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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한국 근대미술과 근대성

박영택

근대라는 말은 동시대를 포함하여, 전통사회 붕괴 이후 새롭게 생겨난 시대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삶의 양식을 근대적인 것이라 흔히 말한다. 그 기원을 이루는, 이를 가능하게 했던 사건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 등이다. 근대적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치적 형태로서의 국민국가, 경제적 형태로서의 자본제적 시장경제를 들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왕조국가가 해체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 전통사회에서의 왕조국가는 권력을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왕의 혈통을 축으로 하며 그 권력 아래서 사는 사람은 신민으로 규정된다. 반면 국민국가는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믿으며 국가권력의 담당자란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국민을 대신해 집행하는 이가 된다. 한편 민족, 국민이 된다는 것은 순수한 혈통이나 언어, 혹은 문화적 동질성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구성원의 소속감이다. 그러니까 ‘국가가 소속원에게 부여하는 의무를 이행하고 국가의 역사를 배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동질감을 학습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서영채, 『인문학 개념정원』, p.159) 이다. 따라서 개인을 국민국가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민족주의, 국가주의라는 정신적 힘이다. 국민은 그렇게 구성되고 만들어지며 나아가 민족문화나 한국미라는 것도 기실 학습에 의해 내재화된다.



이중섭, 흰 소, 1953-54, 종이에 유채, 34.2×53cm


전통사회에서 미술은 당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종교의 지배를 받거나 그로부터 분리되어서 생각할 수 없다. 전통사회를 지탱하는 형이상학과 종교 중심주의 세계상을 반영하는 것만이 허용된다. 전통사회에서는 진리인 것만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 지배계급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절대선의 영역으로 수렴된다. 반면 근대사회에서 진선미는 분리되어 각각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지니게 된다.

아름다움의 경우 전통사회에서는 진실하고 착한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었다면 근대에 와서 미술은 아름다움이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남과 다른 독창성과 그 이전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는 데서 생겨나는 새로움에서 비롯되는 것이 되었다. 유일무이한 하나의 절대적 가치를 강제했던 전통사회가 붕괴되어 비로소 가능해진 일이다.

작가란 존재의 위상도 변했다. 이제 미술은 주체의 소산이다. 지적 능력인 이성을 지닌 한 개인의 자유가 그림을 가능하게 한다. 전통사회에서 화가란 지배계급의 이념을 도상화하는 역할에 머문다. 반면 근대의 화가는 다른 어떤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내적 능력에 따라 사고하고 판단하는 주체가 되었다.

이러한 코키토 이성, 데카르트적 이성을 지닌 주체의 출현은 근대성의 중요한 표현이 된다. 여기서 주체란 인식과 행위의 주인으로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만 근거를 확보하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 이외에 어떠한 기성적이고 외적인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반영하는 첫 미술사조가 다름아닌 낭만주의다. 이후 현대미술은 주체성에 기반한 활동이 되어 펼쳐진다. 어떤 미적 전범도 인정하지 않은 채 예술적 표현의 진수는 한 개인이 지닌 개성과 내면의 의지에 따라서만 획득되는 것이라는 것이 모토가 되었다. 그것이 근대미술이고 근대성의 본질이다. 반면 주체로서의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섬으로써 생겨난 근대성의 원리, 즉 주체의 이성과 동일성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과 전복이 근대미술/모더니즘의 뒤를 잇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이다.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다시 보는 한국근현대미술전’(4.6-8.27, 소마미술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전’을 통해 새삼 한국근대미술을 접하고 있다. 타율적인 힘에 의해 근대를 경험하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일본을 통해 서구미술을 수용하고 일본미술의 영향력 아래 잠식되었던 것이 우리 근대미술의 운명이다. 식민지 치하에서 발아한 한국근대미술은 민족국가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위협받았던, 그것이 원천적으로 부정되는 시기에 태동되었다. 이것이 한국근대미술의 딜레마고 상처다. 온전한 주체가 되어본 적이 없었던 우리근대미술의 근대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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