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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동아시아 미학과 현장 미술

김최은영

시대마다 새로운 개념과 명제는 항상 등장한다. 지금 세계는 동아시아의 철학과 미학에 대한 고찰이 증폭되고 있다. 논리와 이성, 단계적이며 합리라는 이름의 유럽 중심 철학과 미학은 그들의 체계에서 다루기 힘들었던 차이와 사이의 경계와 미처 조어(造語)되지 못한 채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대안을 동아시아 철학과 미학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우리는 ‘동아시아’라는 단어에 대한 어색함과 낯섦, 그리고 한문 투의 낡은 철학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동아시아 미학. 서구 미학과 마찬가지로 아주 오래된 철학을 모태로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에서 읽히는 창작자의 사유체계와 창작물에 대한 문자식 해석이다. 기본적으로 동아시아적 생각 체계는 경계 지어지지 않은 순환적 사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고, 이것과 저것의 사이,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한 것들이다. 오래된 것을 낡은 것만이 아니라 시간이 쌓인 만큼 귀하게 여긴다. 괴상한 돌덩이를, 굽은 나무를 흉물로만 보지 않는 시선이다.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들을 곁으로 치워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고하며 의미와 철학을 부여하는 것이 동아시아적 사고방식이다. 

오늘의 시각예술은 어떠한가. 논리와 정의로 무장된 사전 속 단어만으로 오늘의 시각예술을 명명할 수는 없다. 미학자와 비평가들은 예술가와 작품의 미묘한 낌새를 먼저 눈치채고 새로운 시선에 주목한다. 대상과 창작자의 생각, 캔버스 위나 돌덩이까지의 행위, 행위에 속한 노동. 그 사이사이 숨은 행간을 발견하고 그들의 속내를 미루어 짐작한다. 선험적 징후들, 차이와 사이의 개념들, 아직 조어되지 못한 감정과 이념이 오늘의 시각예술작가들 작품 속에는 늘 차고 넘친다. 이러한 창작자의 태도와 그들을 관찰하고 풀어내는 현장 미술이론가들의 사유는 앞에서 말한 동아시아 사유와 맞닿아 있다. 



이강소, 무제_75031, 1975, 닭, 횟가루, 나무, 사진,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이강소, 소멸_1973, 2018, 혼합재료, 가변크기, 사진: 갤러리현대 제공


최근 이강소의 70년대 작품이 재연된 전시는 현장 미술에서 동아시아 미학의 역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선례다. 실험성이라 풀이되어 왔던 설치와 퍼포먼스는 사실 ‘실험’이란 단어로는 해석의 역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결과가 아닌 과정과 개입이 아닌 관찰, 개체가 아닌 관계를 중시하는 작품은 작가가 설명해 온 기(氣)와 직관(直觀)이라는 키워드 없이는 해석이 불가한 동아시아적 사유이기 때문이다. 결코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의 설명글이 될 수 없다. 언어로 규정한 단위에서 벗어난 조형이고 사유다. 동시대(Contemporary)라 명명한 대부분 시각예술처럼 보편적으로 구사하는 단어나 용어가 사전 속 지시 그대로만 사용되지 않았다.

동아시아 미학의 효용은 여기에 있다. 분류할 수 없는 경계의 그것들. 조어되지 못한 가치들을 억지로 규격화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부를 수 있는 것. 규정되지 않은 동시대의 현장 미술을 유용하게 읽은 수 있는 그것. 동아시아 미학의 기능 중 우리가 다시 보아야 할 부분이다.


김최은영(1972- ) 성균관대 유학과 석사, 동 대학원 동양박사 수료. ‘En Sus-pens’(파리 베르테애투아레스갤러리, 브뤼셀 위파인아트갤러리, 2018), ‘Examining Life Through Social Realities’(워싱턴 카젠 아트센터, 2016) 등 전시기획.  『동아시아 미학과 현대시각 예술』(헥사곤, 2014), 「컨템포러리아트를 위한 동아시아 미학의 잠재적 가치」(미술문화연구, 2017) 지음. 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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