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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홀대받는 ´미술관 사서´

김달진

[문화칼럼] 홀대받는 ´미술관 사서´


유난히 비 오는 날이 많았던 8월 미술판에는 작지만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도서자료실에서 16년간 일해 온 유순남씨가 부당한 인사발령에 항의해 사표를 내고 미술관을 떠난 것이다.


유씨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처음 임용될 당시 정사서 자격증이 있으면서도 사서직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임용된 관계로, 통역직으로 발령받아 자료실에서 근무해 왔다. 근무 기간 중 그는 1988년과 97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의 국립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박물관으로 국비 연수를 다녀와 그곳에서 쌓은 경험으로 ‘미술관과 자료’라는 책자를 책임 집필했고, 작년 말에는 미술인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문화관광부장관상 표창도 받았다. 개인적으로도 대학원에서 정보처리를 전공한 미술 전문 사서다.


▼국립현대미술관 파행인사▼

유씨가 빠진 도서자료실에는 신임 문화관광부 차관의 비서였던 사람이 내부 특채 형식으로 임명받고 근무를 시작했다. 유씨는 발령 이후 하던 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3개월만 배려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묵살당하고 많은 갈등과 고심 끝에 미술관에서 더 이상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사표를 통해 잘못된 인사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최근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모임인 한국큐레이터포럼에서도 유씨의 원직 복직과 직제개편,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도서자료실은 일반 도서관처럼 미술도서와 팸플릿 등을 구비해 놓고 도서 열람자를 단순히 안내하는 기능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2차 자료의 생산뿐 아니라 한 나라의 미술문화에 대한 자료수집, 조사,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기구다. 게다가 미술인들의 활동사항을 기록 관리하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술계의 활동을 수집 정리하고, 미술관 자체의 행정적인 기록까지 보존하는 아카이브 형태로의 발전이 필요한 곳이다.


특히 앞으로는 새롭게 미술문헌 자료들을 수집 분류하고 이용자들이 그것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인덱스카드 분류, 미술관 소장 작품을 연구할 수 있는 소장품 주제 분류, 작품 관련 문헌자료를 색인해 제공하고 그 소스에 하이퍼링크가 되는 통합된 소장품 관리시스템 등이 가능해야 한다. 미국 국립미술관 미술자료실의 경우 행정사서 등 15개 분야에 직원이 50여명 있고, 영국의 대표적인 근현대미술관인 테이트갤러리 자료실에는 사서 외에 전문 기록보관자(아키비스트)들이 별도로 존재한다. 많이 알려진 미 로스앤젤레스 게티미술연구소의 아카이브는 미술사 연구의 핵심기지다. 이런 곳이 미술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미술정보의 지식 창출과 문화적 가치를 상승시켜주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실에서 사서이면 누구나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그래서 종종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대상 수상작가전’에 1989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수상작가인 김훈(金勳)씨의 작품 대신 그보다 42세가 많은 다른 김훈(金壎)씨의 작품이 도록에 실리고 1주일이나 전시장에 걸려 있었던 일은 실수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후에도 여러 기획전의 도록과 명제표의 오류, 오기가 많이 있었다.


미술관 자료실 사서는 자발적으로 좋아서 일을 찾아 만들어 가고 개발해 나가겠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다. 필자도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해 14년 5개월 동안 자료실에서 근무하다 1996년 기능직 10급이라는 한계에 절망해 뛰쳐나온 사람이다. 미술관 행정직들은 자료실 담당자들이 기능직 통역직으로 일하고 있는 문제를 개선해주는 해결책을 찾았어야 했다. 전문가를 우대하지 않는 한 각 분야의 현장에서 터득된 지식은 축적되지 않는다.


▼미술전문가 배려 아쉬워▼

하긴 전문가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일이 어디 이번뿐이겠는가. 서울시립미술관의 핵심 전문직들은 88년부터 지금껏 계약직 신분이고, 미술판에서 일하는 많은 큐레이터들의 처우 개선도 시급하다.


국가에서는 ‘문화의 세기’를 부르짖고 이를 주도할 문화 전문인력의 집중 육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전문가를 홀대하는 상황에서 문화입국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전문가들이 능력을 발휘해 훨씬 큰 일을 이룩해 낼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적 배려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생각할 때 서비스는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며 사회에 대한 공헌도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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