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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제3지대의 가능성과 미술의 다양성

윤범모

노동식, 민들레 홀씨 되어


우리 미술계의 고질적인 파벌싸움, 아직도 존재할까. 파벌 가운데 두드러진 것으로 ‘출신대학’이 있다. 쉽게 말해보자. S대파와 H대파라는 말, 아직도 유효한가. 그렇다, 과거에는 이런 말을 쉽게 썼다. 예컨대 국전시절을 보자. 국전 때만 되면 이들은 ‘먹이’를 가운데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좋게 표현하면, 선의의 경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 않았다. 세월은 흘렀다. 파벌의 세력권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아니 20년 동안, 국내 미술계의 지형도는 변하기 시작했다. 국제무대의 비엔날레 같은 권위 있는 전시, 심지어 경매시장에서조차 한국작가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주류’ 대학 출신의 독과점 구도와 무관하다는 점이었다. 한국미술의 국제무대 진출 시대에서 출신 대학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외국은 작품 자체로 작가를 평가했다. 출신 대학이라는 간판으로 작가를 평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3의 대학 출신들도 국제무대에서 ‘스타’ 작가로 부상되는 ‘이변’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지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경원대 출신 임흥순 작가의 수상소식은 이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새해 벽두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 전관을 장식한 대규모의 전시, ‘제3지대’(1.14-1.24)라는 이름의 이색전시, 정말 시사하는 바 적지 않았다. 우선 참여작가 명단부터 살펴보자. 김기라, 김태헌, 노동식, 배종헌, 윤상렬, 이중근, 이환권, 조습, 진기종, 함진, 홍경택. 이들 작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들 A급의 작가는 이른바 ‘주류’와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이들은 같은 대학 출신이다. “뭐! 이들 스타가 같은 대학 출신이라고?” 미술계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그랬다. 미리 정답을 말한다면, 이들은 ‘경원대’(현재 가천대) 출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했다. 이번 전시의 특색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십인십색이다. 정치 사회의 모순을 비판 또는 풍자하는 작품부터 미니멀리즘이나 순수조형주의에 이르기까지 지향하는 세계의 색깔은 완전히 달랐다. 형식과 내용의 완벽한 차별상, 이 부분은 빛나는 대목이지 않을 수 없다. 특정 교수의 화풍에 의한 아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원 색깔’이 있다면, 그 특징은 무엇일까. 이를 지탱해 준 교육환경의 특징은 한마디로 ‘자애적(慈愛的) 방목(放牧)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미대생에게 사용해서는 안 될 금기어, 그것은 바로 ‘No!’이다. ‘안 돼!’ 이런 말은 ‘경원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이는 미대생의 창의성과 독창성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한 교육방침에 의한 결과였다. 특정 교수의 화풍이나 예술적 성향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게다가 교수와 강사진의 다양한 분포는 타 대학과 비교하여 모범적이었다. 자유분방한 교육환경, 그것은 언뜻 보아 ‘방목’과 같았지만, 그 바탕에는 사랑과 채찍이 스며있다. 이 같은 교육철학은 그대로 실기실로 연결되었다. 하여 미대 건물 전체는 그야말로 자유분방의 난투장이 되었다. 미대 실기실은 365일 24시간 완전 공개되었고, 학생들은 아예 실기실에서 살았다. 실기실은 냉난방 시설이 쉬지 않고 돌아갔다. 샤워 룸이나 세탁기와 냉장고 같은 편의시설, 심지어 개인별 공간에 침대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결투의 현장, 바로 자신과의 치열한 결투 현장이었다. 물론 싸움에서 이긴 자는 작가의 반열에 개성적인 작가로 올라설 수 있었다.

미술계의 제3지대는 가능할까. 겉으로 보아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지방대학을 비롯 좋은 작가를 배출하고 있는 대학의 숫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획일화 현상을 거부하려는 미술계의 강력한 소망이 있다. 이번 ‘제3지대’ 전시를 추진하면서, 나는 우리 미술계의 다양성을 소중한 키워드로 가슴에 안았다. 다양성은 어떻게 오는가. 학벌이고 뭐고 다 폐기하고 작품성 그 자체만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제3의 바람, 신선한 목소리로 살아남으려면, 다양성을 최우선 가치로 올리는 한국미술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학연, 지연 등 인맥과 한국 미술계와 무관한 그런 시절이 도래하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과연 제3의 바람은 불어올 것인가. 이번 ‘제3지대’ 전시는 가나인사아트센터에 이어 경기도미술관에서 개최된다(2.19-4.3). 궁극적으로, ‘제3’이니 ‘이변’이니 하는 단어의 폐기를 염원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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