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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성수역에 자리한 어느 연장 사진

박영택

서울 시내의 전철역마다 일종의 장식물들이 들어차 있다. 온갖 선전용 문구나 포스터, 광고판의 홍수 속에서 그것들은 겨우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 벽화이다. 

타일로 이루어진 것들이고 상당수는 해당 역의 이름과 관련된 이미지들이다. 물론 그 의미를 모르겠는 것이 더 많다. 그 전철역들을 죄다 가보진 못했지만 적지 않은 역사 내부의 다양한 조형물 혹은 미술작품들을 접해왔다. 그런데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충무로에 설치된(타일벽화)마산 출신의 서양화가 김한의 추상회화(먹통에서 먹줄을 튕겨 이룬 선과 그 힘에 의해 분출된 물감의 자취로 이루어진 듯한 추상화)나 어느 역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람의 두상을 연속으로 그려나간 최진욱의 작품, 그리고 시청역사 벽면에 부착된 인물들과 성완경 선생이 오래전에 설치했던 작품 등이 그나마 인상적인 편이다. 그 나머지는 다소 끔찍한 편이다. 차라리 지하철 역사의 벽면을 그대로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성수역에 자리한 기둥


사실 우리 주변에 의무적으로, 강제적으로 설치된 대부분의 조형물이란 것들은 아름다움 내지 이미지에 대해 생각거리를 안겨주거나 그 주변 공간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거나 아니면 해당 장소에 대한 의미를 공유하게 하는 차원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나로서는 그런 것들은 공공미술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성과는 무관한 시각적 공해를 일으키는 것들, 조형적으로 너무 조악한 것들이 과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너무도 무성의하게 제작되어 완강하게 군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곤혹스럽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수역에서 기둥에 부착된 사진을 보았다. 아크릴 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사진뿐만 아니라 여러 수공업을 하는 그 지역의 특성을 살려 만든 일련의 진열장들이 전시되고 있는 역사 내부는 비교적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특히나 커다란 기둥의 표면을 채우고 있는 이 사진은 수제화 장인들이 평생 썼던 일련의 도구, 연장만을 단출하게 촬영한 사진이다. 그것을 크게 확대해 부착해놓은 것이다. 지금 이 성수동 거리의 어느 곳은 수제화 가게, 공장들이 모여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보존, 기념되고 있다.

이른바 성수동 수제화 골목이 그곳이다. 예전에는 염창동과 명동에 수제화 가게들이 몰려있었는데 비교적 싼 임대료를 찾기 위해 이곳 성수동에 몰려들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현재 약 500여 개의 가게가 모여 있단다. 그곳을 가면 수제화 거리를 알리는 지도, 쉼터, 그리고 커다란 빨간 하이힐 조형물과 브론즈로 된 동상 및 ‘성수수제화희망플랫폼’이란 쓴 문자조각(마치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조각을 모방한)들이 있는데 너무 유치하고 조악하게 만들어졌다. 부디 그런 것 없이 소박하고 세련되게 이 골목을 기념할 수는 없을까? 하여간 문재인 대통령이 이곳에서 구두를 맞춰 신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모든 것이 간편하게 제작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저렴하고 획일적으로 대량생산되는 경제적 시스템이 압도되는 오늘날의 삶에서 실용적 차원의 물건을 손수 만들고 또 그것의 가치를 알고 구입하고 사용하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급속히 사라져가는 문화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제화 거리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알리는 성수역 안에 위치한 저 오래된 연장을 찍은 사진은 그 어떤 조형물보다도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시각이미지이자 랜드마크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이름 없는 노동자, 장인이 저 연장과 함께 평생을 좁고 밀폐된 작업실에 앉아 가죽을 자르고 박음질을 하며 누군가의 발에 맞는 구두를 평생 제작해 왔을 것이다. 말 없는 연장들은 그런 사연, 역사를 스스로 발화하면서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이미 오래되고 낡은, 시간의 결을 흠뻑 껴안고 있는 연장만으로도 이 성수동 수제화의 거리는 충분히 기념되고 있다. 지하철 역사의 기둥에 붙어나가면서 보행자의 육체와 시선에 부담 없이 개입하면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여타의 지하철 역사의 어느 조형물보다도 이 연장을 찍은 사진을 두른 기둥 하나가 나에게는 훨씬 매력적인 시각이미지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공공미술로서 성격을 또한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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