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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현: 기억의 시선전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19-07-10 ~ 2019-07-23

  • 참여작가

    강태현

  • 전시 장소

    갤러리고트빈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42-867-6510

  • 홈페이지

    http://www.instagram.com/goatbean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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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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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뷰어
강태현, sguardo(l), 110x73cm, Lenticular


강태현: 기억의 시선
Kang Taehyun Solo Exhibition
2019. 07. 10 ~ 2019. 07. 23
갤러리고트빈







강태현, Installation View


기억의 시선, 작가의 렌티큘러 사진 작품내에 영원한 회상

지오반니 보베끼


강태현 작가는 대전 목원대학교 조소과 졸업 이후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 미술원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자신의 예술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렌티큘러 프린팅으로 한 독특한 사진 기술을 활용하였다, 작가는 사진이란 존재를 활용해 그의 작품 세계관과 철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억의 시선/영원한 회상을 기반으로 그만의 예술 작품으로 소화 한다.

현대의 사진들과 동일한 모습의 과거를 같이 이어주는 렌티큘러의 놀라운 오버레이 작업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오드리 햅번과 니콜라 스타제티 그리고 안토니오 안노따의 사진이 있으며 이 작품들 속에는 영원한 회상을 나타내는 시간의 거리가 가장 잘나타났다.

그 외, 작가의 실험적인 3D 렌티큘러 작품들은 일상 속의 사람들을 나타내고 있으며 니콜라 스타제띠 2017, 오르비에토 2018 작품에 항상 표현되는 시공간 속 다이나믹한 변화는 사진기의 한 클릭으로 멈춘 죽은 삶의 한 모습이 아닌 끝없는 흐름의 영원한 회상을 나타내고 있다.

작가의 작품들은 지나간 시간에 향하지 않고 미래를 예감하는 현재에 집중하는데 이는 사진기 속 넘어로 본, 미래로 향하는 상상의 씨앗인 움직임의 기억을 실험적 표현을 통해 가능했다.






나와 관계된 것들에 대한 시선: 세상을 재해석하는 매개로써의 사진

홍경한: 미술평론가

강태현 작가의 사진작업에 등장하는 기법인 렌티큘러(Lenticular)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영상이 보이도록 한 것으로, 화폐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또는 아이들 장난감, 명함 등에 주로 사용되어 왔다. 지금은 일부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적인 조형 기법으로 자리 잡았지만 사실 그 시작은 미술 외부에 있었던 셈이다.

작가는 자신이 촬영한 사진에 렌티큘러를 적용한다. 그리하면 시점에 따라 정적인 이미지가 동적인 이미지로 입체 변환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사진에서 무거운 것들이 가볍고 재치 있게 변화하며, 자신이 보았던 것과 사진으로 찍힌 것 사이의 차이와, 기억의 불일치 등이 하나의 기법 내에 모두 녹여낼 수 있다.






강태현, sguardo(llI), 61x110cm, Lenticular



강태현, sguardo, 110x73cm, Lenticular



강태현의 렌티큘러는 순간을 담는 사진의 영역에서 탈피한 방법이자 개인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재해석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효과도 작지 않다. 하지만 그가 이 기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기법이 아니라 ‘메시지’이다.

그는 자신의 작가노트에 “렌티큘러를 이용한 사진 작업의 주제는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 하는 것과 나를 보는 시선이 두려운 나 자신이다.”라며 “작품을 통해 상대방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 싶은 나를 표현 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결국 그에게 현재의 작업은 관계의 매개, 소통을 위한 적극적 매체인 셈이다.

주제에 따라 화면에 안착하는 것들은 이국적이지만 일상적이기도 한 거리나 자연풍경, 인물 등이다. 자연의 경우 정지된 화상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장면들이 그의 3D입체에 의해 보다 화려해지고 역동적으로 변모한다.

이 가운데 인물은 눈에 띈다. 단정한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인 익명의 인물들은 때로 관능과 열정을 함유한 한 예술가의 예술적 원천을 유추토록 하는 신비로운 분위기로 나타나고, 어떤 경우엔 마치 애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찬란하면서도 인간스러운 회화를 보듯 자연광이 들어오는 공간에 앉아 응시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선택에 의해 피사체로 제시된 인물 중에는 시공을 관통하는 예술가도 있다. 어쩌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예술가들, 삶과 예술의 통합을 추구하는 환상주의자이기도 한 예술가들의 젊은 날과 노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이 하나의 프레임 내에서 유동한다. 그리고 우린 그 작품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틈을 보고 사진 속 인물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정체성을 말하는 작가의 오늘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의 규칙을 넘어선 예술가들과 다양한 장소에 등장하는 흥미롭고 재미있기까지 한 각각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표면의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못하나 영혼의 미와 그 향기는 세기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동일하게 옅은 미소를 띤 인물들은 따뜻한 정서마저 느끼게 한다. 이는 아마도 작가 자신의 시선 혹은 내적 지향성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여운을 전달받을 수 있는 배경에는 각 인물들이 지닌 고유한 영혼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실제의 그들과 밀접하게 조우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배어 있다. 이는 사전에 철저하게 각 인물을 연구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촬영 시 강태현은 상대의 작품을 예민하게 접한다. 인터뷰를 하기 전 그의 지난 궤적을 정독하고, 자신과 또 다른 삶이지만 동일한 삶을 살아오기도 한 작가를 만나기 전 해당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를 선행한다. 그리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셔터를 눌렀고, 때문에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언제나 공감의 대상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그에게 인물은 단순한 피사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 다가설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작가의 내면을 옮기는 순수한 초상에 무게가 있다. 나아가 그의 행위는 나와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텃밭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강태현, Installation View




그렇지만 강태현이 처음부터 렌티큘러 작업에 손을 댄 것은 아니었다. 그와의 대화에 의하면 “처음에는 대리석이 좋아 대리석 조각을 배우러 이탈리아 까라라 아카데미를 입학을 했다.” 하나, 입학 후 대리석을 이용한 작업에선 ‘대리석’이라는 재료에 대한 압박감이 생겼다.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먼저 정해 놓고 작업을 하고 대리석만 사용해서 작업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그것이다.

그게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정해진 틀에 묶인 상황에서 예술적 자유를 추구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한정된 재료와 기법으로 발굴할 수 있는 이미지는 고착되며, 고착의 습관은 사고의 협소함을 정착시킨다. 그래서인지 강태현 또한 작업에 점점 흥미를 잃었다고 말한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재료의 제한성, 다시 말해 “작품으로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재료에 내가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후 강태현은 메시지를 우선하여 재료와 기법을 찾는 방향으로 우회했다. 이어 그가 선택한 것은 사진이고 렌티큘러이다. 작가는 이 작업을 하면서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감상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오해가 있다. 관람객이 그의 사진을 보며 흥미를 보이는 건 렌티큘러라는 기법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식 전환’이다.

인식 전환은 고정적 시선에 균열을 만든다. 일반적으론 사진이니 찰나의 장면이 놓이거나 연출되어 정지된 화상을 연상하지만 그의 사진 앞에선 기존 사진개념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 눈길을 둔다. 자극을 받고 요동치는 마음을 읽는다.

그러나 이 또한 관람의 목적과는 일정한 거리감이 있다. 관람은 ‘보다’에 국한될 수 있으나, 그의 작업은 세계 내 사물의 존재 의미를 지각화하고 대상에 부여된 관념의 문제를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담아내어 고 있다는 데 방점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강태현 작업에 있어 중요하게 거론될 요소이자, 관람객들이 진정으로 수용하는 부분이다.

더구나 재현(再現)을 통해 존재의 흔적과 실체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음은 문장이나 구두로 표현 불가능한 세계이다. 그것은 아주 깊고 깊어 현실이 더는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거나, 그 비현실적임으로 인해 되레 현실성을 돋게 하는 순연과 맞닿는다. 강태현의 작업들이 환상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강태현의 작업은 재료에 대한 거부감을 지워 낸 자리에 새롭게 싹 튼 조형이지만, 그 결과 뒤에는 존재의 흔적과 실체의 본질에 접근하거나 침투할 수 있는 ‘교량’(bridge)으로 위치한다 해도 무리는 없다. 그 다리를 관통하는 이들은 기존 형식을 전복함으로써 만들어진 이미지들과 만날 수 있으며, 강태현이 제안하는 새로운 시각적 감흥을 체감할 수 있다.

작가에게도 오늘의 작업은 유의미한 지점이 있다. 조각을 전공했기에 당연히 조각을 해야 한다는 한정성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시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그렇고, 렌티큘러라는 (어쩌면)낯선 기법과 처음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고민’ 역시 그의 작업밀도를 더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용기와 고민 덕분에 보다 많은 이들이 선물 같은 ‘설렘’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그의 몇몇 작품에서 다소 아쉬운 건 자칫 장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부 자연풍경에서 엿보이는 지나칠 정도의 외적 아름다움은 관람자를 시각에 의존하도록 요구할 뿐 사유의 세계로 안내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거론하자면, <Campocecina>를 비롯해 <Castello di Neuschwanstein> 등의 작품은 마치 관광엽서를 마주한 기분이 들게 하는데, <sguardo> 연작이나, <Nicola Stagetti> 시리즈, <Orvieto> 등과는 차이가 있다.



강태현, Untitled 1, Lenticular

동시대미술은 무언가를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세계를 연계하여 무엇을 자각하는가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떤 측면에서 다름이 유효한지 알 수 있을 것이며, 그 앎은 곧 유의해야할 부분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그의 인물작업이나 유머러스한 사진작업들은 위 기술한 염려를 상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대중적인 취향과 예술성의 간극을 새로운 장르와 표현으로 극복한 접점에서 절제되고 실험적인 형식을 통해 드러내고 있기에 그러하다. 물론 지금처럼 매체에 대한 연구를 조금 더 지속한다면 작가 스스로 밝힌 재료의 ‘부담감’에서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잇을 것이다. 동시대미술의 다양한 결을 심화적으로 마주할 수만 있다면 “작품을 통해 상대방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 싶은 나.” 또한 보다 원만하게 일궈질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례해 작업의 성과 역시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갤러리고트빈 Gallery Goat Bean
대전 유성구 엑스포로 131 TJB방송국 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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