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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종(種) 다양성이 요구되는 자연과 예술

이선영

작년에 부산현대미술관 개관기념으로 추진된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의 수직 정원(Vertical Garden)을 사진으로만 접했다가 최근에 직접 볼 기회가 생겼다. 네모난 바위 표면에 도톰한 이끼가 낀 듯한, 또는 사막 같은 도시가 필요로 하는 촉촉한 초록 망토를 입은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술관 개관 전에 다소간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던 사각형 건물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건축 외장재와 달리 계절마다 다른 외관을 하고 있으니만큼, 그 누구도 그 작품을 온전히 다 봤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 수직정원


건초더미를 그리기 위해 수많은 시간적 조건을 추적했던 모네가 결국은 그 작품을 연작의 형식으로 완성할 수밖에 없었던 점, 그리고 결국에는 정원을 닮은 환경적 규모로 작품을 키워나갔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소간 늦은 방문이기는 했지만, 식물이 힘차게 초록을 향해 나아가는 계절이었으니만큼 그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인간이 시작하지만 자연이 완성하는 정원술은 그 비슷한 과정에 의해 예술과 많이 비교됐다. 거대한 구조물들을 통째로 포장하는 기법이 예술로 인정된 지 오래되었음을 생각할 때, 이 초록 식물들은 건물에 부가된 장식일 수 없다. 또 다른 식물학자 마이클 조던이 쓴 『초록 덮개』라는 책의 제목처럼, 사각 콘크리트 덩어리를 초록 덮개로 씌운 그것은 그 자체로 현대미술이다.

부산현대미술관 외에 프랑스, 일본, 미국 등지에 그의 작품이 있다. 수직 정원은 많은 이들의 협력이 있어야 건립되고 유지되고 발전하는 미술관의 생태환경을 표현하는 살아있는 예이다. 패트릭 블랑은 한국에 여러 번 방문하여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에 자리한 미술관의 생태적 환경을 연구했다. 지역의 조경학도들과 함께 완성한 그의 작품은 흔히 볼 수 있는 담쟁이덩굴 건물과도 다르다. 여러 종류의 식생이 어우러져 있어 변화무쌍한 실루엣과 풍부한 질감이 특징이다.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스크린으로도 작동하는 그것은 공중정원보다 시각적이다.

그것이 놓인 생태환경과 관계되며 동시에 종 다양성을 갖춘 식물의 면모는 미술관이 지향해야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하나의 종이 잠식한 생태계는 건강하지 못하다. ‘녹조라떼’라는 오명을 낳은 4대강의 수질오염이 그 예다.
대도시의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들이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경쟁한다면, 이 자연물 파사드는 주변환경과 최대한 유사해야 성공한다는 차이가 있다.

패트릭 블랑은 자연에 존재하는 여러 톤의 녹색으로 입체적 평면들을 채운다. 정원술은 자연의 외관뿐 아니라 자연의 과정 또한 모방할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만물의 영장이자 척도가 된 인간 주체의 타자였던 자연이 더 큰 피해를 보았다. 인간과 기계에게 길을 내어주기 위해 사라지는 큰 나무들, 낙엽 청소가 힘들다거나 떨어진 열매의 냄새나 매미 소리가 듣기 싫다고, 심지어는 좀 더 럭셔리해 보이는 유행수종으로 바꾸기 위해 함부로 베어지는 큰 나무들은 수난을 겪는다. 2000년 이상의 세월을 견뎌온 바오밥 나무들이 지구온난화로 쓰러졌다는 불길한 소식도 들린다.

흙 없이 식물이 자라는 수직 정원은 인공구조물을 새로운 대지로 삼아 모두에게 필수적인 초록 생명체를 증식시킨다. 자연이 죽어가는 시대에 자연을 호출하기 위해 기술과 자본이 투자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수직의 벽 위에 식물을 심는 에어 플랜트(Air Plants) 기술 또한 준 토목공사 급의 작업이 요구된다. 이제 자연에서 자연적인 것은 없다. 공동체의 의지이고 선택이다. 수직정원은 통상적인 수평적 정원에 비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콘크리트 숲’으로 표현되는 현대도시 속에서 자연에 할애된 몫이 부족할 때 대안이 될 수 있다. 깊은 뿌리를 내리는 대신에 표층에 넓게 퍼지는 뿌리줄기 방식은 흙으로부터 멀어지는 시대와 어울린다. 현대철학도 수목의 모델 대신에 뿌리줄기의 모델을 제안한다. 인간이 자연에 맞춰 생존해왔듯이, 자연 또한 인간과 공(共)진화할 것이다

- 이선영(1965- )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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