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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기록해야 역사가 되고, 보존해야 아카이브가 된다

고종희

학자도 전시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미술사학자 고종희 교수 아카이브전, 발로 뛰고 가슴으로 쓰다’
전시 전경


무엇을 전시할까?
아카이브란 기록물의 수집 또는 보관소를 의미한다. 미술사학자인 나의 30여 년간의 연구 결과는 단행본, 논문, 연재 또는 기고한 수십 종의 잡지와 신문이었다. 아카이브전을 하기로 결정한 후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묻혀있던 기록물들이 집안과 연구실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탈리아 현지를 답사하며 찍은 수만 장의 사진 파일, 친필 노트, 수천 쪽에 이르는 교정지, 제자, 지인, 가족이 보낸 카드, 편지, 낯선 이들에게 받은 명함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종이 월급명세서도 나왔다.

어떻게 전시할까?
이들 자료는 어떻게 설치하느냐에 따라 잡동사니처럼 보일 수도, 한 학자의 삶을 보여주는 귀한 아카이브전이 될 수도 있었다. 설치 컨셉은 전시 제목인 ‘미술사학자 고종희 교수 아카이브전, 발로 뛰고 가슴으로 쓰다’(4.18-4.25, 한양여대 스퀘어갤러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잡았다. 



전시 오프닝, 한길사 김원호 대표 축사


제일 먼저 그동안 출판된 20여 권이 넘는 단행본으로 북트리를 만들었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쌓아 올린 책들이 한 저자의 것이라는 설명문을 읽은 관람자들의 첫 반응은 “놀랍다”와“멋있다”였다. 사실 책으로는 뭘 만들어도 멋져 보인다. 북트리는 자연스럽게 전시의 포토존이 되었다.

전시가 시작되는 첫 번째 벽에는 발로 뛴 현장 중 아름다운 해변 도시 아말피와 미켈란젤로의 생가 등 이탈리아 중, 남부 지방에서 찍은 사진들을 걸었다. 자연의 미세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사진은 출력하지 않고 사진관에서 현상했으며,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사진 크기는 대, 중, 소로 다양화했다.

이어서 내가 가장 아끼는 저서 『명화로 읽는 성인전』을 샘플로 삼아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주었다. 첫 제목을 구상한 육필 노트부터 수차례의 교정 작업, 그리고 마침내 출판된 책과 출판 이후 각 신문에서 다룬 기사들을 순서대로 배치하였다. 이를 위해 내가 평소 사용하던 대형 나무 책상 3개를 전시실로 옮겨왔으며, 연구실에 있던 책장을 옮겨와서 한쪽 벽을 학자의 서재처럼 꾸몄다. 장정과 작품이 아름다운 미술사 서적의 책장을 넘기며 시간 여유가 있는 관객은 오랫동안 머물며 책과 만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벽은 연재한 신문으로 채웠다. 1년간 연재한 두 종의 신문 기사로 구성했는데 마침 한 신문은 분홍색이어서 시각적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신문의 윗부분만 핀으로 고정해 자연스러움을 살렸더니 종이가 흩날리는 느낌이 났고 그림자로 인한 입체감도 생겨서 좋았다. 벽 아래쪽에는 드문드문 여백을 주어 답답함을 피했다. 이 벽을 마주한 관객들은 신문 기사만으로도 대형 설치작품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 밖에 수백 통의 카드와 명함, 월급명세서 등의 자료들을 색채와 모양을 고려하여 시각적 아름다움을 살려 설치했다. 이들 자료는 세월의 옷이 입혀지면서 아카이브로 재탄생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작품 설치는 미술을 하는 남편과 아들이 도왔다. 또한 개인전임에도 불구하고 미술사학자 이미경 씨가 큐레이터를 맡아 전시 서문을 써주었는가 하면, 전시작품설치부터 오픈, 진행에 이르기까지 전시 기간 내내 열정적으로 전시를 이끌어나갔다. 그동안 늘 타인의 전시나 작품에 대해 글을 쓰기만 하다가 글을 받게 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전시를 보고 난 관람객의 공통된 반응은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보관하였는가?”였다. 정작 나는 버리지만 않았을 뿐 정리도 하지 않은 채 보존만 했을 뿐이었다. 한국 미술 아카이브의 선구자인 김달진 관장께서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미술사 아카이브전의 모델이 되는 전시”

- 고종희(1961- ) 피사대학교 문학박사. 한양여대 교수.『 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여행을 떠나다』,『 명화로 읽는 성인전』 등 지음.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평전』(전 6권, 2018-19, 한길사)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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