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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식 : 그리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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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식 : 그리움의 기억
2018-04-17 ~ 2018-04-29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관(홍문관 2층)


전 시 명  문우식 - 그리움의 기억
전시기간 2018.04.17(화) ~ 04.29(일)
오 프 닝  2018.04.17(화) 오후 5시
전시장소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관(홍문관2층)

전시기획 문소연 
전시보조 김다원
사    진 문진웅
디 자 인 문수경
후    원 문채지


전시 내용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점에 있는 文友植의 1950~60년대 대표 작품으로 당대의 미술사적 시간을 돌이켜보고, 수채화 에스키스, 유화, 판화, 한국 초기 그래픽 포스터의 작품과 더불어 신문 삽화, 단행본 표지·삽화, 로고 디자인 등의 작업을 통해 남다른 활동을 한 문우식의 그리움의 날들을 작품으로 기억하는 전시에 의미를 둔다.



少女 있는 工房, 1957, 106×160.5cm, 캔버스에 유채, 제1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




한국 현대미술사의 또 다른 우회로 : 문우식의 1950~60년대 회화

김이순(홍익대학교 교수)

문우식(1932~2010)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자주 거명되는 작가다. 일찍이 1950년대에 《4인전》(1956)과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전(1957)에 참여했으며, 조선일보 주최 제1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1957)과 ‘신상회’의 창립전(1962)에도 출품한 바 있다. 이렇듯 다른 작가들에 비해 앞선 행보를 보였음에도, 문우식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유족들의 노력 덕분에 이번 전시회에서 그의 1950~60년대 회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작품들은 한 개인사를 넘어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귀중한 사료다. …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문우식은 전통에 얽매이거나 구속받기를 거부하고 인습에 반항하면서 새로운 미술을 창작하려고 했던 작가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철저한 조형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동시대 앵포르멜의 조형언어, 즉 즉흥적이고 비정형적인 조형언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현재 한국 현대미술사의 계보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좌) 聖堂 가는 길, 1957, 129.5×97cm, 캔버스에 유채, 제1회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전
우) 나와 少女, 1957, 127×62cm, 캔버스에 유채, 제1회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전



엉뎅이를 자랑하는 말(馬), 1959, 91×91cm, 캔버스에 유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국제자유미술전


한국 현대미술사 연구자들이 ‘현대미협-60년미술가협회/벽전-악튀엘’의 계보로 이어지는, 앵포르멜 미술가들의 시위성이 강한 태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사 서술이 단선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귀 기울인다면, 이번 문우식의 1950~60년대 작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측면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전시라고 하겠다.



석기시대의 유물, 1962, 105.5×105.5cm, 캔버스에 유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좌) 石器時代의 大氣, 1962, 151.5×115.5cm, 캔버스에 유채, 제1회 신상전
우) 思潮, 1962, 80.5×60cm, 캔버스에 유채, 제1회 신상전




문우식 선생님의 그래픽 포스터

백금남(성균관 대학교 예술대학 명예교수)

… 일러스트레이션을 흔히 순수예술 영역의 그림과 비교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은 디자인 범주에 넣고 그림은 회화 범주에 넣습니다만, 오늘날에는 그 경계가 무미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그 범주를 자유롭게 오고 간 작가입니다. 좋은 일러스트레이션은 그 이미지와 메시지가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강하게 기억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새로운 감각의 일러스트레이션, 참신한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 회화적 요소를 포스터에서 소화해낸 일러스트레이션을 구가했습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많은 이야깃거리를 찾게 했습니다. 요즘 일상에서 중요시하는 스토리텔링을 선생님은 당시부터 중요시한 것입니다.


    
좌) 白嶺의 招待, 1965, 102×60.5cm, 종이에 수채
우) 서울, 1965, 102×60.5cm, 종이에 수채



작품에 들어가는 레터링도 일반적으로 사용한 고딕체나 명조체보다 선생님이 직접 쓴 손 글씨를 애용했습니다. 화판 작업도 남달라서 합판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화판이 아니라, 동양화를 표구하듯 창살 모양의 틀을 짠 위에 종이를 배접하는 방법으로 제작했습니다. 작품의 규격 또한 일반적인 B1 크기가 아니라 국전지 규격을 애용했습니다.


    
좌) 仁川港, 1966, 99×63cm, 종이에 수채
우) 釜山, 1966, 99×63cm, 종이에 수채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 때 진정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고,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게 됩니다. 선생님의 포스터는 20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들어선 산업사회 이전에 창의적이고 특별하게 제작한 작품입니다. 이런 포스터를 보는 것은 선생님께 배우면서 동시대를 함께했던 저희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포스터의 세계를 폭넓고 풍성하게 해주었으며, 한국의 포스터 디자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역량 있는 작품으로 새롭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좌) 대관령, 1968, 97×64cm, 종이에 수채
우) 雪家, 1969, 97×63cm, 종이에 수채



작가 약력



仙岩 文友植
(1932~2010)

문우식은 천안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1950년 한국전쟁 전까지 남관미술연구소에서 수학했으며, 1952년 부산 피난시절 홍대미술학부에 입학해 이종우·김환기의 지도를 받았다.
환도 후 서울 장안동 홍대미술학부에서 열린 1954년 1회 《홍익미술전》에서 <돌아온 아버지>로 학부장상을 수상했고, 《대한미협전》에서 <풍경>으로 협회장상을 수상했다. 졸업 후 마음이 통하는 畵友들과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을 준비 중에 1956년 《4인전》으로 첫데뷰전을 했다.
1957년 현대미술가 협회 창립전을 명동 미국공보원에서 협회대표로 10점의 작품을 발표했고, 아세아재단에서 후원하는 작가로 선정되어 물감과 캔버스를 후원받았다. 《자유미술초대전》, 《현대작가초대미술전》(조선일보 주최)에 6회까지 참여했고, 1958년 우리나라 최초 해외전인 뉴욕 월드하우스갤러리 《한국현대미술전》에 <Still Mill No.1>을 전시했다.
1962년 창립한 신상회의 창립멤버로 로고와 리플렛, 현수막,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1967년까지 추상작품을 전시했으며 공모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홍익대 공예학부 교수로 60년대 초부터 《대한산업미술가협회전》에 그래픽 포스터를 전시했다.

1956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1979 홍익대학교 교수 역임.

상훈사항

1971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서훈
1958 대한민국 아시아반공미술전 공보실장상 수상 
1954 대한민국 미술협회전 협회장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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