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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갤러리의 문턱, 표현의 자유, 사회적 파장

강수미

사회 현실과 미술 간에 그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금 또는 경계선은 이미 항상 강력한 법칙처럼 존재하면서도 매우 자주 필요에 따라 지워지거나 유명무실한 것 취급을 받는다. 이를테면 ‘예술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을 때, ‘현실 사회/미술’의 영역적 경계는 너무나 선명하고 강고한 것으로 부각된다. 반대로 ‘미술의 대중화’나 ‘팝아트의 미덕’을 설파할 때, 설혹 유미주의나 모더니즘 미술이 그 금을 설정했다손 치더라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처럼 얘기된다.

‘미술 내부자’라 할 수 있는 내가 보기에도 가끔은 이해할 수 없거나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어떤 작가가 비판적 문제의식으로 사회를 향한 발언이 담긴 작품(업)을 하고, 그에 상응하여 사회적 논란과 파장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해당 작가가 미술계 공간 안으로 몸을 숨길 때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충동에 이끌려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일단 문제제기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작품이 아니라면(사실 사회 비판적 미술은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표현 충동에 따를 수만도 없다), 이러한 대처는 조금 아귀가 안 맞는다. 만약 ‘예술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의 피켓으로 방어하거나 자신은 그저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자’했을 뿐이라는 변명의 벽 뒤로 물러선다면, 그 작가는 ‘무늬만 비판적’이라는 혹자의 매도도 감내해야 할 지 모른다.


최경태의 그림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례를 가지고 ‘사회적 논란에 대처하는 우리(아트 피플)의 자세’를 재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례는 2000년대 초반 미술계의 센세이셔널 사건 중 하나가 된 최경태의 <여고생>시리즈 회화이고, 다른 사례는 최근 논란이 됐다가 유야무야 흐려진 김홍석의 국제갤러리 퍼포먼스이다. 전자는 알려진 것처럼 작가가 1990년대가 저물어가던 시점에 조그만 갤러리에서 노골적으로 성적(sexual) 제스처를 취한 여고생 모델을 그린 그림을 전시했다가 행정 당국으로부터 처벌을 당한 경우이다. 이미지 표현 수위 면에서 포르노 영상에 육박할 뿐만 아니라 당시 심각한 사회 문제였던 ‘원조교제’ 문제를 비판적으로 겨냥했다는 작가의 말 자체도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관리된 ‘미술 개념과 의식’에 위협적이었던 그만큼 최경태의 미술은 미술계 외부(언론, 시민사회, 사법)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았다. 거기에 작가보다도 미술계 관계자들이 더 나서서 ‘예술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고, 그 그림들이 일그러진 사회를 모방(mimesis)함으로써 대(對) 사회 비판성과 논쟁의 미학적 힘을 획득한다고 역설했다. 오히려 당사자인 작가는 때때로 ‘나는 어린 여자애들을 좋아한다’든가 ‘그저 좋아서 그렸다’는 말로 비평가 그룹이나 미술 단체의 미적 수사학을 무위로 돌려버린 측면이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지점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작가의 솔직함이나 미술계 사람들의 방어 방식이 아니고, 그런 논란에 대처한 작가의 지구력과 책임감이다. 최경태는 사법 판결에 따라 자신의 그림들이 무더기로 소각 당하는 수모/고통을 겪으면서도, 논란이 장기화되면서 차츰 자신을 돕는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그림이 담고 있는 ‘성적 선정성과 논란의 의도’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태껏 이 작가는 그런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 물론 이런 사정에 대고 작가가 그걸 기화로 유명세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든가, ‘옳지도 좋지도 않은 주제에 집착하는 만용’일뿐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작가가 자신이 미술로 한일을 미술로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평가 받을 만하지 않은가?

김홍석의 퍼포먼스
굳이 비교하는 것 같아 안됐지만, 김홍석이 지난 4월 국제갤러리에서 ‘창녀’를 주제로 벌인 비판적 퍼포먼스는 양상이 전혀 달라 보인다. 작가는 개인전 오프닝 퍼포먼스로 전시장에 익명의 창녀로 명명된 이를 돈을 지불하고 불러다 놓고 “그 창녀를 찾는 사람에게 일금 120만원을 주는” 미술을 행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고도성장하면서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기획했다는 작가의 말에 수긍한다 하더라도, 왜 그 세태 비판이 하필 ‘창녀’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모티브로 해야 하는지, 요즘 회자되는 청와대의 ‘강금실 내각’과 같이 강력한 주체를 모티브로 해서는 안 됐던 것인지 의구심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특히 주목하는 지점은 작가가 ‘논쟁의 불씨’를 켜놓고도 실제 사회적 파장이 일자 그것을 감당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신문의 ‘문화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전시 기사가 실린 것을 불편해 하고, 인터넷 공간에서 논쟁이 일자 회피했던 것이다. 작가가 애초 전시에 입안한 개념은 사회비판적이고 논쟁적이다. 그렇다면 그 개념이 적어도 ‘예술을 위한 예술 제스처’에 그치지 않기 위해 작가는 오히려 그런 사회적 반응들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미술과 융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논쟁을 즐기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미술에 책임은 져야 했지 않았을까? 어쩐지 그 퍼포먼스에서 갤러리 관계자가 창녀를 발견했던 것은 그 사람이 ‘창녀로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고급 미술계의 화이트큐브 오프닝 파티에 낯선 ‘일반인으로 보였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강수미(1969- ) 홍익대 미학과 박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시기획 부문 올해의 예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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