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황부용 Healing Graphism
| 2011.3.19-3.31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 |
힐링 그래피즘 전에 부쳐
長江 박옥생 | 미술평론,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움바르토 에코(Umberto Eco)는 추상적인 대상을 가리키기 위해 약정적으로 사용하는 간단한 형태의 그림형태(점, 선, 직선, 곡선)를 기호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 도시문명에서 빠질 수 없이 등장하는 이러한 지시기호들, 간략하게 형태를 압축시키고 의미를 부여한 명징한 형상들은 분명코 회화의 기원이자 인간 사고의 조형적 핵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기호는 언어인 것이다. 인간은 세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정교화 된 기호 즉, 이미지로써 사물을 기억하고 구조화 한다고 한다.
이는 이미지가 문자에 선행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정교한 기호와 상징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미지의 삶과 죽음은 플라톤에서부터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회화의 발전과 논의의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이미지에 인류가 축척해 온 선험적인 세계가 투영되거나 형이상학적이고 비가시적인 세계가 투영되어 고도의 상징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마르치아 엘리아데(Marcea Eliade)가 이야기하는 상징이 신성으로 다시 예술로 승화되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종교미술의 정교 화된 상징성이나, 민화와 같은 유추나 은유 같은 문학적인 의미들의 체계적인 정리나 구조화에서 볼 수 있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황부용은 모더니즘의 주제라 할 수 있는 기호에 관한 새로운 회화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힐링 그래피즘(Healing Graphism)이란 용어를 만들어냄으로써, 오랜 시간 상업 디자이너로써의 고민과 문제들을 회화적, 서술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의 회화는 자연(나뭇잎)과 인간이 도상적으로 결합하거나 이탈하는 방식이나 자연(나뭇잎)과 자연(새)이 현실을 뛰어넘는 세계로 교합하고 있다. 자라나는 나무는 인간의 신체를 닮아 있거나 인간이 나뭇잎인지, 나뭇잎이 인간인지 두 개의 주제는 호환된다.
그의 나뭇잎은 종류와 상징성이 다양하다. 기독교의 도상성이 강한 종려나무, 동양의 유교의 높은 학문적 이상을 상징하는 은행나무와 같은 잎사귀를 그림으로써, 하나의 상징적이고 단순화된 기호를 연출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힐링 그래피즘은 이러한 종교적, 문화적 상징성이 강한 물질들을 조형화함으로써 마치, 민화가 벽사와 부귀, 영화, 장생과 같은 기복을 빌었던 구조적이고 상징적인 기호이자 회화였던 것처럼 그가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힐링 그래피즘 작품들 또한 종교적, 역사적, 문화적, 정신적 기원을 담은 회화라 하겠다.
사실, 후기 산업사회에 있어서 인간의 화두(話頭)는 인간 본연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기물인 인간이 이제야 깨달은 자성의 목소리인 것이다. 웰빙(Wellbeing), 세로토닌(serotonin), 아프리카, 식물성, 아바타와 같은 판타지 이 모두는 작금에 일고 있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류의 평안과 안락을 꿈꾸는 원시사회로의 회귀, 물질문명에 병든 인간의 치유에 관한 언어들이다.
황부용의 힐링 그래피즘은 화면으로부터 오는, 감상으로부터 오는 회화적 치유와는 일정한 거리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치유는 그가 구현하는 상징성 속에서 건져 올리는 인간의 염원을 품은 신비한 만다라(Mandala) 나 얀트라(Yantra)와 같은 성격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푸른 잎사귀들은 젊은 생의 기운이 약동하고 인간을 저 먼 세계의 휴식으로 끌고 들어가는,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는 깊고 아득한 색을 품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황부용 작가가 정교한 상징체계 속에 녹여내고 있는 나뭇잎과 회화적 어법이 버무려진 힐링 그래피즘의 모습인 것이다. |2011.2
힐링 그래피즘
Healing Graphism artist | 황부용
그래피즘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위키피디아에 겨우 그 언급이 있을 정도다. 그래피즘이란 한마디로 구상적인 상징 형태로 인간의 원초적인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피즘의 역사는 기원전 약 30,000년부터라고 한다. 그것은 발생 당시부터 사물의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었다.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에 대한 추상조형이었다. 실물의 묘사가 아닌 상징적인 변환으로서 문서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나는 왜 오랜 세월 원초적인 그래피즘에 주목해왔는가? 인간의 진보가 반드시 종교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전깃불을 환하게 밝힌다고 해서 사람 마음속의 두려움까지 쫓아내 주는 것은 아닌 것이다. 흔히들 예술은 시대정신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 발표한 나의 작품들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된 2010년대 한국인들 고뇌의 한 단면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풍요하다고 하는 이 시대, 그러나 세계최고의 자살율과 높은 이혼율, 도처에 넘쳐나는 청년실업과 끊이지 않는 성범죄들은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한다.
기독교에서는 찬양의 치유효과를 강조한다. 찬양이 상한 심령들을 치유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믿음이다. 열정적인 찬양을 통해 성도들은 은혜를 받는다. 마음의 상처와 원망이 치유되고, 쓴 뿌리가 제거되며, 분노가 가라앉고, 사악한 충동이 사라지는 놀라운 인생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편, 부적은 종이에 글씨ㆍ그림ㆍ기호 등을 그린 것으로 재앙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주술적 도구이다.
기원은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바위나 동굴에 해ㆍ달ㆍ짐승ㆍ새ㆍ사람 등 주술적인 암벽화를 그린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겠다. 부적은 승려ㆍ역술가ㆍ무당들이 만든다. 최근에는 전국의 사찰 등에서 많은 숫자의 달마도가 제작되어 불교신자 등의 가정에 소장되어 부적의 역할을 한다고도 한다. 나의 치유를 위한 그래피즘 작품에 동원된 실루엣 기법, 상징적이고 기호화 된 반면영상들은 주제 이외의 것들을 동원하지 않아 마치 심벌이나 트레이드마크처럼 단순명쾌하다. 그래서 힘이 있다.
행복한 사람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가 많지만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이다. 좌절을 경험한 수험생들, 인간관계의 덫에 걸린 사람들이나 병마와 싸우거나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은 물론 축복과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들, 천지와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살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힘과 용기, 지혜와 명철, 부활과 치유를 확신할 믿음이 필요하다. 나의 치유를 위한 그래피즘 작품들은 정서적인 면에서 그러한 믿음을 도와주는 기능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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