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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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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Collective전

  • 전시분류

    단체

  • 전시기간

    2019-11-14 ~ 2019-12-03

  • 참여작가

    권유경, 김채원, 박정민, 오승언, 윤지수, 임한솔, 최향유, 허왕정

  • 전시 장소

    이미정갤러리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41-854-5345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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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유경_!+!=?_91.5x214cm_Spray on Printing Paper_2019

권유경은 ‘기독교미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기독교미술에 기 또는 ㄱ, ―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한다. 이는 이미 분류되어진, 고정된 의미의 기독교미술이 진짜 그것에 향해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과 같다. 

 흔히 어떠한 것의 정의는 절대적인 고정과 소속을 안정적이고 긍정으로 보며, 유동적이고 유랑하는 것들은 부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미 시대에 뒤쳐진 분류 방식, 특정 이미지로 형성된 틀과 테두리 속에 표현되어지는 기독교미술이 안정적이거나 긍정으로만 느껴지진 않는다. 이에 작가는 어쩌면 한정적인 기독교미술의 이미지와 지난 느낌표에 물음표를 던지고, 그 물음에 대한 답에도 계속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 김채원_파쇄4_50.8x40.6cm_사진_2019


김채원은 중세에는 중세미술이 있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르네상스미술이 있었다. 또한 2019년도의 미술과 그 이후의 미술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그 현장에서, 현재의 관점으로 말하고자 한다. 작가는 2018년도부터 한 기독교 단체 내에서 파생된 집단 간의 대립을 아카이브하면서 조사한 자료를 축적해 나가고 있다.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는 변환기를 통해 다른 언어로 변환되고 새로운 이미지와 문자를 만들어낸다. 변형된 이미지는 아무도 해석할 수 없는 미지의 이미지로서 완성되는데 마지막으로 완성된 미지의 이미지는 철저하게 숨겨짐과 동시에 파쇄 된 종이 쪼가리로 전락한다. 이렇게 전락한 데이터베이스는 날짜, 시간, 일주일 정도 차이 나는 무수히 많은 시간들의 산물로서 작가는 누적된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사회적 움직임을 프레임 안에 가두고자 한다. 숨기고, 파쇄하고, 가두고, 때로는 50.8x40.6cm 만하게.

.※ 파쇄: 깨뜨려 부숨, 적대적인 세력이나 현상을 여지없이 없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박정민_Fox_72.7x60.6cm_Acrylic Paint, Charcoal_2019


박정민은 현시점에서 기독교미술은 관객과 잘 소통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미술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에 대한 궁금증을 야기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C.A ≠ C.A를 통해 찾아 나가보고자 한다.






▲ 오승언_Prayer_43.18x30.48cm_C-Print, Diasec_2019


오승언은 의류의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을 나타내는 면천의 부분을 제거하고 재봉선만 남긴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는 화려한 외면을 이용하여 감추려한 우리들의 앙상한 내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이어 이번 작업에는 성경 속 “흰옷”을 통해 현재 기독교인들의 믿음이 없는, 행위만 남아버린 모습들을 나타낸다.







▲윤지수,_로뎀나무, HALLELUJAH, 나_45.5x37.9cm_Acrylic on Canvas,   Wrapper, Charcoal, Tape, 2019



윤지수는 우리의 삶에 ‘기독교’를 개입시킬 때 나타나는 신앙심, 무관심, 혐오감 등등, ‘긍정’ 혹은 ‘부정’ 아니면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감정들에 대한 걱정은 뒤로 제쳐두고 예술을 앞세워 기독교라는 쉽사리 꺼내 보이기 어려운 주제들 그리고 한정적으로 기독교를 바라보아야했던 시각들을 예술이라는 개체를 이용해 과감하고 다양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C.A COLLECTIVE를 통해 만들어 보고자 한다.






▲임한솔_오늘 저녁 뭐 먹을까?_72.7x60.6cm, Acrylic on Canvas_2019


임한솔 - ‘차이’의 다양성보다는 소위 ‘먹힐’만한 것들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즉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자본의 논리에 끌려가는 세태, 이렇듯 욕망의 근저에는 개인의 가치(기독교적 신념)가 아닌 사회적 무의식이 존재한다. 

 저 지평선 너머에 분명 어떤 해결책이 있을 것 이라는 기대로, 우리는 언제나 ‘저기’를 동경하지만, 우리가 딛고 설 수 있는 공간은 지평선이 아니라 늘 ‘여기’이다. ‘나의 일상, 나의 현재, 나의 지금’을 이루고 있는 이 사회 구조 안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피조물일까, 아니면 구조물일까.

 작가는 기독교인이라 칭하는 ‘크리스찬’으로서 직접적으로 기독교적인 상징에 치우치기보다, ‘크리스찬’으로서 살아가는 작가의 일상, 혹은 사회적 유기체로서의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며 탐구하고 방황하는 모든것을 사회 구조안에서 느끼는 기독교적 정체성의 괴리감을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한다.







▲최향유_에스컬레이터_4:17_영상_2019


최향유는 시와 분 초 단위로 수천의 의미와 수만의 관계가 형성되는 오늘날 현대사회 속에서 기독교는 어떤 방향을 향해 가야하는가? 지난 역사에 의해 정해진 틀 안에 낡아져있는 것은 아닌가? 세계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작가는 이러한 물음을 비장소를 통해 전개시킨다. '장소가 아닌 장소' 기억이 머무르는 것이 아닌 통과하는 것이 목적인 이 비장소를 작가의 무의미한 행위, 의미 없는 시선을 통해 기존의 관념에 의한 일상의 보편적인 장소가 아닌 작가 개인의 새로운 장소로 만든다. 이러한 시선으로 형성된 작품은 장소의 의미가 아닌 무의미함을 갖는다. 이는 단순한 공허한 것이 아닌 텅 빔으로 인한 가능성의 의미를 제시한다.

 작가는 이 가능성 안에 기존의 관념에 의해 형성되기를 거절하고 타인의 비교를 통한 기독교 미술이 아닌 그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허왕정_지금의 드로잉_21x15cm x 12ea, 주보에 펜과 연필, 2017-2019


허왕정은 기독교 미술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삶의 현장을 나타내는 오브제 위에 그려내는 드로잉으로 답한다. 기독교 미술이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격적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기본(基本)’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생활에 대한 인정과 이해는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기본이 되며, ‘그린다’는 행위의 기본인 드로잉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작업을 풍부하게 하는 근간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드로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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