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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거리서 핸드백 팔다 금융거물 된 류이첸, 아트마켓 휩쓰는 ‘차이나 수집왕’ 등극

이영란

미술품을 수집하는 슈퍼리치 가운데 중국의 류이첸(劉益謙, 1963- ) 신리이(新理益, Sunline) 그룹 회장만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도 드물다. 류이첸 회장은 최근 10년간 뉴스매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수집가다. 2014년 홍콩 소더비에서 중국 명나라 황실서 쓰던 찻잔 계향배(일명 ‘치킨 컵’)를 380억 원에 사들인 후 그 귀한 잔에 푸얼차(普洱茶)를 따라 마셔서 ‘개념 없는 사람’이란 비난을 받았는가 하면, 이듬해 뉴욕 크리스티에서는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를 미술품 경매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금액(1,972억 원)에 낙찰받자 ‘자기과시가 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류이첸·왕웨이 부부


심지어 부인 왕웨이 롱미술관 관장도 언론에 자주 등장해 무슨 작품을 샀는지 밝히곤 한다. 대다수 컬렉터가 자신들의 구매 명세와 행적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걸 꺼리는 것과 달리, 이 커플은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공개돼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걸 즐기는 듯하다.

류이첸 회장은 2015년 11월 모딜리아니 그림을 손에 넣은 뒤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서양인들이 이 그림을 샀다면 당연시했을텐데 중국인인 내가 사자 의아해한다. 세계적 미술관들이 모딜리아니 그림을 보유하고 있어 나도 샀다. 앞으로 중국인들도 이런 일급 미술품을 외국에 나가지 않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홍콩 언론에는 “그렇다. 나는 졸부다. 그러나 중국도 이제 먹고살 만해졌으니 문화적으로 세련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중학을 중퇴한 ‘가방끈 짧은 신흥부자’인 건 맞지만, 문화예술에 눈 떴으니 감안해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모딜리아니, 누워 있는 나부


이 커플은 1년에 10억 위안(약 1,700억 원)쯤은 미술품 수집을 위해 얼마든지 쓰겠다는 태도다. 왕웨이는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에게 작품구매의 상한선은 없다. 특별한 작품이라면 값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쉽게 밝히기 어려운 내용을 공개석상에서 ‘턱턱’ 노출하는 걸 보면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을 향한 이들의 열정을 유추할 수 있다.

사실 류이첸 부부의 미술품 수집은 꽤 오래됐다. 최근 몇 년간 고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바람에 유명해졌지만 1993년부터 컬렉션을 시작했으니 25년이 넘는다. 초기에는 물론 마스터피스가 아니었다. 중국의 전통서화와 각종 골동품을 수집했다. 왕웨이는 중국 신해혁명 당시 그림과 문화대혁명 시기 그림에 꽂혀 일련의 작품을 사들였다.

그러던 두 사람이 방향을 틀게 된 것은 일본과 한국의 사립미술관을 둘러보면서부터다. 새 밀레니엄 이후 일본의 여러 도시를 찾은 부부는 일본의 타이어, 화장품, 제약, 주류, 보험, 전자 등의 전문기업이 서양미술품을 사들여 프라이빗 미술관을 연 것에 주목했다. 국제성을 띄어야 관람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확인한 것이다. 이어 2010년 한국의 삼성미술관리움을 둘러보고 목표를 확고히 하게 됐다. 왕웨이는 “리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공통점도 많았다. 고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컬렉션도 유사했고, 남편이 고미술, 내가 현대미술을 수집하는 것도 흡사했다. 리움을 벤치마킹하면서 두 번째 미술관인 롱미술관 푸시(浦西)를 열게 됐다”고 밝혔다.

인구 14억 명의 중국에는 억만장자가 엄청나게 많다.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리포트는 중국에 1억 위안(167억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슈퍼리치가 9만 명(2016년 집계)에 달한다고 밝혔다. 부자들이 많다 보니 어지간한 일로는 뉴스에 오르기 어렵다. 그런데 거리에서 ‘짝퉁’ 핸드백을 팔다가 택시를 몰며 생계를 유지했던 류이첸이 오늘날 자산 14억 달러(1조 5,000억 원)의 부호가 됐다는 스토리는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자수성가 과정이 워낙 드라마틱한 나머지 ‘택시기사 출신의 거부’(The Taxi driver turned Billionaire)라는 수식어도 탄생했다. 게다가 이 억만장자가 수백억, 수천억 원짜리 그림을 연달아 사들이니 입방아에 오를 수밖에 없다.

류이첸은 상하이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학 2년 때 “학교에선 더 배울게 없다. 그 시간에 돈을 벌겠다”며 거리로 뛰쳐나와 노점상을 했고, 택시를 몰았다. 그러다 1980-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물결 속에서 국채 및 주식 투자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스스로 “내 코는 돈 냄새를 잘 맡는 특별한 코”라는 그는 2004년 자동차보험사 티안핑(Tianping)과 생명보험사 구오후아(Guohua)를 설립했다. 그리곤 2013년에 티안핑을 프랑스 보험사 AXA와 합작하면서 다시금 도약했다.

부호 반열에 오르자 류 회장은 중국의 전통수묵화와 도자기, 전각, 공예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청(Qing)대의 화려한 청화백자를 비롯해 건륭황제가 쓰던 자당 옥좌, 전통현악기인 고금, 절묘한 세공의 옥 공예품을 사들였다.
2000년대부터는 아내 왕웨이와 함께 아시아 및 서양의 근현대미술로 컬렉션의 폭을 넓혔다. 두 사람이 경매장이나 아트페어에 나타나면 애호가들은 바짝 긴장한다고 한다. 거침없이 돈을 지르는(?) 커플이 ‘내가 점찍어둔 작품을 채가는 건 아닐까’하고 애를 태운다는 것. 원하는 작품은 값이 얼마든 반드시 손에 넣고 마는 류이첸과 경매에서 경합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류이첸의 등장으로 중국미술품이 1억 위안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미술품이 1억 위안을 호가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류이첸이 2014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487억원에 매입한 티베트 불화 탕카(Thanka)


류이첸은 “이런 예술품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란 말을 자주 되뇐다. 이를테면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15세기 찻잔을 중국 도자기 경매 사상 최고가(380억 원)에 낙찰받았을 때도 그런 찬사를 터뜨렸다. 명나라 성황제 시대에 제작된 국보급 도자기이긴 했지만, 류 회장이 연신 호가를 올리는 바람에 값이 폭등했다. 이 찻잔으로 차를 마시자 대중의 비난이 들끓었는데 그는 “진품(珍品)을 수집하고 기쁜 마음에 그랬다. 원래 용도도 찻잔 아니었나?”라고 항변했다. 또 2015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명대의 괘불 ‘탕카’를 중국 예술품 사상 최고가(4,500만 달러, 493억 원)에 사들였을 당시도 “천금보다 귀한 보물”이라 했다. 그는 뉴욕소더비에서 추정가 15만 달러의 명대 불교 경전을 무려 1400만 달러(157억 원)에 낙찰받았고, 남송 시대 관요에서 빚은 청자꽃병을 160억 원에 사들이는 등 고가 예술품을 잇달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자국 내 스포트라이트론 만족 못 했는지, 요즘은 글로벌급 화제를 터뜨리고 있다. 2014년 11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모딜리아니의 <누워 있는 나부>를 1억 7,040만 달러에 사들였고, 2016년 스위스 아트바젤에서는 많은 고객이 눈독을 들였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가로 10m의 추상화를 낚아챘다. 류이첸은 리히터 작품 앞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화제를 뿌렸는데 정작 작품을 팔았던 마리안굿맨갤러리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부부는 소장품이 2,000여 점을 넘어서자 상하이에 미술관을 건립했다. 2012년에는 푸동(浦東)지구에 ‘롱뮤지엄 푸동’을, 2014년에는 푸시(浦西) 지구에 웅장한 규모의 ‘롱뮤지엄 웨스트번드’를 오픈했다. 또 2017년 5월에는 충칭지구에 세 번째 롱미술관을 개관했다. 미술관 디렉터는 아내가 맡고 있다. 류 회장은 베이징국제경매의 지분도 사들여 아트 비즈니스에 뛰어들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부부의 컬렉션 중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장다첸, 치바이스, 쩡판츠, 팡리쥔은 물론이고, 글로벌 미술계에서 유명세를 날리는 제프 쿤스, 쿠사마 야요이, 코헤이 나와의 조각과 회화가 포함돼 있다. 한국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김환기, 백남준, 박서보, 이우환, 김창열, 권기수, 박선기의 작품을 수집했다. 김환기의 <점화>와 <푸른 산>은 작가의 대표작들이다. 

중국 어디서나 마주칠법한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류이첸 회장은 “내 일생 가장 잘한 일은 아내를 만난 거고, 그다음이 예술에 빠져든 거다. 이 귀한 작품들을 중국의 어린 세대들이 보고 자라 예술적 소양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롱미술관의 전시기획이라든가 디스플레이, 운영시스템에 대해 ‘우려될 정도로 어설프다’는 지적이 있고, 컬렉션의 방향 또한 ‘브랜드화된 유명작가’에 쏠려 있는 것도 사실이나 거리에서 싸구려 핸드백을 팔던 이입지전적 부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미흡한 요소들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며 유명 작품 수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락없는 ‘차이나 수집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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