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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순 전 : 花畵六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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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후 구상회화의 1세대 원로 여류화가로서 60년을 기념하는 개인전. 작업실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과 정원에 핀 들꽃, 장미와 라일락 등을 그린 신작 40여 점을 선보임.
자연의 빛이 있는 풍경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용인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은 한쪽 벽면이 온통 창으로 마감되어 있다. 그 창으로 앞산이 미끄러지듯 다가온다. 사계절의 다채로운 변화를 비롯해 하루 동안의 일기상황, 외부의 풍경 등을 투명한 거울처럼 비춰주는 그 창을 바라보면서 이경순씨는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창이 화폭이 되고 화폭이 창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작가는 그 사이에서 그림을 그린다. 오랫동안 자연을 그려온 작가에게 있어 작업실 주변의 환경은 새삼 자연에 대한 관찰과 그 경이로운 변화 및 생명력에 대한 외경심을 더욱 깊게 해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용인 작업실로 옮겨오면서부터는 창을 중심으로 실내풍경과 자연풍경이 함께 겹쳐있는 풍경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물론 여전히 장미와 야생화만을 단독으로 그리고 있기도 하지만 도자기와 화병, 소반과 궤, 그리고 완자창이나 골동과 과일 등이 이렇게 저렇게 모여 이른바 ‘관계의 미학’ 아래 조율되고 있는 것이 큰 변화이자 특징이다. 창호 문 사이로 밖의 자연이 스스럼없이 들어와 있거나 환하게 밝아오는 자연의 빛과 온기가 화선지 창으로 흠뻑 스며드는 장면이 손에 잡힐 것 같다. 실내에 위치한 화병이나 백자, 신라 토기 등은 소반이나 궤위에 놓여있고 그 안에는 대개 장미, 버들강아지와 각종 야생화가 소박하게 꽂혀있다. 민화와 책거리 그림 속 꽃과 기물이 다시 환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창을 경계로 창 이쪽과 저쪽의 공간은 한 화면 안에서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 실내에서 실외를 바라보고 실외가 실내로 거침없이 스며드는 그 접점이 작가의 그림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데 이는 그림의 방법론에 대한 새로운 모색과 한국인들이 지닌 전통적인 자연관조와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인 오랜 지혜를 새삼 반추하게 한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점들이 1950년대 이래 추구한 이른바 국전스타일의 자연주의 구상화풍의 그림에서 벗어나 새로운 면모를 도모하게 만든 동인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장미, 야생화를 이전 방식으로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들로 여전히 함께 한 쌍을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두드러진 변화는 실내와 실외를 한 화면에 공존시키고 전체적으로 평면화, 양식화시킨 방법론에 있다. 원근이 지워진 화면에는 구상적인 요소와 비구상적인 요소가 겹쳐있고 이는 마치 민화의 책거리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은 평면적인 색채의 배치를 연상시켜 주는 화면구성을 떠올려준다. 화면 안은 여러 면의 작은 화면으로 다시 분할되고 그것들은 기하적인 선들의 조율 속에 안정감 있게 자리하고 있다. 반면 그 직선으로 마감된 윤곽선 안의 작은 색 면 안은 색채를 균질하게 얹힌 게 아니라 여러 자취를 머금은 변화를 주어 단조로울 수 있는 평면성에 은은한 파격을 주고 있다. 특히나 완자창으로 스며들어 오는 은은하고 한하게 비쳐 들어오는 빛의 벅참을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창호 문에서 보듯 우리 선조들은 밖의 세계를 자신의 실내공간으로 자연스레 끌어들였다. 한국의 문, 창이란 날카롭게 분리되고 차단된 경계가 아니라 상호침투하고 스며들고 일체가 되는 그런 공간개념 속에 태어났다. 안과 밖의 트임과 넘나듦은 다름 아니라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를 도모하면서 살고자 했던 순리의 소산이다.




방안 가득 자연의 기운과 태양을 넉넉히 받아들이고 밤이면 달빛 역시 안으로 흡입해내고 나아가 달 항아리의 표면에 달빛을 놓아두려고 했던 것 등은 놀라운 지혜와 마음의 소산들이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집과 가구, 도자기와 기물 모두가 그렇게 자연과의 유기적 삶에 대한 친연성이란 측면에서 탄생한 소박하고 아름답고 더없이 편안한 것들이다. 그런 인식과 사유, 마음의 한 편린들을 이 그림 안에서 새삼 만나고 있다.




이경순씨는 그 선조들의 지혜와 마음을 새삼 깨달아 이를 그림 안으로 불러 들였다. 사대부의 사랑방이나 전통적인 가옥구조가 지닌 품격, 옛 선비들의 간소하고 절제된 미감과 목가구와 백자, 궤와 기물 등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생동하는 밖의 자연과 일치시키려는 의지가 두드러지게 감지되는 매우 독특한 화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림의 모색을 팔순에 가까운 나이에 성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놀라울 뿐이다. 그 연세까지 건강하게, 매일같이 작업 한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자신의 작업양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방법론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마냥 경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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