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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먹통, 목수의 촉각이 새겨진 도구

박영택

먹통이란 긴 재목을 마름질 할 때 곧고 바르게 줄을 치기 위한 도구로써 집을 짓는 대목들과 목가구를 제작하는 소목들이 사용했다. 대목의 경우 우선적으로 건축작업에서 나무를 짜 맞춰야 하는 짜임의 목재를 마름질 할 때, 직선의 긴 먹줄을 긋거나 수직을 잡기 위해서 먹통을 기본도구로 사용했다. 먹통은 우선 네모난 통 속에 실을 감는 고패를 넣고 그 앞의 둥근 통에는 솜을 넣고 먹을 갈아 부어서 실이 솜을 통해 나오는 동안 먹이 묻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고패란 실을 감기 위해 만든 둥근 실패를 말한다. 감는 실이 밖으로 삐져나가지 못하도록 고패 가운데에는 홈이 파져있고 고패를 고정시키는 틀이 마련한 후 그 틀에 구멍을 뚫어 고패 중심에 박은 못을 끼워 바퀴처럼 돌게 했고 덧붙여 손잡이 달린 축이 얹혀진다. 실 끝에는 구멍보다 굵은 나무조각을 달아 실이 먹통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황망한 경우를 방지했다. 동시에 그 조각을 혼자서 줄을 칠 때 나무 저편에 걸어두고 잡아당겨 탁 하고 줄을 탁하니 퉁기기에 편리한 역할을 했다. 먹통을 이용하는 방식은 우선 줄을 긋기 시작하는 원점에 못을 박고 먹줄을 꽂은 후 먹통을 잡아가며 빠져나온 실을 팽팽하게 늘인 다음 줄을 튕긴다. 실에 묻었던 먹이 나무에 검은 줄을 긋고 나면 측면의 손잡이를 돌려 실을 감아 들인다. 목수가 줄을 튕기는 힘과 압력에 의해 환한 나무 살결에 새까만 먹물의 줄이 또렷하게 남는다. 튕겨나간 먹줄이 그런 절묘한 선 하나를 견고하게 긋는다.

이런 방법론을 원용해 추상화를 만든 이가 마산 출신의 추상화가 김한(1938-2008)이다. 그의 작품은 현재 충무로 전철역 내부벽화로 설치되어 있다. 이런 먹통은 목수들이 직접 만들어 썼다. 먹통을 만드는데 적당한 나무란 단단해야 하고 말랐을 때와 젖었을 때의 부피 차이나 무게 차이가 별반 나지 않아야 하며 트지 말고 나무결이 고와야 한단다. 또한 마디가 있어서도 안되고 더구나 옹이가 있는 것은 더더욱 피할 일이다. 그런 나무가 구해지면 오랜 세월 말린 후에 제작했다 한다. 뭐하나 신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지극 정성을 다하며 자연의 순리에 따르지 않는 법이 없다. 목수 신영훈에 의하면 옛날 목수들은 스승에게 먹통을 물려받은 자가 도대목(都大木)의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먹통의 체통은 막중했고 먹통 다루기를 신주 모시듯 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이 먹통을 썼지만 통상 대목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해서인지 이들이 사용하는 먹통이 가장 우람하고 다부지다. 이들이 썼던 먹통은 대부분 거북이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왜 거북이의 형상이 으뜸이었을까? 옛사람들이 집을 짓거나 목가구를 만든 다는 것은 나무와 나무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못을 치지 않고 나무끼리 끼워 맞추는 바시미 구조는 일종의 암수 결합이요 음양의 이치이자 우주자연의 순리를 재연하는 일이다. 거북이는 무엇보다도 그 생김새가 위는 하늘처럼 둥글고, 아래는 땅처럼 편편하여 우주의 축도와 같다고 보았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이자 장수를 상징하며 지상과 해상을 왕래하는 특성으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으며 거북의 등딱지를 태워 그 균열의 형상으로 점을 치는 도구(귀복龜卜)인 동시에 남근의 상징이었다. 또한 등의 무늬는 사귀를 물리치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거북형상은 길상의 상징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모든 도구들이 그러하지만 이 먹통 또한 목수들이 일할 때마다 더듬어 사용했던 촉각적인 기물이다. 그러니 오랜 세월 길이들어 자신의 손/신체, 감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해서 먹통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을 사용했었을 이의 노동의 흔적과 손의 놀림이 선연하게 부감된다. 

먹통, 조선시대후기


그동안 여러 개의 먹통을 보았지만 선뜻 구입할 생각은 없었다.그러다 이 먹통을 만났다. 이미 눈 밝은 이의 소장품이었는데 어찌어찌 내 것이 되었다. 분명 거북이먹통이지만 그 모든 세부적 형상을 단순화해서 거의 직선으로만 마감된 먹통이다. 각진 선과 힘있는 조형이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 전체적인 모습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동양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을 형상화한 구조에서 연유한다. 단순하고 묵직한 형태감과 짙고 어두운 색감, 그만한 시간의 힘이 엉켜있는 매혹적인 먹통이다. 어디서 이만한 조각품을 볼 수 있을까? 실용적인 먹통이자 동시에 그것 자체로 완벽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이 먹통은 이제 어느 대목이나 소목의 손에서 풀려나 제 소임을 다했지만 이제는 내 눈에 벅차게 들어와 놀라운 미감을 발산하는 존재로 거듭 환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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