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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근시간을 뒹구는 돌
: 화강암 촬영 작품 총 20여점 및 설치    


돌과의 사랑 ;  박용하 | 시인               

 어느 해였던가. ‘너븐 여울’이란 이름의 광탄리廣灘里에서 살 때였다. 개울가를 평소처럼 산책하고 있던 내게 그 숱한 돌 중 어린애 손바닥만 한 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개울 바닥에 있는 돌은 그 개울 바닥에 있는 게 가장 낫다’라는 평소 내 생각과 달리 나는 그 돌을 집어 집으로 가져오고 말았다. 그 돌은 지금도 내 책상 위에 놓여 있고 자주 내 눈길과 마주하며 이따금 내 손길도 받는다. 앞면은 일그러진 보살상이고 뒷면은 어딘가 기분이 언짢은 여인의 상이지만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거부감보다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미석美石이 아니지만 그 많은 돌 중의 하나가 나와 같은 시공간에서 그 많은 사람들 중의 한사람처럼 동고동락하며 지내게 된 것이다. 선악을 떠나 나는 돌의 운명에 관여했다. 
 전형근이 돌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는 것을 여러 해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나는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 놓여 있는 돌을 찍는 줄 알았는데 작품을 보고 내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갔음을 알았다. 그는 돌에 온기 어린 시선만을 준 것이 아니라 돌에 손길을 보듬어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돌마다 지닌 살결과 표정, 언어를 드러냈으며 돌에도 각자 고유의 시선이 있고 체온이 흐른다는 것을 조용히 주장하는 것 같았다. 전형근은 사진을 통해, 사진 속에서 돌과 순간적으로 ‘접속’한 게 아니라 오래 ‘접촉’했다. 비록 이목구비가 사람처럼 갖춰져 있지는 않지만 저 ‘얼굴 없는 돌의 얼굴’과 마주하면 돌과 인간의 감정 교류가 확산되고 있다는 유대감을 떨쳐 버리기 쉽지 않다. 어떤 돌은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겪고도 겪은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고 어떤 돌은 가까이 하고 싶었지만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또 어떤 돌은 내 이웃의 평범한 아낙을 연상케 하고 무뚝뚝하지만 심성 고운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뿐이겠는가. 돌 우주선, 돌 잠수함, 팥이 숭숭 들어간 돌찐빵, 깨를 입힌 돌과자 등 그 형상도 각양각색이다. 또 어떤 돌은 물이 흐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행성과 하나 다르지 않다. 게다가 저 돌의 우둘투둘한 표면은 화가 박수근이 화면에서 구현한 화강암 질감과 닮았지 않은가.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발부리에 채는 돌 만큼 가까이 있다. 전형근은 저 자연 속의 돌을 인간의 나라로 데려와 돌마다 지닌 개성에 인간의 온기를 더해 인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작업했다. 돌을 집어 한 입 두 입 뜯어먹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아예 저 돌 속으로 들어가 살고 싶은 충동을 느끼도록 했다. 그러니 돌을 그저 단단한 광물덩어리라 단정 짓는 건 극히 인간적인 해석일 것이다. 누가 돌을 무생물이라 하는가. 전형근이 사진 속에서 구현한 돌은 생물이다. 그는 돌과 지속적으로 교류했으며 유구한 시간 속을 뒹군 돌을 피가 돌고 숨 쉬는 돌로 환생시켰다. 자, 돌과 사랑할 시간이다.   

천리주可思可遊   Where One Can Wander 

Walk into the Space김윤영


커다란 캔버스가 시야를 가린다. 무슨 그림일까 바라본다. 딱딱한 도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따뜻한 색채들이 흘러나와 주변을 포근히 둘러싼다. 거대한 장막 같던 화면에는 깊이감이 생겨나고 나는 어느새 그림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든다.

  ‘고요 속의 공간(Space in Silence)’ 시리즈는 리주가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베를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받은 영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그려왔던 커다란 창밖으로 이어지는 지평선, 그러나 기차 복도 가운데에 서서 바라본 그 지평선은 더 이상 수평의 선이 아니었다. 원근법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 단단한 사각형은 비스듬한 두 변을 가진 사다리꼴이 되었다.
  말레비치Malevich와 몬드리안Mondrian을 사랑한 작가는 그 유명한 <검은 사각형Black Square>(1915)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결코 깨지지 않을 것만 같은 견고한 추상을 어떻게든 넘어서고 싶었다. 2년 동안 고민한 끝에 사각형의 모서리 두 군데를 조금 잘라냈다. 작은 두 개의 사각형이 떨어져나가자 두 개의 까만 사각형이 겹쳐져 나타났다. 그렇게 잘라낸 사각형을 둘, 셋으로 그렸다.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도덕경(道德經)의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네덜란드 유학시절 리주는 나고 자라온 지역의 문화가 작가의 예술적 자양분이 됨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는 현대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것을 찾느라 스스로의 문화적 뿌리에 관해서는 소홀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학업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와 고전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중국미술사는 물론, 중국의 철학과 사상, 문학 작품들을 찾아 공부했다. 
  그 가운데서도 주역(周易)과 도덕경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고전은 언제나 ‘색(color)’을 좋아하고 알고 싶어했던 그에게 색의 기원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유(有)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無)에서 생겨남을 알려주었다. 리주는 주역에 나타나는 팔괘를 그림에 담아내고 전통적인 오방색을 작품에 도입하면서 세계의 기원과 그 존재방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또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되어 있었다. 이는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분명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도대체 그 사이에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작가는 이로부터 모든 존재가 상대적인 것임을,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한 것임에 착안하여 고요 속의 공간을 구축해나갔다. 그는 주역의 팔괘(八卦)가 이어진 선(─, 陽)과 끊어진 선(--, 陰)의 배열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듯 사다리꼴을 이용한다. 두 개의 사다리꼴은 나란히 혹은 엇갈려 놓이거나, 겹쳐지기도 하며 여러 가지 조합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낸다.

  평면적인 리주의 작품들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색면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내용은 오히려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북송대(北宋代) 곽희(郭熙)의 삼원법(三遠法)에 닿아있다. 곽희는 산수화를 그릴 때 이용하는 일종의 투시법을 이론화했다.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올려다보는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 뒤를 굽어서 넘겨다보는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平遠)을 논했는데, 이들 세 시점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건축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빌려오는 ‘차경(借景)’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점이다. 인간과 산수가 만나는 과정 속에서의 움직임인 것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확립된 서양의 원근법은 바라보는 위치를 고정시켰으며, 보는 주체인 인간과 보여지는 대상을 이분화 시켰다. 반면, 곽희의 삼원법에서 인간은 자연을 거니는 체험을 통해 대자연의 일부가 된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분리된 평면적 화면이 아니라 들어가 거닐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리주의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작품은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닌 들어가 생각하고 유영하는 하나의 세계다.
  2012년작 <Mountain Paint Mountain>, <Painting In Painting>. 작품의 제목처럼 산이 산을 그리고 그림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작가는 이들 작품을 통해 작품과 현실, 그 너머의 것, 그리고 그들의 경계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림인가? 세계인가? 그림 속 그림인가? 그림 속 세계인가? 아니면 그 너머의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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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s for Park Soo Keun (Korean beloved painter)  
국민 화가 박수근에게

You are always keeping an eye at the top of the mountain. 
늘 산 위를 지키고 있는 당신. 

At the same mountain in your childhood 
당신의 어린 시절과 같은 산에서
Mist still rises into the sky. 
여전히 뽀얀 안개가 하늘로 피어 오릅니다.
At the same river in your childhood 
당신의 어린 시절과 같은 강에서
Flowing sound is still can be heard. 
여전히 흘러가는 강물 소리가 들립니다.
In the same sky in your childhood 
당신의 어린 시절과 같은 하늘은
Blue and white clouds just as cotton candy are floating. 
여전히 파랗고 하얀 구름이 넘실거립니다. 

You are always keeping at the top of the mountain. 
늘 산 위를 지키고 있는 당신.


Same early morning 
늘 같은 이른 아침
Always with the same chirping of birds 
언제나와같이 지저귀는 새들.
Same people 
늘 같은 사람들은
Same smiling of people 
늘 같은 웃음을 짓습니다.
Drinking same kinds of rice wine 
같은 막걸리를 마시며 
Always drunk 
언제나 취합니다. 


You are always keeping at the top of the mountain. 
늘 산 위를 지키고 있는 당신.


Women washing clothes in the wash up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들은
Homage towards you. 
당신을 향해 경의를 표합니다.
Working farmers 
일하던 농부들은 
A deep bow to you. 
당신에게 허리 굽혀 인사합니다.
Tough cows 
힘든 젖소 들은
Approaching to you for leaning 
당신에게 기대기 위해 다가갑니다.


You are always keeping at the top of the mountain. 
늘 산 위를 지키고 있는 당신.


Naked trees 
벌거벗은 나무들은
Stay strong and wait for spring. 
꿋꿋하게 봄을 기다립니다.
Korean traditional folk song 
한국의 전통 가락이
Just as resonated yesterday. 
바로 어제 울려 퍼졌던 것 같습니다.
Women who set a basket on their head 
머리에 바구니를 인 여인들은
Still comings and goings to today's noisy marketplace 
여전히 시끄러운 장터를 오고 갑니다.

You are always keeping at the top of the mountain. 
늘 산 위를 지키고 있는 당신


Your paintings just as the paintings on the rock 
반석 위에 그린 그림 같은 당신의 그림은
They are naively recreate that era. 
순박하게그 시대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Poverty of the feast 
빈곤의 성연(盛宴) 
Every one of the characters in the picture 
그림 속 하나 하나의 인물들은 마치
As one of the sketches 
하나의 스케치와 같이
Silently talking one another 
서로 소리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You are always keeping at the top of the mountain. 
늘 산 위를 지키고 있는 당신


Same hopes with Millet 
밀레(Millet)와 같은 소망들은
Gather us to stay under your feet.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발 아래 모이게 합니다.
We heard that one watch 
들리는 이야기에는 평범한 손목시계가
It proved your love with time. 
세월과 함께 당신들의 사랑을 증명해 준다고 합니다

一In the letter which sent to the United States 
미국으로 보낸 편지 속에 
It contained your reality and ideals 
당신의 현실과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You are always keeping at the top of the mountain. 
늘 산 위를 지키고 있는 당신


We are living in your future. 
우리는 당신이 그리던 미래에 살고 있습니다.

in your hometown. 
당신의 고향에서
Talking over your lifetime 
당신의 삶을 이야기 합니다.
as well as your art . 
그리고 당신의 예술에 대해서도. 
On your most loved land.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이 땅.
We also dearly love you. 
우리 또한 당신을 사랑합니다.

You are always keeping at the top of the mountain. 
늘 산 위를 지키고 있는 당신.

2012년, 10월 한국에서  천리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7기 입주작가
 전형근  시간을 뒹구는 돌
 천리주  可思可遊  Where One Can Wander       
 
 o 일    시 : 2013.1.4 ~ 1.31
 o 개 막 식 : 2013.1.4. 16:00
 o 장    소 : 박수근미술관 제 2 기획전시실
 o 참여작가 : 전형근. 천리주
 o 전시분야 및 작품 수 : 회화 40여점. 설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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