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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옛 사진 속의 미시사(微視史)

윤진영

박물관에 그림을 보러 갈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진열장 속에 걸린 이 그림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느 계층, 누구의 집, 어느 공간에 걸렸던 그림일까? 그림이 전해온 내력을 알고 싶지만, 그림은 아무 말이 없다. 필자의 궁금증은 구한말의 흑백사진들에서 단서를 찾곤 한다. 당시 생활상을 찍은 사진에는 가옥의 실내에 걸렸던 그림들이 등장한다. 그 옛날 생활공간에 놓였던 사진 속의 그림들,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을까?

재미난 흑백사진 하나를 소개한다. 1906년에 촬영한 것인데, 화려한 의상에 치장을 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에는 귀족적인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진 위쪽에는 “大韓京城商業家朱公寅燮之家庭”이라 적혀 있다. 대한제국기 때 서울에서 상업가로 활동한 주인섭(朱寅燮, 1839-?)의 가족사진이라는 뜻이다. 사진의 중앙에 관복을 입고 앉은 자가 주인섭일 것이다. 그의 이름을 단서로 하나씩 추적해 들어가 보자. 그런데, 100년 전 주인섭의 신원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마지막 수단으로 신안 주씨 족보에서 그를 찾았다. 며칠을 뒤진 끝에 극적으로 찾은 족보에는 주인섭이 고위 장성급 무관을 지낸 인물로 나온다. 서양화가 주경(1905-1979)이 그의 손자이다. 그런데 왜 그를 상업가라고 했을까? 좀 더 살펴보니 주인섭은 무관직을 내려놓고 상인으로 변신하여 돈을 많이 벌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무슨 장사를 했을까? 이번에는 당시의 신문광고를 찾아보았다. 구한말에 조금 규모가 있는 장사를 한 사업가라면 신문에 광고를 실었을 수 있다. 필자의 추측이 적중했다. 정말 운 좋게도『 황성신문』 1901년 1월 20일 자 광고란에서 주인섭이 낸 광고를 찾았다. 그는 종이를 판매하는 지전(紙廛)과 서점을 경영한 상인이었다. 그의 가게는 종로 중서동 입구 파조교 건너편에 있었다.



주인섭의 가족사진



십장생도병풍, 1879년, 오리건대박물관

다음으로 필자의 시선은 사진 뒤편에 놓인 병풍 두 점에 꽂혔다. 사람들에 가려져 있어 일부분만 보이지만, 왼쪽 병풍은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로 확인된다. 그런데, 오른쪽 병풍은 무슨 그림인지 알 수가 없다. 필자는 틈나는 대로 온갖 자료를 뒤졌다. 그렇게 하길 수개월, 이번에도 극적인 행운이 따랐다. 이 그림은 다름 아닌 궁중화원의 솜씨가 발휘된 십장생병풍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사진 속의 그림 한 귀퉁이를 갖고 그것이 이 십장생 병풍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접근해 보자. 사진 속의 사람들은 병풍 좌측 상단에 서 있다. 그 부분과 십장생도의 좌측 상단을 잘라 비교하였다. 흑백사진 속 배경 그림의 윤곽과 필자가 찾은 그림의 윤곽이 거의 일치했다. 100년 전 저 빛바랜 사진 속에 놓인 그림이 바로 이 십장생 병풍이라는 것이다. 이 병풍에는 두 폭에 걸쳐 관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내용은 1879년 순종이 세자로 있을 때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극적으로 회복되었는데, 십장생 병풍은 이때 그 병을 관리했던 의원들이 세자의 완쾌를 기념하여 만들어 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창덕궁의 세자 동궁전(東宮殿)에 있어야 한다. 그런 그림이 어떻게 주인섭 가게에 매물로 나왔고, 그 집 마당에 펼쳐질 수 있었을까? 주인섭은 궁중의 주요 미술품들을 궁 밖으로 가져 나와 고가의 돈을 받고 거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마지막 의문 한 가지는 이 그림을 누가 얼마의 돈을 주고 사갔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을 추적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그림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 오리건대박물관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병풍이 거의 100여 년 만인 2013년 우리나라에 왔다. 문화재청의 보존수리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약 일 년 간의 수리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필자는 이때 자문 위원으로 참여하여 이 그림을 실견하였다. 참으로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작은 사진 속에 나온 그림을 우여곡절 끝에 찾았는데, 그 그림의 실물 앞에 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필자가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이런저런 사실을 밝혀보았다. 차근차근 추적해 들어가는 묘미가 쏠쏠하다. 한 줄의 기록이 없었다면 주인섭의 이 가족사진은 정체 미상의 사진으로 떠돌았을 것이다. 기록이 중요하다. 이처럼 한 장의 사진에는 미시적인 연구의 단서들이 겹겹이 감추어져 있다. 빛바랜 옛 사진들에서 읽어내어야 할 다양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 윤진영(1966-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 『조선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왕의 화가들』 등 지음. 한국민화학회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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