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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神과 像 - 붓다 로드

이상협

 2013년 다큐멘터리 <석굴암>의 프리젠터로 반년 동안 불상을 찾아다녔다. <석굴암>은 그리스, 로마부터 경주까지 불상 양식의 흐름을 살피고 인도에서 출발해 미얀마 중국 한국에 이른 불교의 전래 과정을 추적하는 ‘붓다 로드(Buddha road)’ 프로젝트였다. 불상의 출현은 기원후 1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부처의 입멸 이후 500년간 무불상 시대가 이어졌고, 마투라와 간다라 지역에서 처음으로 불상인 부처의 존상(尊像)이 만들어졌다. 이전에도 탑(스투파)이나, 금강보좌(부처가 앉았던 자리), 보리수, 사자상, 법륜 등 부처와 연관된 상징들이 불상을 대신했지만 보이지 않는 신성을 상으로 만드는 일은 암묵적 금기였다. 열반에 든 부처의 몸이란 나비가 벗은 허물에 불과하며, 부처의 가르침에서 빗겨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부처는 마지막 설법에서 ‘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다. ‘석존께서 돌아가시면 저는 어찌합니까’라는 아난다의 질문에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이라 답한다. 무불상 시대의 긴 침묵을 깨고 불상은 왜 만들어졌을까? 간다라 지역 주요 도시였던 기원전 4세기경 탁실라는 알렉산더 대왕의 점령지인 수많은 알렉산드리아 중 한 곳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살게 되면서 수많은 신을 상으로 표현하는 헬레니즘 문화가 토착 문화에 스미고, 인근 지역인 마투라와 간다라에 전도되어 자연스레 불상이 생겨난 것이다.


<고행상>


 촬영하는 6개월 동안 이름난 불상 대부분을 친견(親見)했다. 수많은 신성과 대면한 시간이었다. 방송이 나가고 ‘어떤 불상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망설임 없이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의 <고행상>이라 답했다. 고등학생 시절 세계사 교과서에서 <고행상>을 처음 보았다. 명함 1/4 만한 크기에 불과한 흑백사진에 압도당했다. 각주에는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 AD 3세기경.’이라고 적혀있었다. 훗날 어떤 일을 하든 파키스탄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오려 책상 앞에 붙여두고 오래 보았던 불상을 20여 년 만에 실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촬영 팀은 <고행상>을 담기 위해 보호 유리를 제거하고 카메라를 설치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높이 80cm 남짓 크기의 불상을 기원후 3세기에 이렇게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전례가 없는 양식의 불상이었다. 해탈을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운 끝에 와 있는 한 사람이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있었다. 육신의 고통 속에서도 가지런하게 정신을 가다듬는 선정인의 수인. 뼈대를 드러내는 몸의 구석구석을 넝쿨처럼 감아 대는 핏줄들, 움푹 팬 안와 속 눈빛이 궁금해 얼굴을 맞대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뜨지도 감지도 않은 그의 눈이 바라보는 지점이 궁금했다. 반가운 마음과 경이로움으로 고개는 저절로 숙여졌다.

 보드가야 마하보디사원에는 붓다가 정각을 이룬 보리수나무가 있다. 다시 심어진 나무라고 하나 기운이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앉았던 적이 있다. 감은 눈앞이 하얘지고 몸이 밀리는 듯한 기묘한 체험을 했다. 바람처럼 어떤 기운이 불어왔다. 눈을 떴을 때 옆에 있던 한 스님이 말했다. ‘여긴 지구의 배꼽 같은 곳입니다. 기운이 센 곳이지요’ 문득 신이 나를 지나간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었다. 특별한 장소가 주는 기분에 취해 자기감정에 고스란히 빠져들어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냐고 몇 번을 자문했지만 분명 어떤 기운이 내 안에 잠시 머물다 갔다. 신이란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불상 안에도 우리 안에도 없는 것, 단지 상(像)과 상(像) 사이에 잠시 머무는 감정, 그저 우리의 사이를 흘러 다니는 것. ‘예수는 기독교가 아니었고, 부처는 불교가 아니었다’라는 말이 있다. 불교는 부처를 믿는 종교가 아니며, 이슬람도 가톨릭도 기독교도 시작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보이는 것을 믿기 좋아하고 보이지 않는 신을 믿게 하려고 신상은 태어났을 것이다. 신상이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 믿는다. 불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시간을 거쳐 온 불상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다. 불상을 향해 이루어진 수많은 기원과 기도하는 간절한 인간의 눈빛들이 쌓여 불상엔 신성이 아로새겨진다. 시간이라는 소멸의 법안에서 만물이 죽음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갈 때 그것을 잘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신을 믿고 신상은 그 길을 펼쳐 보여준다.


- 이상협(1974-) 고려대 미술교육과 졸업. 현대문학 시 신인상 등단(2012). 현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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