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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재벌 2세 루쉰, 옛 수도 난징(南京)에 현대미술과 건축 어우러진 ‘힐링파크’ 만들다

이영란

중국 장쑤성의 난징(南京)은 매우 유서 깊은 도시다. 서기 229년, 오(吳)의 손권이 도읍으로 정한 이래 14-15세기에는 명(明)의 수도로 중원문화를 꽃피웠다. 티베트고원서 발원한 양쯔강(長江)이 깊은 숨을 토해내는 난징에는 도시 곳곳에 유적이 즐비하다. 그러나 옛 문화는 더없이 찬란하나 살아 꿈틀대는 현대예술은 미흡한 편이다. 그런 도시에 대단히 혁신적이고, 세련된 아트복합단지가 들어서 화제다. 경제학 교수였다가 부동산 개발로 난징을 대표하는 부호가 된 루쥔(LU Jun) 시팡(四方)건설 회장과 그의 아들 루쉰(LU Xun) 시팡미술관 관장이 단지를 만든 주인공이다.



루쉰 시팡미술관 관장


일본 세토내해의 나오시마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섬이라면 루쥔-루쉰 부자(父子)의 ‘시팡미술관&파크랜드’는 그에 필적할만한 예술 여행지다. 아직 몇몇 프로젝트가 덜 끝나긴 했으나 세계적 명성의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이 지은 미술관과 호텔, 아트레지던시, 컨퍼런스센터, 장소특정적 미술이 자리를 잡고 애호가를 손짓하고 있다. 특히 2015년 영국 BBC가 ‘2014 세계의 위대한 뉴 뮤지엄8’에 시팡미술관을 포함시키면서 각국에서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루쥔-루쉰 부자는 2003년부터 10년간 1억6,400만 달러(1,740억 원)를 투입해 난징시 지앙수지역의 야산부지(46만 5,388㎡, 14만 평)에 스티븐 홀, SANAA(세지마 가즈오&니시지와 루에), 아이 웨이웨이 등에게 의뢰해 총 20동의 건축물을 지었다. 이 최신 프로젝트는 두 사람의 열정과 투혼의 결정체다. 무엇보다 부친의 혜안이 결정적이었다.

대학원 졸업 후 난징사범대 교수로 재직했던 루쥔은 1982년 장쑤성 물자국 차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이후 공직자로 승승장구했지만 1992년 돌연 사업에 뛰어들었다. 때마침 중국 전역에 불어닥친 경제개발 여파로 루쥔의 부동산 개발업은 금세 몸집을 불렸다. 곧이어 시팡문화실업(Sifang Culture Group)과 금융회사도 설립했다.

루쥔 회장은 2002년 운명적으로 난징 외곽의 야산부지를 접했다. 울창한 삼림의 라오샨 국립수목공원에 인접한 구릉지여서‘고급빌라를 지어 분양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매입했다. 그런데 한 건축가와의 만남은 그로 하여금 ‘훨씬 더 크고, 더 야심찬 프로젝트’로 방향을 틀게 했다. “그래. 이번엔 미래지향적으로 해보자”고 단안을 내린 것. 그러나 난징의 외진 산등성에 첨단 아트파크를 짓겠다는 결정은 그와 아들에게 ‘피 말리는 시간’을 가져다주며 인생을 180도로 바꿔놓았다.

부친의 돌발 결정 때문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서 나노공학을 전공하던 아들은 학업을 접고 귀국했다. 그리곤 프로젝트를 맡을 22명의 건축가를 골랐다. 2명의 프리츠커상 수상자(왕슈, SANAA)를 비롯해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아디아예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을 선정했는데 희한하게도 모두 참여의 뜻을 밝혔다. 아들 루쉰은 “최고 디자인을 꿈꾸며 정상급 건축가를 골랐는데 어쩐 일인지 모두 승락했다. 그 바람에 배가 금방 항구를 떠나게 됐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부친이 아트파크를 만들게 된 것은 사업 틈틈이 고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하며 예술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난징 지역을 대표하는 아트컬렉터였던 루쥔은 상당량의 중국 고미술품을 컬렉션했다. 사업수완이 뛰어났지만 ‘돈’이 최종목표는 아니었다. 그는 ‘돈벌이도 문화적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면 별 의미가 없다’며 오랫동안 꿈꿨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빌라 대신 복합아트파크를 선택했다. 루쥔은 “베이징, 상하이는 저만치 앞서가는데 난징은 전통만 붙들고 있었다. 나는 이곳의 좁고 답답한 시야를 확 바꿔놓고 싶었다”고 밝혔다. 난징의 풍부한 문화유산에, 새로운 현대예술이 더해질 때 가치 있고 차별화된 문화가 탄생할 것이라 본 것이다.

아들 루쉰도 “중국 사회의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이윤 극대화로 날로 메말라가는 도시인들의 숨통을 틔워줄 힐링 공간, 예술단지가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뭔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루쉰은 영국서 보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뮤지엄 및 아트파크 건립에 나섰다. 두 사람이 프랑스, 스페인, 핀란드, 멕시코, 칠레의 유명 건축가들을 난징으로 초대해 인적 없는 야산을 보여주자 모두 반색했다. 단순히 미술관만 짓는게 아니라 새로운 문화시설과 빌라, 스튜디오, 장소 특정적 미술을 구현하겠다는 계획에 매료된 것이다.

드디어 2008년부터 공사와 작품설치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 과정은 실로 험난했다. 루쉰으로선 죽을 맛이었다. 지금까지 중국 지방 도시에선 유례가 없던 프로젝트여서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난징의 시공업자는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컨셉과 디자인에 혀를 내둘렀다. 맞춤한 자재도 없고, 기법 등도 유별나니 진척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공기가 자꾸 지연되자 건축가들은 실현을 의심했다. 6m 크기의 큐브형 건물 6채를 각각 독립적이되, 연결되도록 한 <Six Rooms>라는 건축을 제안했던 아이웨이웨이는 “프로젝트가 너무 지연돼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완성하더라”고 전했다.



시팡미술관


애초 계획보다 두 배 이상의 공기와 상당한 예산이 추가된 끝에 시팡미술관과 시팡파크랜드는 2013년 11월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경사면 꼭대기에 자리 잡은 시팡미술관이다. 미국의 스타 건축가 스티븐 홀이 디자인한 미술관은 파크 전체는 물론, 난징시까지 조망할 수 있다. 특히 공중에 붕 떠 있는 형태의 2층 전시장은 파격 그 자체다. 시팡미술관을 ‘위대한 뮤지엄’으로 선정한 BBC는 “서구의 관습을 거부하고, 난징의 다양한 경관을 볼 수 있도록 한 시도(발코니)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지하와 1층의 넓은 전시장과는 별개로, ‘ㄷ’자형의 플로팅(Floating) 전시장을 하늘에 둥실 떠 있도록 한 것에 점수를 준 것. 이는 기능적으론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신설 미술관으로써 특화된 디자인임은 틀림없다.

시팡미술관에서는 개관 이래 흥미로운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The Garden of Diversion’이라는 타이틀로 열렸던 오프닝 전시에는 안젤름 키퍼, 뤼크 튀이만, 마를렌 뒤마 등과 중국 작가 장엔리, 쩌 춘야의 작품이 전시됐다. 현실과 이상, 혼돈과 평화를 다룬 이 전시는 국제미술계에서도 이슈가 됐다. 2015년에는 루쉰 관장이 수집한 300점의 현대미술품 중 50점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렸다. 독일을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 작가 양혜규의 대규모 설치작품을 비롯해 마우리치오 카텔란, 무라카미 다카시, 폴챤의 작품이 선보여졌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해체한 욘 보의 입체작품과 윌리엄 켄트리지의 영상설치작업도 나왔는데 이는 루쉰이 가장 아끼는 컬렉션이다.



William Kentridge, The Refusal of Time. 시팡미술관


시팡파크랜드 또한 내로라하는 건축 거장이 만든 혁신적 디자인의 아트레지던시, 전망대 등이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페인의 건축 듀오 만실라, 뚜농의 ‘FO-SHOU(스튜디오)’, 데이비드 아디아예의 ‘라이트 박스’ 등 20동의 건물은 현대건축의 다양성과 다중성, 일시성과 해체성을 엿보게 한다. 아울러 쉬전, 유타카 소네 등이 시행한 대지미술과 설치미술 등 장소 특정적 작업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팡파크랜드는 14만 평에 이르는 너른 부지와 20동에 달하는 건축물 관리에 예상을 뛰어넘는 비용이 투입돼 전망이 밝지 않다. 65개의 객실을 갖춘 부티크호텔도 접근성이 낮아 수익은 언감생심이다. 총면적 914평의 미술관 또한 국제적 수준의 기획전과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함은 마찬가지다. 사립미술관에 대한 행정당국의 지원이 전혀 없는 중국 상황에서 이 독보적인 랜드마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루쉰 관장은 “아직은 아버지가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지만 자체적인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밝히고 있다. 싱그런 수풀과 호수 속 시팡예술단지가 해법을 잘 찾아 오래오래 롱런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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