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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일반│1990년대 이후 미술 소그룹 운동 - Here and Now, Who is Who를 중심으로

김성호

1990년대 미술 소그룹 운동
- Here and Now, Who is Who를 중심으로


김성호(미술평론가) 
      

I. 들어가는 말
국내 미술 소그룹 운동은, 1960-1970년대의 ‘ AG’와 ‘ ST’를 필두로, 1980-1990년대에 무수한 소그룹들로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소그룹이라는 차원에서는 유명무실해진 2000년대의 그룹 활동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중앙대 졸업생을 중심으로 창립된 〈히어앤나우(Here and Now)〉(1988~2006)와 중앙대 회화과 졸업 동문들로 구성된 〈후이즈후(Who Is Who)〉(1991~ )는 이러한 국내 미술 소그룹 운동사에서 가장 활발한 전개기에 등장했고, 후자는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글은 이 두 그룹을 중심으로 1990년대 이후의 미술 소그룹 운동의 활동과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이 두 그룹이 당시의 다른 소그룹들과 어떠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이 글은 서라벌예술대학으로부터 명맥을 이어받은 중앙대 미술학부의 창립 60년 역사 중 1990년대로부터의 현재까지의 소그룹 운동사를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있어 일조할 것이다.  



II. 1990년대 전후 미술 소그룹 운동의 상황
1990년대의 미술 소그룹 운동은 1980년대의 질곡과 상처들을 계승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중반기의 소그룹 운동은 모노크롬 류의 ‘모더니즘’과 민중미술로 대변되는 ‘리얼리즘’이라는 양대 산맥의 공존과 전개와 더불어 이어졌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란 1970-80년대 현장미술에서 보여준 소집단들이 연합하면서 전국적 미술운동으로 확산된 것이었다. 1980년대의 일련의 환경미술 역시 그러하다. 대성리의 현장미술이 덩치를 키우며 〈바깥미술회〉로 연례화되고, 야투(野投)의 자연미술 운동이 오늘날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낳고 글로벌 이벤트 그룹으로 발전해 온 것1)처럼 소집단은 연합과 네트워킹으로 자신의 위상을 확장한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의 소그룹 운동의 특성은 그것이 아니다. 연합과 네트워킹은 맞으나 그것으로 확산하는 것이라고 하기보다 소집단의 위상에 거하면서 집단의 소멸에까지 이르는 자신들만의 다원화된 실험에 탐닉하는 것이다. 즉 80년대 초반기의 모더니즘 경향, 중반기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치열한 대립적 경향을 거쳐 후반기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계승하면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자신만의 새로운 소그룹 운동을 정초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1990년대의 소그룹 운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전반기를 전환기로 설정하고 논의를 시작하기보다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상황을 한데 묶어 전환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상황은 모노크롬 류의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이라는 리얼리즘의 극명한 대립으로부터 탈주하려는 대안이 모색되었다. 당시에 그 대안으로 급부상했던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었는데, 주로 ‘신세대’라 불리는 신진작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에 경도된 작품들로 소그룹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신세대란 무엇인가? 당시에 지칭하던 신세대란 용어는 기존의 세계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세계 질서를 담아내는 미술의 전망을 제시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근간으로 하는 세대”2)이자 “점진적 개선보다는 해체 개념을 가지고 있는 입장”3)의 행동주의를 실천하는 세대였다.  
이러한 신세대들이 이끄는 소그룹들은 기존의 것을 구태로 밀고 새로운 감수성을 제안한다. 대중매체에 대한 친근한 정서, 탈(脫)이데올로기, 탈엘리트주의 미술, 탈장르, 복고주의 미학, 형상의 복원과 다원주의 문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포스트모던 경향의 창작들이 이러한 그룹 활동들을 통해서 소개되었다. 이 당시 결성된 그룹은 1980년대 초중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대규모적 연대와 통합형 네트워크를 탈주하고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추종하면서 네트워크가 느슨해진 유형으로 자리를 잡은 그야말로 작은 규모의 소그룹이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대표적인 소그룹으로 거론되고 있는 〈난지도〉(1985~1989)’와 〈메타복스(Meta-Vox)〉(1985~1989)’는 탈모던의 기치를 올린 첫 번째 그룹이라 할 것이다. 이어서 신세대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는 〈뮤지엄(Museum)〉(1987-1991)’, 〈황금사과〉(1990)’, 〈서브클럽(SUB CLUB)〉(1990-91)’의 활동 또한 주목할 만하다.     
평론가 이재언은 1992년의 한 비평문4)에서 그 외에도 당시의 대표적인 신세대 그룹으로 ‘〈선데이 서울〉, 〈황금사과〉, 〈푸른 하늘〉, 〈SUB CLUB〉, 〈커피-COKE〉, 〈WHO IS WHO〉, 〈ACT〉, 〈OFF AND ON〉’을 꼽고 있다. 기성세대가 이끌고 있는 그룹에 신진 작가들이 가입하면서 덩치를 점차 키워 가는 일반적 미술 그룹들과 달리, 이 소그룹들은 신세대라는 불리는 신진 작가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자생적으로 결성하고 그 목적이나 필요의 생명이 다하게 되면 이내 해체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거론된 그룹들의 결성과 해체년도5)를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살펴보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대 4년 정도가 최장 기간으로 대개 1-2년 정도의 기간으로 잠시 활동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주목할 것은 홍대와 서울대가 주도하는 이러한 소그룹 운동 중에 중앙대가 주도하는 〈WHO IS WHO〉가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인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소그룹이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해체된 것에 비해 소그룹 〈WHO IS WHO〉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중반 휴지기가 있기는 하지만, 1991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대가 주도하는 또 다른 그룹 (Here and Now)〉는 1988년 창립 이래 소그룹으로서는 비교적 장기간인 2006년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이처럼 한 그룹을 비교적 오랜 시간을 생존하게 만들고, 또 다른 그룹을 지금까지 생존하게 만들고 있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두 그룹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활동의 특징들은 어떤 것들로 정리될 수 있을까? 그것을 다음 장에서 그룹 별로 분석해 본다.  




III. 히어앤나우(Here and Now)(1988~2006): 같이 즐겁게 하자



 

위의 도표에서 나타난 그룹 〈Here and Now〉는 1988년 중앙대 회화과 재학생 84학번 동기들에 의해 결성되었다. 창립 이후 전개되어 온 이 그룹의 역사가 도표처럼 정리된다고 할 때, 그 구체적인 상황들은 어떠한 것들이었을까? 
구체적으로 이 그룹은 1980년대 중후반 신진 작가들의 소그룹 운동이 활발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중앙대 회화과 재학생 84학번 60여 명 중 10인 이내의 인원이 안성 소재 중앙대학교 상설전시장에서 이 그룹의 첫 전시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그룹의 성격을 ‘대학 졸업 후 맞이할 전업 작가로서의 미래를 학창 시절에 미리 준비하려는 84학번 복학생으로 구성된 스터디 성격이 강한 모임’이라고 얼추 정의해 볼 수 있겠다. 
위의 도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89년 4월 창립전 이래, 같은 해 10월에 이어서 열렸던 전시 주제는 ‘돌출’이었다. 전시명이 상기시키는 신세대들의 도전과 실험 정신들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어서 1990년 3회 전시에는 전시장이 서울 명동의 중앙미술관으로 옮기게 되면서 ‘Here and Now’라는 주제가 제시되었다. 따라서 1989년 창립 당시에 이 그룹의 확정된 이름은 따로 없었지만, 1990년 3회 전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전시명이 비로소 이 그룹의 이름으로 확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 여기(Here and Now)’라는 그룹명은 다수의 84학번 동기들이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서 예술가로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 당시의 절박한 상황들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다분히 우리에게 본질적 존재와 대립되는 ‘지금, 여기’의 현실에 살아있다는 인간의 실존적 존재를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이 주제어는 타자의 것이 아닌 주체의 것이자,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시공간이자, 현재 진행형이라는 삶의 양태를 드러낸다. 그것은 절대로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매일처럼 새로운 이질성의 시공간의 경험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본격적으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보편적인 예술관을 되뇌기에 당시 이들의 예술가적 현존은 절박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84학번의 졸업 이후 치르게 된 제 3회 전시 이후 이 그룹의 구성원은 자연스럽게 졸업생들로 전환되었고, 해마다 졸업생들을 신입 회원들로 맞이하면서 전시를 이어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1994년에 열린 제7회 전시이다. 당시 전시 주제는 ‘문화적 폭력’이었는데, 그룹명과 연계되는 용어가 아닌 순수한 전시만을 위해 고려된 용어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고 할 것이다. 이 그룹은 1994년부터 매해 하나의 전시 주제를 선정하여, 각자의 해석을 선보임으로써 “각각의 문제 제기를 통하여 다양성과 더불어 공통된 언어를 표출하여 왔다.”15)











 공동의 주제를 통해서 “각자의 개성은 물론 공동의 완성도를 높이고자”16) 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전까지의 전시가 회원들 각자의 작품 세계와 관점들을 한 자리에 모아 작업의 방향에 대한 모색을 도모하는데 있었다면, 1994년부터의 전시는 “회원들의 작가적 탐색과 의지를 하나의 담론 속으로 심화시켜 보는 작업” 17)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즉 공통의 주제를 연구하는 스터디의 특성을 갖춘 소그룹의 활동이 1994년부터 실천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특히 1995년 8회, 1996년 9회 주제는 신화, 성(性) 등 미술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보편적 주제였고 특별히 2001년 14회 주제는 ‘탈코드화된 빛(광복)-젊은 작가들의 역사 인식’이라는 긴 제목의 구체화된 주제를 제시하면서 한서, 썬앤문, 인사갤러리 등 3곳의 장소에서 1. 2부에 걸쳐서 전시를 선보였다. 특별 강의프로그램도 마련하는 등 개요만 보더라도 주최 측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노력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물론 그 외의 주제들은 대개 감상적인 가벼운 것들이거나 문학적 서술이 대개였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한편 1999년 덕원갤러리와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지속적으로 전시했던 관훈갤러리는 1980년대 중반~1990년대 후반까지 국내 소그룹 운동의 대표적인 현장이었다는 점에서 〈Here and Now〉의 소그룹 활동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소그룹 운동사는 일반적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그룹 운동들과 함께 연동되어 비교, 분석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체를 논하는데 있어서 일정부분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중앙에서의 역사라는 점에서 주요하게 거론된다. 1990년대 당시 덕원갤러리, 관훈갤러리는 ‘〈선데이 서울〉, 〈황금사과〉, 〈푸른 하늘〉, 〈SUB CLUB〉, 〈커피-COKE〉, 〈WHO IS WHO〉, 〈ACT〉, 〈OFF AND ON〉’ 등의 주요 소그룹들의 대표적인 전시 현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서울로부터 안성으로 이주했던 중앙대 회화과 출신들의 활동이 그다지 위축되지 않고 전개될 수 있었던 까닭도 이러한 서울의 전시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Here and Now〉와 같은 소그룹 활동이 있었던 때문이었다.    
 〈Here and Now〉는 회비로 연명되는 그룹의 특성상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지만 여러 방면으로 지속적인 소그룹 활동을 펼쳤다. 1999년 12회, 2000년 13회 정기전 즈음에 함께 벌였던 특별 기획전은 주목할 만하다. 그 외에 특별한 부대행사도 주목거리라 하겠다. 1999년 12회 전시에는 ‘오늘의 자화상’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참여 작가 최기영의 흥미로운 특별행사가 열렸다. 개막 당일 13-17시까지 “원하는 머리를 만들어 드린다”18)는 부대행사까지 겸함으로써 흥행을 도모하고자 애쓴 노력이 엿보인다. 
독립큐레이터들의 활동이 막 생성되기 시작하던 당시에 작가들이 스스로 만드는 전시가 구색을 갖추기는 쉽지 않았지만 열정 하나로 움직이던 시기였다. 계획적인 정기전을 선보이기 위해서 이 그룹은 1994년부터는 운영위원, 편집, 기획 담당자의 이름을 카탈로그에 명기19)해서 책임을 다하고자 애쓰기도 했다. 특히 동문 고 문희돈이 운영위원회의 장으로서 역할을 책임감 있게 다했다는 평가가 다수이다. 
그 뿐 아니라 이 그룹은 18회 2006년 마지막 전시에 이르기까지 동문들의 친목 단체라는 오명을 벗어 내고자 늘 노력했다. 중앙대 동문이 주축이 된 그룹의 외연을 넓히고 그룹을 개방하고자 외부의 신입 회원들을 꾸준히 가입시키고 매해 행사 참여를 독려한 것이다.20) 이들의 전공은 서양화, 한국화뿐만 아니라 조소, 시각디자인, 유리 조형 등 매우 다양했다. 최종적으로 그룹으로서의 효용성이 감소되는 2000년대에, 결국 18회 전시21)를 끝으로  〈Here and Now〉의 소그룹 운동은 끝이 났다. 유시유종의 미를 살리는 마지막 전시의 주제는 의미심장하게도 ‘같이 즐겁게 하자’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짧은 인생이지만 예술이라는 것을 하기에 너무 외롭다. 
힘들 때 같이 즐겁게 하자.” 22) 




IV. 후이즈 후(Who is Who)(1991~) : 올곧은 중앙의 역사 쓰기



위의 도표는 그룹 〈Who Is Who〉가 1991년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한 동문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된 이후 전개되어 온 그룹의 역사를 간략히 도표화한 것이다. 
먼저 살펴볼 것은 그룹의 정체성이다. 그룹 〈Who Is Who〉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이 시대의 미술가들의 존재 성찰로 바꿔 사유한다. 예술가 존재에 대한 조형적 성찰을 위해서는 고갱(Paul Gauguin)의 다음 작품이 하나의 화두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D'ou venons-nous ? Qui sommes-nous ? Ou allons-nous ?)〉(1897)라는 작품 말이다. 2010년부터 이 그룹의 정기전 엽서에 게재되기 시작한 이 말의 영어 번역33) 역시 같은 묵직한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처럼 그룹 〈Who Is Who〉의 활동에는, 고갱의 작품이 그러했듯이,  인간의 생(生), 존재, 멸(滅)의 근원이 무엇이며 그 속에서 우리의 존재란 무엇인지를 되묻는 인간 존재에 관한 끊임없는 문제의식과 철학적 성찰이 펼쳐진다. 이러한 그룹의 진중한 주제의식과 그룹 활동의 지향점은 실험과 연구 모임이라는 소규모 그룹 운동과는 출발부터 이격된 감이 없지 않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위의 도표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사실 하나가 등장한다.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동문들이 그룹 〈Who Is Who〉의 창립에서부터 3회 정기전에 이르기까지 함께 주역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위의 도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창립해인 1991년의 토탈갤러리는 기획자 정준모가 재작하고 있던 곳이고, 이어 2회, 3회의 예술의전당은 기획자 감윤조가 현재까지도 재직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창립전과 2회의 서문은 미술평론가이자 기획자인 윤진섭이 썼는데, 그는 당시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던 정준모와 대학원 동문이었다. 그리고 3회의 서문은 당시 롯데갤러리에 재직하고 있던 기획자 이원일이 썼다. 윤진섭만 빼고 모두 중앙대 회화과 동문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그룹의 탄생에 있어, 정준모, 이원일, 감윤조 등 당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던 중앙대 회화과 동문 3인이 윤진섭 비평가와 함께, 인큐베이팅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예술의전당이라는 장소는 협찬이 성사된 것은 아니었지만34) 토탈갤러리의 경우는 후원으로 기입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일정 부분의 지원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창립 당시 구성원의 면면에서 드러나듯이, 졸업 이후 현재까지 교육 및 미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회원들 역시 기획자 3인방과 함께 이 그룹 탄생의 주역이었다. 그런 면에서〈Who Is Who〉의 창립은 예술가와 더불어 예술 창작을 경험했던 기획자들이 만나 성취한 이상적인 과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당시 창립전 카탈로그에서 윤진섭은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어떤 시대가 직면한 문제적 상황이 있을 때, 그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의식에 동시대인은 어떤 형태로든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문화적 조건 속에 이미 갇혀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앞서서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지 않을 수 없는 동시대의 문화적 조건 앞에 우리는 내던져져 있다고 말한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적 상황이란 과연 무엇인가? 필자는 공동 이념의 결여, 대전제가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개별화된 예술 행위의 확산이 현금 한국미술이 처한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 35)

윤진섭의 위의 언급은 그룹 〈Who Is Who〉가 처해 있던 당시 미술 현장의 암울한 상황을 토로한 것이다. 80년대의 소집단 운동이 보여 주었던 공동 이념과 대전제 등이 그룹별 특성을 강화하고 미술 현장을 활기차게 만들었던 것을 직접 체험했던 필자로서, 〈Who Is Who〉가 처해 있는 파편화되고 다원화되어 가는 소그룹의 현재적 상황이 윤진섭에게는 적잖이 염려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서문에서 직접 언급하듯이, “중앙대 회화과 동문이라는, 어찌 보면 다분히 친목적 모임과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는 것”36)을 주목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활동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 상황과 시대의 요구에 결코 등한할 수 없는 문제”37)를 고민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1992년 2회 예술의전당에서의 정기전을 위한 서문에서도 윤진섭은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1990년대 초입의 미술 상황 자체가 개별적, 파편적인 명백한 사실을 전제하면서, 그 가운데 그룹 〈Who Is Who〉의 작업을 “주로 기법과 형식, 또는 매체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작업”38) 그리고 “다양한 형식 실험과 내용의 진술”39)로 바라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창립전의 카탈로그에 게재된 작품들은 거의 다가 ‘표현주의적 추상, 구조적이고 기하학적 추상, 그리고 형상성의 복원, 표현주의적 잔여’ 등이 일렁이는 회화들이다. 1점의 신화와 역사를 탐구하는 주제의 설치 작업이 있을 따름이었다. 윤진섭은 그룹의 한계를 미리 염려하면서도 글의 말미에 “후이즈후 그룹이 다순한 동문전의 차원을 넘어 명실공히 미술계에 이슈를 던지는 그룹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40)고 적고 있다. 










그의 글에서 논조를 거듭 파악해 보면, 그룹 〈Who Is Who〉에 대한 낙관론적 전망은 글의 형식을 위한 수사처럼 읽힐 따름이고 당시 소그룹의 대한 비관적 전망을 그룹 〈Who Is Who〉에 통째로 덮어 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93년 3회 정기전에 서문을 썼던 이원일은 자신이 2, 3회 참여 작가로 작품을 출품했으니 객관적인 입장에서 비평적 진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다음처럼 쓰고 있다. 

“우리는 91년 토탈미술관, 92년 예술의전당에서의 전시를 통하여 어떤 특정한 ‘이즘’을 표방하거나 획일화된 조형 언어를 추구하여 또 하나의 형식주의를 생산해 내는 태도에서 일탈하여 매체의 다양한 실험과 내용의 확산을 전개하여 다각도에서 회화의 본질에 접근하고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했다. 
즉, (중략) 회원 각자의 지향하는 작업 내용에 있어 다양성을 확보하려 했으며, 이러한 기법과 형식, 매체 실험을 통하여 다양한 관점과 쟁점을 지닌 조형 세계를 구축해 보고자 노력했던 것이 우리의 회화적 목표에 다름 아닐 것이다.” 41)

 
이원일은 위의 글에서 이 그룹의 지향하는 바를 다시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1, 2회 정기전의 서문에서 나타난 윤진섭의 비판적 논조에 대한 일종의 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원일 또한 그룹〈Who Is Who〉의 당시의 “조형 언어가 폭넓은 현대미술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수용해 나가기에는 한계를 지니고”42)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회원 일동은 무조건의 논리만을 주장하거나 혹은 실천만을 주장하는 양극성을 피하여 보편적 공감을 얻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43)라면서 이 그룹의 지향점에 동조하고 적극 지지한다. 이원일은 그룹 〈Who Is Who〉에게 “단순한 동문전의 성격에서 벗어나 화단에 이슈를 제시하는 적극적인 몸짓으로 인식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는 회화적 모색과 함께 회원 각자의 치열한 작가적 성찰과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44)을 무거운 과제로 제안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렇다. 그룹 〈Who Is Who〉는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소그룹 〈Here and Now〉이 지향하는 선명한 외연 확대의 노력들과는 다른 지점에 남겨져 있다. 즉 동문전의 성격으로부터 그다지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외부자의 시선에 있어서는, ‘작가는 있되, 친족들만 있고, 전시는 있되, 그저 정기전일 뿐이고, 실험은 있되, 그룹 구성원 개별 주체에게 일임할 따름이며, 외부의 비판은 있되,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작업을 묵언수행으로 진행할 뿐인 그룹’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룹은 “오랜 역사의 동문 그룹전”45)을 대외적으로 천명한다. 신진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실험 의식과 필요에 의해 모였다가 이내 사라지고 마는 신기루 같은 소그룹의 특성과는 첫출발부터 차별화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룹 구성원의 다수가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룹 외부의 동문들이 보기에 일정 부분 이질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 그룹은 특히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젊은 신진들의 피를 지속적으로 수혈하지 않음으로써 그룹의 몸과 평균 연령을 지속적으로 노화시키는 것이 비판적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공동 연구와 같은 책무 의식은 개별 구성원 주체에게 부담시킴으로써 그룹의 성격을 지나치게 동문전의 형식에 매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이 글이 실험과 연구를 전제로 한 90년대 소그룹 운동을 화두로 연구하는 글이기보다는 중앙대를 주축으로 진행되었던 중앙대 미술학과 6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의 일환으로 작성되는 글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겠다. 따라서 소그룹 논의에서 필수적 전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연구 대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조차 있는 그룹 〈Who Is Who〉는 이 글에서는 주요한 연구 대상이다.
그룹〈Who Is Who〉는 피상적으로는 자부심을 가진 예술가 주체들의 연대체로 작동하길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말해, 좌충우돌의 모험보다는 진지함과 성숙함을 전제로 하는 예술 활동을 펼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논의의 한계는 있지만, 이 그룹이 중앙대의 활동을 기록하고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있어 첨병의 역할을 다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아이엠에프(IMF)의 어려운 시절을 거치는 동안 얼마간 그룹 활동을 하지 못했던 기간과 더불어 최근의 2년 정도의 공백이 있지만 그룹 〈Who Is Who〉는 2016년 올해 전시 계획을 갖고 있다. 회비만으로 운영되기에는 무거운 몸집을 갖고 있는 이 그룹이 어떤 경우에는 카탈로그로, 리플릿으로 또는 엽서로 그룹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제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중앙대의 회화과 동문의 역사를 충실한 기록으로 지속적으로 남겨야만 할 것이다. 정순원 동문이 이끌고 있는 이 그룹의 발전적 면모를 계속 지켜볼 수 있게 되기를 여러 동문들은 오늘도 기대할 것이다. 




V. 나오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중앙대 회화과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두 그룹인 〈히어앤나우(Here and Now)〉(1988~2006)와 〈후이즈후(Who Is Who)〉(1991~ )를 살펴보았다. 
1990년대 전후, 즉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발생한 국내의 미술 소그룹 운동의 상황은 이전의 80년대 중반까지의 소그룹 운동과는 달리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없으며 중심 테제도 없는 실험으로 점철되었다. 그것은 다원주의라는 이름 아래 펼쳐진 ‘표현의 다양성 탐구, 매체의 형식적 탐구, 사회 참여를 넘나드는 소모성의 실험’이기도 했지만, 어떠한 확고한 목적 아래 자신의 덩치를 키우고 무엇인가 성취하고자 하는 이전의 그룹들과는 다른 다양하고도 파편화된 지점을 목표로 지향했다. 
우리가 살펴본 두 그룹 중 다분히 이러한 성격과 결부되는 것은 그룹 〈Here and Now〉이다. 대학의 84학번 학부생이 출발시켰던 이 그룹은 향후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재기발랄한 예술적 실험과 더불어 연대와 네트워킹으로 자신의 몸을 외부에 부단히 나눠 주었다. 물론 일정 부분 외연의 확대를 노리면서 페스티벌의 일환처럼 그룹의 활동을 지속시킨 점이 없지 않다. 게다가 구성원들의 유입과 유출이 너무 빈번해서 그룹의 몸을 탄탄히 만들기 보다는 축제적 행사의 몸을 소진한 느낌 또한 없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도 이 그룹을 구성원과의 상호작용과 졸업 후의 회화적 연구 방법론을 공유하면서 회화하기의 과제들을 부단히 실험했던 자유롭지만 열정적인 그룹이었다고 평할 수 있겠다. 
한편, 90년대 소그룹 운동과는 성격이 일정 부분 상이하지만 중앙대학교의 미술 그룹으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룹이 〈Who Is Who〉이다. 아직 생존하고 있는 이 그룹은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소그룹 이상론을 요청받았음에도, 대외적으로 ‘오랜 역사의 동문전’임을 선언하면서 그룹의 정체성을 껴안는데 집중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즉 개인의 실험적 연구 결과들을 수용하고 이를 독려하는 것에 집중하는 그룹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따라서 그룹 자체의 무모한 실험을 지양하고 창작자들의 개별 예술 실험을 한데 모으는 진중하고 무게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 그룹은 중앙 미술의 올곧은 산 역사라 할 것이다. 
중앙대 회화과 출신의 그룹이 둘뿐만은 아니다. 여학우들의 권위 있는 동문전인 〈은채전〉도 있고, 88학번 중심으로 꾸려져서 지속되고 있는 〈네모 판화〉도 있고, 80년대 행동주의 미술의 이상을 90년대 실천하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끝내 2000년대 사라지고 만 〈들풀〉이라는 그룹 또한 있었다. 또한 이름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생겼다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그룹들 또한 없지 않다. 이 모든 그룹은 그 정체성과 위상이 모두 제각기이지만 중앙의 또 다른 이름들이다. 우리가 앞서 연구한 두 그룹의 정체성과 다른 또 다른 모습으로 오늘도 중앙의 많은 미술 그룹들이 활발한 활동을 선보여 주길 기대한다. ●

주석
1) 편집부, 「현장미술과 소그룹 운동 연표」, 특집, 『미술세계』, 8월호, 2000, pp. 60-61. 
2) 이재언 외, 「한국미술 어디로 가고 있나 - 현대미술 의 제 경향-한국 신세대 미술의 단면」. 『미술세계』, 기획특집2  한국미술 전환기의 모색<4>, 좌담, 이재언 진술, 1992, pp. 61-62.
3) 이재언 외, 위의 글, 유창현 진술, 1992, p. 65.
4) 이재언, 「전환기의 신세대 미술운동」,  『미술세계』, 이달의 특집2, 신세대 그룹, 논고, 1992, p. 52. 
5)〈선데이 서울〉(1990-1991 / 뮤지엄(1887-1991)의 후신), 〈황금사과〉(1990), 〈푸른 하늘〉(1985-1992), 〈SUB CLUB〉(90-91), 〈커피-COKE〉(1990-1991), 〈WHO IS WHO〉(1991- ), 〈ACT〉(1989-1990), 〈OFF AND ON〉(1991). 다음의 특집 시리즈에서 연도만 발췌함. 편집부, 「이달의 특집2/신세대 그룹」, 『미술세계』, 2월호, 1992, pp. 52-61.
6) 참여 작가(12인): 김소희, 문희돈, 박원태, 손갑환, 이광훈, 이동주, 이은경, 이지현, 이훈길, 조성원, 최우식, 최인석, 1991. 5. 1-7.
7) 참여 작가(30인): 김도희, 김미정, 김종철, 김희수, 류희금, 문희돈, 민혜경, 박성균, 박종택, 박원태, 박현수, 염중호, 이경혜, 이광훈, 이도선, 이미영, 이우현, 이은경, 이재춘, 이해성, 이훈길, 이희경, 조상근, 조성원, 천보현, 최승미, 최익진, 최인석, 홍순환, 황철환, 1994. 6. 1-7.
8) 참여 작가(29인): 김종철, 김미정, 김희수, 김명보, 김도희, 김순명, 김진근, 류희금, 민혜경, 문희돈, 문주호, 박성균, 박원태, 박현수, 백용정, 손갑환, 양은경, 이도선, 이재춘, 이경혜, 이은경, 이동주, 이희경, 이우현, 이광훈, 조성원, 천보현, 최승미, 최익진, 1995. 6. 21-27.
9) 참여 작가(35인): 강석문, 고영균 구은영, 권순태, 김명보, 김미정, 김민기, 김보민, 김윤희, 김은성, 김이훈, 김종철, 기진근, 김현승, 김희수, 문희돈, 민혜경, 박성균, 박현수, 손갑환, 손원영, 양정익, 이경혜, 이도선, 이은경, 이은경, 이재춘, 이중노, 이화순, 이형근, 이희경, 조상근, 조성미, 최승미, 최익진, 1996. 7. 24-30.
10) 참여 작가(33인): 강유성, 고영균, 김명보, 김수옥, 김성준, 김영구, 김용태, 김애희, 김이훈, 김헤영, 류정상, 문유진, 문희돈, 박성균, 박주연, 박진홍, 변준희, 사윤택, 성라미, 손진숙, 양정익, 유인옥, 임채복, 이규학, 이동주, 이동환, 이화순, 이운희, 이홍원, 장남희, 조성호, 최기영, 최익진, 1999. 7. 21-27.
11) 참여 작가(34인): 강유성, 김명보, 김선일, 김성완, 김성준, 김세훈, 김수옥, 김용근, 김용태, 김인태, 김재성, 김현지, 문유진, 문효정, 문희돈, 민혜경, 박두순, 박성균, 박진홍, 변준희, 성라미, 신동숙, 안지영, 양정익, 이동주, 이연우, 이준용, 이화순, 임명규, 임채복, 조욱삼, 최익진, 추민해, 윤영수, I부: 2001. 8. 15-28, 2부: 2001. 8. 22-28, 강연회: 2001. 8. 22 오후 3시, 강사 이기만 
12) 참여 작가(21인): 김명보, 김연정, 김용근, 김이훈, 문희돈, 문효정, 박성균, 박소정, 성라미, 신동숙, 양정익, 오진숙, 유영운, 이동주, 이신혜, 이인선, 이준용, 이중노, 임선아, 임은정, 최익진, 2003. 7. 9-15. 
13) 참여 작가(12)인: 김용근, 문효정, 문희돈, 박진홍, 성라미, 신동숙, 안지영, 유영운, 이동주, 이인선, 임혜림, 최익진, 2004. 6. 30-7. 6.
14) 참여 작가(36인): 강명규, 김경서, 김계완, 김명보, 김선일, 김성준, 이샤, 김옥재, 김용근, 김윤경, 김인태, 김재철, 문효정, 문희돈, 박성균, 박연옥, 박운옥, 박주원, 박진홍, 백유경, 손연진, 고신창수, 안지영, 양정익, 오가영, 윤정현, 이동주, 이백란, 이유연, 이인선, 이희정, 임영우, 장성민, 정나영, 정지윤, 최익진, 2006. 7. 29-8. 5.
15) 운영위원회, 「9회 서문」, 『Here and Now』, 전시 카탈로그, 1996, 페이지 수 없음.  
16) 운영위원회, 「8회 서문」, 『Here and Now』, 전시 카탈로그, 1995, 페이지 수 없음.  
17) 운영위원회, 「7회 서문」, 『Here and Now』, 전시 카탈로그, 1994, 페이지 수 없음.   
18) 운영위원회, 「7회 서문」, 『Here and Now』, 전시 카탈로그, 1999, 페이지 수 없음. 
19) 7회(1994); 문희돈, 이광훈, 최인석(운영위원), 박현수, 최익진(편집위원) / 12회(1999): 문희돈, 성라미(운영위원) / 14회(2001): 문희돈, 최익진, 김용근, 이준용, 성라미(운영위원), 문정언, 홍상희, 이흥원(기획) / 18회(2006): 문희돈, 이동주, 김용근, 박진홍(운영위원회).
20) 7회(1994)~8회(1995): 류희금(대구대), 이희경(이화여대) / 9회(1996): 이희경(이화여대) / 12회(1999): 강유성(덕성대), 김애희, 박주연(이화여대), 문유진(세종대), 사윤택(서원대), 유인옥(단국대) 조성호(성균관대) / 14회(2001): 강유성(덕성대), 김선일(세종대), 김인태(홍익대), 김현지(창원대), 문유진(세종대), 박두순(홍익대), 신동숙(스쿨오브비주얼아트), 추민해(단국대) / 16회(2003): 유영운(세종대), 임선아(홍익대) / 17회(2004): 신동숙(스쿨오브비주얼아트), 유영운(세종대), 임혜림(성신여대) / 18회(2006). 김선일(한성대), 김옥재(대진대), 김인태(홍익대), 박주원(숙명여대), 윤정현(국민대), 고 신창수(경성대), 이유연(청주사범대), 이희정, 정나영(건양대), 장성민(시라큐스대), 정지윤(이화여대) 등.
21) 《Here and Now -18회 같이 즐겁게 하자》 (2006. 7. 29-8. 5, 갤러리 쿤스트독) 
22) Here and Now 운영위원회, 「같이 즐겁게 하자」, 『Here and Now』, 18회 서문, 전시 카탈로그, 2006, 페이지 수 없음.  
23) 참여 작가(12인): 감윤조, 강태웅, 권금섭, 김택상, 김한선, 양해웅, 유안나, 이경림, 정순원, 최강철, 허청, 홍창호, 1991. 3. 1-10.
24) 참여 작가(12인): 강태웅, 김택상, 김한선, 박도철, 송매희, 양해웅, 유인나, 이경림, 이원일, 정순원, 최강철, 허청, 1992. 8. 11-23.
25) 참여 작가(14인): 강태웅, 김한선, 박원태, 박창식, 송매희, 양해웅, 유안나, 이승오, 이원일, 최강철, 이지현, 정동명 정순원, 허청, 1993. 7. 9-18.
26) 참여 작가(14인): 강태웅, 김한선, 문주호, 박원태, 박호창, 윤익한, 이경림, 이병채, 이승오, 이지현, 전경호, 정순원, 허청, 홍창호, 1996. 7. 24-30. 
27) 참여 작가(16인): 강태웅, 김한선, 문주호, 변영미, 엄대상, 윤익한, 이경림, 이병채, 이승오, 이지현, 장인선, 전경호, 정순원, 한광숙, 허청, 홍창호, 1997. 1. 10-15. 
28) 참여 작가(17인): 권금섭, 김한선, 김혜영, 문승현, 박성균, 박원태, 박재영, 손원영, 이병채, 이상희, 이인선, 윤익한, 전경호, 정순원, 정영한, 조상근, 황적환, 2010. 10. 30-11. 19. 
29) 참여 작가(18인): 김학연, 김한선, 김혜영, 문승현, 박성균, 박원태, 박재영, 손원영, 이병채, 이상희, 이인선, 윤익한, 전경호, 저운원, 정영한, 조상근, 홍순환, 황적환, 2011. 5. 26-6. 2.
30) 참여 작가(13인): 김학연, 김한선, 김혜영, 문승현, 박성균 박재영, 손원영, 이상희, 이인선, 윤익한, 전경호, 정순원, 홍순환, 2011. 8. 17-23.
31) 참여 작가(17인): 강태웅, 김계완, 김학연, 김한선, 김혜영, 문승현, 박성균, 박재영, 손원영, 윤익한, 이상희, 이인선, 전경호, 정순원, 정영한, 조상근, 홍순환, 2012. 5. 29-6. 4.
32) 참여 작가(17인): 강태웅, 김계완, 김한선, 김혜영, 문승현, 박성균, 박재영, 손원영, 윤익한, 이상희, 이인선, 전경호, 정순원, 정영한, 조상근, 허청, 홍순환, 2013. 6. 24-30. 
33) 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 1897.
34) 그룹 회원 강태웅 진술, 2016. 4. 9. 
35) 윤진섭, 「소집단 활동과 한국미술의 과제 &#8211;후이즈후(Who is Who) 그룹의 창립전에 부쳐」, 『Who is Who』, 창립전 카탈로그 서문, 1991, 페이지 수 없음. 
36) 윤진섭, 위의 글, 1991. 
37) 윤진섭, 위의 글, 1991. 
38) 윤진섭, 「다양한 매체 실험과 내용의 확산-제2회 Who is Who 그룹전에 부쳐」, 『Who is Who』, 제2회 카탈로그 서문, 1992, 페이지 수 없음.
39) 윤진섭, 위의 글, 1992.
40) 윤진섭, 위의 글, 1992.
41) 이원일, 「3회전에 즈음하여」, 『Who is Who』, 제3회 카탈로그 서문, 1993, 페이지 수 없음.
42) 이원일, 위의 글, 1993.
43) 이원일, 위의 글, 1993.
44) 이원일, 위의 글, 1993.
45) 위의 글, 2012. 




출전/
김성호,「1990년대 이후 미술 소그룹 운동 - Here and Now, Who is Who를 중심으로」, 『서라벌에서 중앙까지 - 60년의 예술 여정, 1956-2016』,  중앙대학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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