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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윤

하계훈

2008년 런던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두 번째이자 한국에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열리는 개인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정해윤은 장지 위에 동양화 물감을 사용하여 서랍 이미지들을 화면 가득히 채우고, 그 서랍들 사이로 새와 나무, 풍경, 인물상 등을 배치시킨 그림을 중심으로 관람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정해윤의 대표적인 서랍 그림들과 처음으로 발표하는 스테인레스 그릇 이미지의 신작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먼 길을 돌아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서울대 동양화과를 나온 정해윤은 2007년 영국 런던의 유로 작가공모전, 그리고 2008년 프랑스 파리의 죈 크레아시옹 국제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우리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 밖에도 정해윤은 지난 몇 해 동안 홍콩 소더비와 아프리카의 다카르 비엔날레, 뉴욕 아트 오마이 레지던시 프로그램, 버몬트 스튜디오 등에 참가하면서 국내보다 먼저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전시에서 정해윤이 보여주는 작품은 서랍을 배경으로 참새나 인물 형상들이 다양한 교감과 소통을 시도하는 가상의 공간을 연출한 일련의 작품들과 열려진 서랍의 앞면과 그 안쪽에 다양한 풍경이 묘사되어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들, 그리고 사회 속 개인이 맡을 역할을 상징하는 그릇 그림과 양면의 삶을 상징하는 ‘선악과 나무’ 등이 다.

여는 것과 닫는 것이 곧 개방과 은폐로 해석될 수 있는 정해윤의 작품에서 그 기능을 하는 대표적인 오브제는 서랍이다. 정해윤이 표현하는 서랍 가운데 어느 것은 앞으로 돌출돼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를 공개하고, 어느 것은 닫혀 있어 그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은폐한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여러 차례 서랍을 열고 닫는다. 학생은 책상서랍을, 회사원은 사무실 서랍을, 그리고 주부는 가구의 서랍을 여닫음으로써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나 물건을 세상에 꺼내 놓기도 하고 반대로 집어넣고 감춰두기도 한다. 좀 더 전문화된 기능을 하는 곳에서는 서랍으로 상징되는 공간과 사실에 관해 개방과 은폐가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어 비밀이나 대외비로 분류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히 허락된 소수 관계자 이외에는 개방과 접근이 불가능하게 되기도 한다. 결국 서랍이라는 소재는 존재간의 소통을 매개하는 상징적인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그릇을 제외하면 정해윤의 작품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소재는 서랍이며 그것이 여러 개로 반복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작가가 스스로 밝히듯이 어린 시절 일기장 속에 담긴 매일 매일의 기억과 흔적들이 오랜 시간 후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드는 단초가 되듯이 하나하나의 서랍 유닛들이 분명한 고유의 성격을 갖으면서 제 모양과 색깔대로 전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공간이 된다. ‘집으로 가는 길’의 경우 하나하나의 장면은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가는 길을 기억하기 위해 떨어뜨린 빵부스러기와 같이 그것들이 모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생각의 지도를 완성시킨다. 이와 같이 정해윤은 서랍 공간에 담긴 기억과 의미를 통해 개개인의 사적 추억과 욕망을 사회적 화두로 개방하기도 하고 일정 부분의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개인적인 추억과 사유의 영역을 유보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심리 상태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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