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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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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디아스포라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

역사의 생존자이자 개척자 
자이니치, 조선족 그리고 탈북민의 이야기



전시일정
평화문화진지 (서울 도봉구 마들로 932)
2023. 12. 3 – 30 / 11시~18시 (매주 월요일 휴관)
   * 오프닝 행사: 12월 3일(일) 1pm

학술행사
- 아티스트 토크 / 12. 3(일) 2pm
  : 권효진(탈북민), 신광(조선족)
- 특별 강연 / 12. 26(화) 2pm
  : 백름 (재일조선인 미술사가), 김동근 (前인천이민사박물관 학예사)

기획/후원협력
기획: 김수정 (독립 큐레이터)
후원협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연립서가, 평화문화진지





‘기후위기’를 잇는 미술계의 새로운 화두 ‘코리안 디아스포라’,
K-컬처 붐과 만나 한인의 초국가적 활동을 조명하다.

최근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조명하는 현대미술 전시행사가 국립현대미술관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등 다양한 기관에서 개최되어 ‘기후위기’를 이은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에서는 20세기 초 멕시코로 건너간 한인 디아스포라의 경로를 따라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40여 일의 항해 끝에 멕시코 유카탄 주의 수도 메리다에 도착했던 백여 년 전의 한인 이주기를 다루고 있으며,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는 '재중동포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중국 조선족 미술을 탐구하는 세미나 개최했다. 이러한 현상은 '2023년 문예진흥기금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 선정작들에서도 유의미하게 드러나는데,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담론을 끌어내는 전시가 다수 선정되어 소개되고 있다. 

오는 12월 3일 평화문화진지에서 개최되는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 역시 한국 미술사의 한 조각이나 기록에서 누락 혹은 외면된 재일한인, 중국 조선족 그리고 탈북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옛 군사시설에서 남과 북, 중국, 일본의 민감한 ‘그것’을 들춘다.

평화문화진지에서 개최되는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은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그리고 냉전 전후 중국과 일본으로 이동된 조선족과 재일한인의 역사와 분단의 경계를 넘어 생존을 위해 탈주한 탈북민의 오늘을 담고 있다. 서울의 북쪽 끝, 대결과 분단의 상징인 옛 군사시설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평화문화진지에서, 여전히 진영대립의 갈등에 중심에 있는 조선족, 재일한인, 탈북민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이들을 둘러싼 국가 간의,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의 진영 간의 케케묵은 논쟁을 인제 그만 과거의 시간으로 박제하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소수민족을 분열주의자로 억압하는 중국 사회에서, 여전히 차별하는 일본에서, 굶주림을 피해 차라리 난민이 되고자 국경을 넘어야 하는 이들의 아픈 현실을 알고 ‘우리’의 경계를 낮추는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중국인’ 조선족, 조총련계 재일조선인, 망명자 탈북민, 한국인을 관두자는 한국인
당신은 편견을 버리고 이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은 재일한인, 중국 조선족, 탈북자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4개의 정체성을 담은 작가의 작품과 한인 이주사 아카이브를 전시한다. ‘탈북자’ 권효진의 탈북과정과 남한 정착기를 담은 동화책과 목공작품으로 전시가 시작되어, 한국식 민족주의 현상으로서 ‘태극기 집회’를 다루는 <한국인을 관두는 법>이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온 권효진의 작품과 한 공간에 배치되어 이념 추앙에 젖은 남과 북 모두 국가관을 꼬집는다. 두 번째 공간에는 조총련계 재일조선인 미술사가가 출간한 재일조선인 미술사 서적이 배치되고 책에 수록된 작품들과 미술가들의 활동을 설명하는 글과 영상이 있다. 최근 소수민족 말살 정책을 펼친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는 중국에서 조선족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온 작가들의 활동이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이 공간에 있는 두 작가들은 남과 북, 한국과 중국의 관계와 경계 속에서 조용히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시장 중앙에는 1860년대부터 시작된 한인 이민사 연대표와 디아스포라의 주요 사건 아카이브 자료가 길게 이어져 ‘재일한인, 중국 조선족, 탈북자 그리고 한국인’ 작가들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전시기획문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 
역사의 생존자이자 개척자 자이니치, 조선족 그리고 탈북민의 이야기

국내 화단에서 한반도인 이주사를 배경으로 이주 미술인의 작품과 삶, 각 지역의 이주 한반도인 공동체를 소개하며 한국 미술사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는 지속되어 왔다. <아리랑 꽃씨>(2009, 국립현대미술관)와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산을 넘어>(2018, 경기도미술관)에서는 참여작가들의 인터뷰와 아카이브를 통해 이주민으로서의 고된 삶과 개척자로서의 성과에 다양한 견해를 더하며 깊이 있는 탐색을 시도했고 코리안 디아스포라 미술의 포문을 열었다. K-컬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지금, 동북아시아 지역을 넘어 미주지역의 재외한인 사회에서 모국과 연계해 자발적으로 민족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어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연대기를 재정의하여 서술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고 있다. 이 과정의 시작은 지역사 관점의 역사를 '직시'하는 것으로 이주가 시작된 사회적 배경과 계기, 이주민 관점의 역사서술이 포함되어야 하고 지워진 우리의 반쪽의 역사도 함께 언급되어야 한다. 또한, 한반도에서 우크라이나, 가자지구로 이어진 냉전의 흐름도 그 중심에 있다. 차가운 전쟁이라 이름 붙인 국가폭력은 마치 휴화산처럼 관측 가능한 관리될 수 있는 위험처럼 대해지고 있다. 누군가의 땅에선 여전히 들끓어 삶의 터전을 집어삼키고 있는대도 말이다. 우리가 외면한 현실이, 직시하지 못하는 역사가 또 다른 이산을 낳고 세상에서 지워나가고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와 지워진 역사를 복구하는 경험이 지역사 관점으로 모두의 역사를 둘러보게 하길 바라며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에서 조선족, 자이니치 그리고 탈북민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아시아를 뒤흔든 일본 제국주의의 종식과 함께 미국과 소련의 혈맹이 무너지며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진영논리의 대립과 함께 내전을 이어 나갔고 한반도를 관통한 냉전의 칼은 패권국가의 폭력에 의해 이동된 한반도인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차별과 외면 속에 불모지로 이주한 이들은 각 진영의 이념건설에 공헌하여 소수민족의 지위를 보장받기도 하며 두 개로 나누어진 모국과 연대하였다. 

1860년 연해주 변방 개척을 위해 조선인들이 이주한 기록을 시작으로 당시 정부 (대한제국)의 첫 공식 이민사업인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과 연이어 멕시코로 1,033명을 이주시켰다. 이들은 일본인 노동시장을 대체하는 값싼 노동력이었고 조선의 패망 후 하와이 이주민은 미국으로, 멕시코 이주민은 쿠바를 거쳐 중남미 지역을 흩어졌다.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은 한인사회를 형성해 정착에 성공했고 중남미 지역 초기 이주민들은 대부분 원주민 사회에 흡수되어 그 흔적만 남아 1960년대 근대화 이후 사업목적의 한인 이주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민족정체성을 다시 학습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전후 만주와 일본으로 강제 이주한 한반도인의 이동과 정주의 배경은 전쟁이다.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생사를 기록하는 것은 결국 전쟁이라는 이름의 학살, 약탈, 국가폭력의 참상이었다. 

민족의 일원이며 국사의 피해자인 ‘이주자’ 중 재일한인 혹은 조선인인 자이니치는 동시대의 중국 조선족, 고려인과 비교해 더 많은 차별과 핍박 속에 스스로를 숨기며 민족적 정체성을 이어 나갔다. 광복 당시 조선인의 일본거주 (강제이주자)는 2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유례없는 거대 규모의 민족대이동이었다. 패전 상황의 일본과 광복 이후 내전을 이어간 남북한은 이들을 모두 환송하지도 수용하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거주국, 모국 모두의 외면으로 고통받으며 많은 수가 일본에 남을 수밖에 없었으나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하였다. 당시 남한 보다 경제 수준이 높고, 부족한 노동력에의 수요가 있던 북한과 재일조선인 문제를 처리해야 했던 일본의 이익이 만나 ‘인도적 귀환’이라는 명분으로 북송 절차가 진행되었다. 조총련을 중심으로 조국지향형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1962년까지 8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북송되었고 또 다른 이산을 낳았다. 당시 일본의 자이니치는 북측 정부를 지지하는 조총련과 남측 정부를 지지하는 민단으로 나뉘어 민족학교를 설립하는 등 민족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갔으나, 일본정부의 차별로 인한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직력 약화와 젊은 세대의 무관심으로 일본사회로 급속히 동화되어 가고 있다. 

자이니치와 달리 중국에 거주하던 한반도인, 조선족은 중국 사회주의 건립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으며 소수민족으로 자리잡아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설립하였다. 중국으로의 한반도인 이주는 구한말부터 가시화 되었으나 그 역사는 더 앞서있다. 1860년대 조선의 흉년이 이어져 간도지역을 개간하기 위해 본격적 이주가 시작되어 초기 한반도인 사회가 형성되었고, 1910년 일제통치가 시작되자 독립운동가들이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치고자 북간도 지역으로 이주하며 합류되었다. 연해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은 일본, 미국으로 이주한 동포들의 지원을 받아 상실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주도하였고 임시정부 설립의 기반이 되었다. 일제에 밀려 고향을 떠나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한 한반도인 부락에 일제의 대륙침략으로 또 한번 대이동이 일어났다. 만주국 건설과 식량기지 건설을 위해 강제징용된 한반도인 인구는 16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중국 내 한반도인 인구는 두배 이상 증가하였다. 해방당시 만주에 거주하는 한반도인 인구는 230만 명에 달했고 이 중 약 100명에 인구가 귀환했다. 해방 이후 중국에서는 내전이 발발했고 잔류한 한반도인은 초기 조선족 사회에 합류하여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국공내전 당시 조선족은 소수민족의 존립을 지지하는 공산당 편에 서서, 조선족을 차별하여 귀국을 종용한 국민당에 맞서 신중국 건설에 크게 공헌하였다. 하지만 승리한 공산당 과도한 이념운동의 폐해로 소수민족인 조선족은 분열주의자로 몰려 핍박을 받았고 한반도로의 역이주를 선택했다. 당시에만 해도 북한이 중국보다 경제 상황이 좋았고 이념적 공감대를 가진 북한으로 가면 시민권을 즉시 얻을 수 있던 조선족들 다수가 문화대혁명 전까지 북한으로 귀국했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로 연변지역의 조선족은 중국의 대도시와 한국으로 대거 이동하여 조선족 자치구의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고 그 자리를 한족이 채우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조선족이 한족으로 흡수되어 소멸되어 가는 것이 아닌 국외로 조선족 사회가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과 경제적 파트너로서 협력관계를 구축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족의 진출은 모국인 한국을 넘어 일본, 미국 등지에도 조선족 동포타운을 형성하며 지역적 조선족에서 글로벌 조선족으로 변화하였고, 디아스포라에서 초국가주의로 전환되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또 다른 모국인 북한에서 보이는 디아스포라 현상은 기아로 국경을 넘어 탈주한 난민, 탈북민이다. 국내에서는 탈북민 혹은 월남귀순자로 불리는 이들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남한보다 경제상황이 좋았던 1970년대까지 탈북자는 정치적 망명이 주를 이루었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경제난을 피해 식량을 구하러 온 생존형 탈북이 대부분이었고 탈북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후 김정일 정권시기 (2000~2011)에는 나아지지 않는 경제상황과 한류의 영향으로 연간 3,000명의 대규모 인구가 중국 국경을 넘어 대륙을 횡단해 한국과 외교관계가 있는 제 3국 (비사회주의국가)으로 건너가 난민의 지휘를 획득한다. 이들은 대부분 난민 수용소에서 한국 국적을 인정받아 남한으로 오지만 일부는 미국 등 제3의 국가로 망명해 정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2년 이후 그간 탈북을 묵인해온 중국 공안의 대대적인 단속강화로 탈북인구는 급격히 줄었고 그 과정은 더 험난해졌다. 이렇게 탈북한 이주민들은 남한에 정착하여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의 탈북을 돕는 연계형 탈북이 탈북인구를 급격히 증가시켰고 북한 내 탈북희망자의 양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전후 탈북은 국경지역민의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탈주라면, 김정은 정권 출범 시기부터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탈북의 목표와 목적이 뚜렷한 이민형 탈북 혹은 유학 탈북이 나타났고 탈북의 계층, 동기 또한 다양해졌다. 가족 단위의 탈북은 남한 사회내 탈북민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시켰고 빠른 적응과 정착을 도왔다. 현재 한국에 거주 중인 탈북민은 33,000여 명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비인도적 탈북과정과 북한의 탈북자 처형, 인신매매 등 인권문제가 불거지며 북한과 함께 강제북송을 하는 중국에까지 국제적 비난이 이어졌고 탈북과정을 넘어 정착 과정에서 탈북민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어려움까지 조명되어 우리 사회에 탈북민의 권익에 대한 고민을 안겼다. 복잡한 국제관계까지 얽힌 가장 위험한 이주 탈북의 끝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사회적 보호와 포용이 아닌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관제시위 동원 등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된 사례도 보고돼 탈북문제가 이념의 쟁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반성도 요구된다. 어쩌면 냉전체제의 최대 피해자인 탈북민은 이주와 함께 이념의 충돌을 경험하며 이중잣대의 자기붕괴라는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탈북민의 정착과 적응을 위한 정책의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고려인이라 불리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지역과 러시아에 정주한 한반도인 역시 중국, 일본 지역의 강제이주자와 같이 스탈린 정권의 한반도인 이주 정책으로 이동되어 조선족의 역사와 비슷한 전개를 보인다. 유럽지역의 대표적 이주인 독일 이민은 한국 정부가 1960년대 광부와 간호사의 파견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당시 서독은 경제성장과 함께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고, 우리는 외화부족과 실업의 대책으로 광부, 간호사, 조선기술자 등 많은 인력들을 파견하였다. 그 외 호주, 해외입양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지만 본 글에서는 자이니치, 조선족, 탈북민을 주로 다뤘다. 최근의 이주는 대부분 사업, 유학을 목적으로 체류하는 것으로 삶의 질을 위한 흡인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본 전시에서는 배출요인에 인한 이주에 중점을 두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이주 경로와 경위, 정착의 과정을 조선족, 자이니치, 탈북민의 주체적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를 직시하고 이들의 역사와 중첩되는 통합적 지역사 서술의 의의와 가능성을 논하고자 한다.

조선 말기 하와이와 멕시코에서는 노동자로, 일제강점기 만주와 일본에는 농민과 징용군 혹은 독립투사로, 근대 이후에는 미주, 유럽, 호주 등지로 유학, 경제적 이민으로 퍼져나간 한반도인은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며 현지 사회에 뿌리내리고 모국과 긴밀한 연대를 통해 지역적 소수민족이 아닌 탈지역 초국가적 활동을 보이고 있다. 소수이며 경계인으로, 약자로 규정하여 편협한 시선으로 그들을 말하는 한국사에 대한 반박으로 시작된 본 전시를 통해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이루고 한 사회의 소수민족이자 주요 구성원으로서 강인하고 적극적인 삶을 꾸려나간, 생존자이자 개척자인 조선족, 자이니치, 탈북민의 역사에 박수를 보낸다. 

*자이니치, 조선족, 고려인의 역사와 중첩되는 통합적 지역사를 기술을 위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 '한인' 혹은 '조선인'으로 구분되는 정체성을 통합하여 '한반도인'이라 표기함.


김수정 (독립 큐레이터, b. 1982)
김수정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로 코리안 디아스포라 외 한국행위미술 연구와 아카이빙이 주요 전시 기획 분야이다. 2016 제3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큐레이터, 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며, 2014 아마도 전시기획상을 수상한 바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주제의 대표 전시로는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평화문화진지, 2023), <9817711:동북아시아 지역사와 시대정신>(샨시성미술관, 중국, 2015-2016), <제3의 국적>(아마도 예술공간, 2014)이 있다.





참여작가, 작품 소개

목수 권효진의 또 다른 이름 '탈북자'

엘리트 당 간부의 위치에서 정치범, 탈북자로의 정체성과 삶의 변화를 경험한 권효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와 인권 현황을 알린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2014)의 삽화를 통해서이다. 수용소 복역 후 2008년 탈북을 강행, 2009년 남한으로 입국하였고 COI보고서의 참담한 수용소 복역기를 담은 그림을 발표한 시점으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오늘 권효진은 탈북 이후 남한에서의 적응 과정 중 겪은 이념의 내적 갈등과 목수 권효진으로 살기 위한 도전 캐나다로의 이주를 담은 과정적 아카이브이며, 자유인 권효진의 일대기를 담은 동화책을 발표한다. 난민에서 자유인으로, 절망의 기록에서 희망의 그림으로 변주하는 이곳, 여행자 권효진의 방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권효진 동화 '저는 행복한 여행자로 살겠습니다.' 삽화, A4용지에 먹 사용, 2023



‘한국인’이라는 가상의 공동체, 안건형의 '한국인을 관두는 법'

〈한국인을 관두는 법〉은 한국식 민족주의 현상으로서 ‘태극기 집회’를 다루면서, 이의 역사적 연원을 추적하여, 동시대 한국인의 삶을 묘사한다. 영상의 나레이션 대본집 ‘출세의 소리- 기회주의 반도총연합 중앙위원회’는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시절 권력자를 칭송하는 달콤한 말들을 늘어놓았던 ‘기회주의자’- 권력자를 위한 립서비스로 이득을 쟁취한 자칭 예술의 수호자와 석학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주 보는 스크린 양쪽 면에서 각각 상영되는 영상의 한 스크린은 공공의 재산을 이용해 자기 치장을 한 권력자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가재산 수탈 현장을, 다른 한 스크린은 그러한 정권이 민족주의를 드높이기 위해 건립한 유관순, 이순신, 강감찬 등의 동상을 비춘다. 이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에서 주창되었던 ‘민족주의’, ‘애국심’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1919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100여 년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개개인들이 자신의 사고체계와 현재 자신이 가진 욕망들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한국인을 관두는 법>은 그 지점에서 한국 사회를 지배한 국가 이데올로기와 우리 사회에 무의식적으로 흐르고 있는 동일한 유형의 자본주의적 욕망들에서 탈주하는 법에 대하여 돌려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을 관두는 법, 2채널 영상, 120분, 2018




신광과 조선족, 중국, 한민족의 삼각관계

현대미술가 신광은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으로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학업과 작가 활동을 위해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거주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 출입국 사무소에서 시작된 이 경험은 두 개의 문화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소속되기 힘든 자신의 다중적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작업을 전개하게 했다. 그의 이주에 따른 문화적 정체성 변화를 난방 시스템의 변화로 은유하는 <이사와 이주>는 그가 태어난 연변의 집부터 현재 서울의 집까지, 그동안 이사와 이주를 했던 집의 난방시스템과 일상을 기록한 사진,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본 전시를 통해 발표하는 신작 <Change>, <무→유→무→유→무>는 거주지 이동에 따른 정체성 변화의 과정적 경험을 넘어 '조선족' 신광으로서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어필해, 지역적 소수민족에서 초국가적 조선족으로 변모하는 조선족처럼, 다중적 경계인에서 조선족 미술가 신광으로 단단해져가고 있음을 보인다.





이사와 이주, 디지털프린트, 가변크기, 2012~현재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62
연립서가 + 백름, 노유니아, 정성희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62>는 해방 후 약 15년간 펼친 ‘자이니치조센진’이라고 불렸고, 스스로를 ‘재일조선인’이라 불렀던 미술가들의 표현 활동과 생활의 기록이다. 1962년 발행된 『재일조선미술가화집』으로 시작한 미술사가 백름의 연구는 액자와 캔버스에 담긴 유화뿐만 아니라 판화, 삽화, 표지화, 만화, 무대미술, 그리고 소수자의 언어를 지키며 끈질기게 펴냈던 신문 기사와 팸플릿을 넘나든다. 그 결과 해방,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4.24 한신교육투쟁, 귀국운동, 4.19 혁명 등 한반도와 일본의 격동 한가운데서 분단과 억압을 극복하고자 했던 자이니치 미술가들의 조형적 연대 활동을 또렷이 확인시켜 준다.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62 (백름 지음. 노유니아·정성희 옮김), 연립서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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