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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공공영역에서의 예술과 대중의 만남

이선영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7-8월경에 미술관은 미래의 미술애호가가 될 수도 있는 어린 관객들을 위한 전시가 많이 열린다. 예술과의 우연한 만남은 한 아이의 인생 여정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공교육을 무력화하며 확장되는 사교육 시장은 인생을 초창기부터 코드화하고 경쟁 사회에 걸맞은 형태로 조여가기 때문에 우연적 사건이 개입될 여지를 줄여간다. 이러한 추세에 의하면 정규적인 공부만큼이나 미술관에서의 체험 또한 상투적인 것으로 끝날 위험도 있다. 지배적 가치로 포장된 필연성에 틈을 내고 자유의 공간을 늘려나가는 것, 그렇게 해서 예술을 보편적으로 향유하게 하는 것은 소통을 꿈꾸는 미술인들의 소망이다. 평균적인 아이의 경로는 이후 지속되는 코드화된 삶의 전조가 된다. 개천에서 용 나기도 했던 이전 시대보다 자본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되는 학력이나 경력이 그 증거다. 현대미술은 점점 소수의 것이 돼가는 와중에, 어른에게도 만만치 않은 대상이 되었다. 일이나 공부시간이 아닌 자유 시간에는 골치 아픈 것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손쉬운 오락 및 여흥에 기울게 하며, 이때 가장 경쟁력 있는 것은 컴퓨터 인터페이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의 이기는 월드와이드웹(www)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유아론적 주체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감각의 교감: 오감으로 만나는 이응노 예술’ 전시포스터


어른과 아이의 합성어인 키덜트의 취향에 맞춰진 정보/상품들은 많다. 동화 속에서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동화 속 삶을 권하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의 소외가 사적 영역까지 이어진 경우다. 이때 예술은 쇼핑이나 게임 등, 대중이 흔히 선택하는 여가의 항목에 낄 수 있을까. ‘감각의 교감: 오감으로 만나는 이응노 예술’(7.16-9.29, 대전 이응노미술관)은 대중성과 예술성, 공공성이 함께하는 대안적인 전시로, 필자가 방문한 날도 많은 관객을 만났다. 과학기술 연구단지가 포진해 있는 지역의 특성상,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 자주 이루어지곤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EXP Lab, 박정선, 김중현 등의 기술지원으로 전시 작품을 공(共)감각적으로 확장 시켰다. 가령 작품 <공생공존>의 경우 이응노의 군상 시리즈 앞에서 관객이 동작을 취하면 작품 속 군상의 한 명으로 변환시켜준다. 이응노의 작품에서 군상은 하나도 겹치는 것이 없기에 엄청나게 다양한 정보가 깔려있는 셈인데, 기술은 이러한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작품 속 군상들에게서 찾아지는 나는 획일적인 집단도 모래알 같은 개인도 아닌, 다중(多衆)의 속성이 강조된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이응노가 아직 현재형 작가임을 알려준다. 이응노와 박인경의 작품들을 콜라주 한 <풍경>은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풍경이 움직인다. 여러 시공간대의 이야기가 한 화면에서 실시간으로 영화화되는 셈이다.


풍경, 인터렉티브 사운드 영상 설치 작업, 2019, 가변크기 


그 밖에 관객의 움직임으로 고양이가 생선을 먹게 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관객들의 사진 정보를 활용해 3D 출력된 상들이 함께 전시된 것 등을 체험했다. 이 모두는 이응노라는 거장의 작품이 함께 하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밀도가 높은 것만이 확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대중성에 맞춰진 상품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을 대중이 쉽게 받아들이게 하는데 과학기술은 큰 역할을 한다. 이제 그림보다도 전자기기에 더 친숙해진 세대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가의 작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미술관은 공공적이다. 이응노미술관의 경우, 미술관 옆 수장고(를 개조한 전시장)에서도 젊은 작가들의 릴레이 전시인 ‘아트 랩 대전’을 매해 열면서 미래의 이응노를 위한 자리를 함께 마련하고 있다. 대중성과 공공성, 예술성이 적절히 안배된 전시장들을 둘러보면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랑을 생각했다. 대중성과 공공성은 자유와 평등의 문제이다. 그러나 예술에는 자유로운 시장이나 첨단기술을 매개로 하는 소(유)통, 그리고 계몽이나 민주주의 같은 명분과도 다른 어떤 색다른 차원이 있다. 정량화될 수 없는 예술은 언제 그 결과를 얻을지 모르는 무한한 희생과 투자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 불가능성은 때때로 삶에 뜻밖의 선물을 준다.


- 이선영(1965- )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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