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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제 옷을 입은 국보 1호

윤범모

드디어 남대문(본명 숭례문)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국보 1호가 시민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축하한다. 남대문은 몇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정신 나간 노인의 소행이었다 해도 방화는 국보 1호를 속수무책으로 소실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남대문 방화사건은 문화재청장의 불명예 퇴임에 일조를 했다. 국민은 국보 1호가 화염에 휩싸여 사라지는 모습을 전국 중계방송으로 주시했다. 그것은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아, 남대문! 검은 재로 남은 폐허의 남대문! 우리들의 국보 1호!(사실 나는 남대문이 국보 1호로 불려지는 것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5년간 가림막에 가려졌던 남대문, 그 사이 문화재청은 (복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복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국민 혈세 247억 원을 쏟아부었다. 사용된 나무 부재만 해도 25톤 트럭의 28대 분량이었다. 그렇게 하여 외관이 드러났고 마지막 단장으로 단청 작업을 실시했다. 문제는 단청이다. 1년 이상의 작업공정을 통해 연인원 1,500명 이상이 동원되었다. 사용된 안료는 12종으로 1,000kg이 넘었다. 그런데, 그런데, 안료가 문제였다. 전통안료의 부재는 국보 1호의 위상에 커다란 상처로 남았다. 이번 남대문 복구공사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며 자랑한 것은 바로 전통기법에의 충실이었다. 전통기법의 충실? 어허, 그것참 참담한 자랑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전통이란 말인가. 이번 남대문 단청에 사용한 물감의 대부분은 일본 수입품이었다. 붉은색의 석간주와 흰색의 호분 정도만 국산이고 대부분의 안료 공급지는 일본이었다. 그러니까 왜색으로 국보 1호를 단장한 것이다.

 

그동안 전국 도처에서 시공했던 단청공사는 무슨 물감을 사용했단 말인가. 한마디로 값싼 화학안료(페인트)를 썼다는 것. 그러니까 근래 단청을 새롭게 한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나 서울의 경복궁 등도 전통 안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오호, 통제라! 봉정사는 국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목조건축으로 국보 중의 국보이다. 게다가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그런데 이들 건축물의 단장을 싸구려 화학제품으로 마무리했다고? 화학안료는 무엇보다 천연 전통안료가 주는 품위와 깊이에서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이다.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 전통안료의 문제를 방치한 죄가 오늘 국보 1호에서 황당한 수모를 자초한 것이다. 물론 전통시대에도 단청 안료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했다. 모든 색깔을 국내 생산품으로 충당할 수 없어 그렇게 된 당연한 결과이다. 하여 적색 계열의 당주홍(唐朱紅)은 중국 수입품이어서 그와 같은 용어가 생겼다.「광해군일기」같은 것의 기록에 의하면, 당주홍은 너무 비싸 수입하기 어려우니 국산 주홍으로 대체하자는 내용도 있다. 그러니까 주토, 석간주, 황단, 뇌록, 하엽, 삼청, 이청, 석자황, 전분, 송연 등 국내산 안료 이외 당주홍, 청화, 왜주홍 등 다수의 안료 종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했다. 문제는 전통적으로 국내에서 사용했던 천연 안료까지 오늘날 그 제조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황금 만능주의 사회로 고착되면서 경쟁력 없는 전통 안료의 제조는 단절되었다. 흰색 물감 원료인 호분(胡粉) 공장의 경우, 15년 전쯤 여수에서 마지막 문을 닫았다. 특히 호분이란 용어는 전통 용어도 아니다. 정확한 표현은 조개 종류인 대합 가루를 사용했기에 합분(蛤粉)이 맞다. 옛 기록에 그렇게 나온다. 

 

한국회화는 한국의 물감으로

일본은 어떻게 천연 전통안료를 제조하면서 이웃 나라에 수출까지 하고 있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반성을 해야 한다.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 바로 그것이 해답이기 때문이다. 전통 지키기, 그것은 바로 외화 벌기의 밑천이 된다. 일본이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이라고 자랑했던 법륭사(法隆寺) 5층 목탑, 그것은 1949년 한 학자의 부주의로 소실되는 비운을 당했다. 우리의 담징이 벽화를 그렸다는 바로 그 탑이다. 현재 그 자리는 재현된 목탑이 서 있다. 타다만 숯 무더기는 그대로 옮겨 거대한 창고 속에서 보관하고 있다. 목조건물의 최대 적은 화마(火魔)이다. 낙산사의 타다만 검은 목재들은 어디에서 보관하고 있을까. 

 

법륭사 복원공사에서 일본은 전통안료 만들기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도 남대문 소실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것의 결론은 천연 안료의 복원사업이다. 색깔, 산지, 원료 등, 그 종류에 따라 광석을 채취하고 또 가공하는 ‘우리 물감 만들기’에 주력해야 한다. 일본 물감으로 그림 그리면서 그것을 과연 한국 회화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민족마다 색채의식의 고유성이 따로 있는바, 어찌 한국회화는 한국의 물감으로 그려지고 있지 않은가. 겨레그림의 기둥이라고 자랑하는 민화 분야에서조차 오늘날 국산 물감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고개를 들 면목이 없다. 미술재료학에 무심한 한국 미술가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남대문 복구와 관련하여 문화재청은 전통 안료 복원사업에 커다란 발심을 내야 할 것이다. 일제 옷을 입은 국보 1호,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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