의 의식과 호흡이며 그의 정신이 꽃의 형상으로 가시화된 것이다.

꽃은 자연과 생명의 상징으로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가족이나 연인들의 관계를 보다 더 돈독하게 해주는 매개물로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동안 그 역할을 도맡아 왔다. 꽃은 우리 주변에서 탄생의 축하, 의미 있는 이벤트의 강조, 사랑의 표현, 애도와 추모의 상징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꽃은 회화에서뿐 아니라 시와 소설 등의 문학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김춘수는 자신의 시 <꽃>에서 꽃을 의인화한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고,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통해 세기말의 불안을 읊기도 하였다.

들꽃을 그리는 유송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생명과도 같다. 작가라면 누구나 생의 어느 순간에 가서는 자신의 예술혼이 절정까지 소진되는 환희의 순간을 맞기를 기대할 것이다. 유송의 경우에도 현실의 제약과 예술적 미련의 갈등 속에서 십 수 년을 지내오면서 인간의 생명의 문제, 남녀간의 조화와 상생의 원리를 꾸준하게 탐구하면서 이러한 순간을 상상해왔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들꽃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들판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듯하지만 그 안에는 암술과 수술의 교합에 의한 생명의 잉태와 순환, 그리고 미세한 생명의 움직임이 분명하게 작동되고 있으며 그러한 생명의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이크로코스모스의 공간을 확대하여 보면 우리는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존재와 생명,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을 품고 있는 미학과 공간에 대해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이러한 들꽃을 그린 화면 속에 간간이 등장하는 직육면체 형태의 기하학적 오브제는 우리가 이제까지 이야기해온 작가의 예술적 열망이나 들꽃의 생명성 등과 같은 의미를 희석시키는 듯하다. 그러나 그 대신에 우리는 좀 더 다른 차원에서의 작가의 자기 독백 같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미술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몇 작가들의 예술적 열망을 불태우는 모습을 자신의 현실에 비쳐보며 캔버스를 마주하는 작가에게 들꽃이 가득한 화면은 때로는 자신의 예술혼이 화면 저편으로 함몰되어가는 것같은 안타까움과 절박함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을 것이다. 육면체의 12변만 선으로 표현될 뿐 모든 면이 뚫려있는 표현은 육면체로 상징되는 현실에 갇혀있지 않고 예술의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화면 속의 육면체는 그러한 의지가 들꽃들 사이로 부유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주변 가족들로부터 격려와 칭찬을 받으며 예술가의 꿈을 키워왔고, 늘 위축되지 않고 창작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으며,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창작의 불씨를 가슴 속에 오랫동안 품어 온 유송이 2007년 첫 개인전을 가진 지 2년 만에 다시 한 번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모색해보는 이번 전시가 작가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모멘텀일 것이다. 이번에 들꽃을 그린 유송이 앞으로 어떤 것을 그리더라도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대상을 넘어 생명과 음양의 조화, 그리고 작가의 예술혼과 정신이 오랜 숙고의 기간을 지나와서 화면 속의 그 어떠한 형상으로 가시화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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