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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노재운과 바벨의 도서관

김유연

노재운 작가는 인터넷 공간에서 부유하는 영화의 한 장면,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 그래픽, 위성사진을 수집, 문헌학적 깊이로 분석하고 예술 철학적 방식으로 웹-영화를 제작한다. 작가에게 인터넷 공간은 재료를 제공하는 무한 저장소이자 작업공간이며, 언제 어디서든 머물다 갈 수 있는 그러나 시장규칙을 거부하는 신성한 장소를 (비말라키 vimalaki.net)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할리우드 영화의 기승전결 내러티브 방식을 거부하고 한 컷의 이미지 혹은 단막 영상을 재배치하여, 그 내면에 잠재해있는 인식을 사유할 수 있도록 메타 내러티브(Meta Narrative)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그의 초기작품, 영화 <운명의 손>(1954)에서 인용한 <얼음여왕(Casta Diva)>은 분단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50년대 한국 여성의 이미지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비극의 여주인공이 총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의 순간을 줌인(Zoom-in) 방식으로 다가감으로써 픽셀은 분열되고 진동(흔들림)은 관객으로 하여금 불안정한 순간을 극대화한다. 화면 간극에 나타난 블랙아웃은 한국 역사에 대한 망각을 암시하기도 한다. 작가는 ‘한순간’을 극히 미세한 움직임으로 확대화함으로서 시간의 영원성을 가능케 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감각적인 세계로 유도하는 흡인력이 있다.



노재운, 보편영화 Universal Cinema 스틸컷, 2017, 영상, 6분 35초


인간으로 여기는 로봇이 결국 자신이 로봇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스스로 폭발하게 된다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회화로 표현한 <임포스터>(Impostor, 2015) 작품에서도 그 시간성을 고찰할 수 있다. 기계의 인식론적 혼란과 파괴의 순간이 바로 해탈의 경지로 여기는 불교의 시간성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고 하겠다.

2005년 기획한 ‘DMZ _2005’전에 소개했던 <세 개의 대역>(3 Stand In: 과거, 현재, 미래, 2005)은 남북경계의 중심에 위치한 애기봉 전망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북한, 남한 그리고 미국마을의 세 풍경이 교차된다. 그 풍경은 나레이터의 기계음과 중첩되어, 물아일체의 조합을 이루는데, 환상과 현실, 진실과 허상,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게 된다. 한국 전쟁, 사회 정치 역사를 은유적으로 다룬 또 다른 작품은 웹-영화 <총알을 물어라>(Bite the Bullets! 2008-)이다. 12 Scenes로 구성된 웹 출판물(Web Publication)로 표적의 주체와 객체에 대한 불안정한 시각 체재와 그 구조에 주목한다. 작가는 뛰어난 상상력과 분석력으로 웹상의 이미지, 영상, 음악, 언어의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를 고도로 함축화하여 그들과 우리, 너와 나의 상대평가를 짚어보고 관객이 절대적 가치를 고찰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작업해 나간다.

오프라인에서도 산수화 <뇌사경>, <수상한 승객들>, <지팡이>, <본생경> 작품들은 마치 미래를 예견하듯, 비현실적이고 기념비적으로 보여진다. 그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인간이 부재한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유령처럼 부유하며 빛을 발하고 있는 듯 하다. 마치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바벨의 도서관』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책들로 소장되어있지만, 그속에서 진리를 담은 걸작이 존재한다하더라도 아무도 그것을 찾지 못하는것과 닮아 있다.

인터넷 시대의 사상가인 존 페리 발로우(John Perry BARLOW 1947-2018)는 1996년 사이버 스페이스 독립선언문에서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각자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나간다.” 라고 말했다.

발로우의 기본적인 인권보호 이념과는 달리 인터넷 공간에서 감시, 통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진정한 자유와 사유의 장을 펼치기 위해, 대다수의 배들과 반대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는 노재운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김유연 / 뉴욕 독립큐레이터


- 노재운(1971- )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스킨오브 사우스 코리아’(인사미술공간, 2004)를 시작으로 ‘목련아 목련아’(아뜰리에에르메스, 2011), ‘코스믹 조크’(대안공간풀, 2018) 등 개인전, ‘기억을 위한 보행’(뉴욕 뉴뮤지엄, 2008), ‘감각의 몽타주’(서울시립미술관, 2009) 등의 기획전, 광주비엔날레(2006), 부산비엔날레(2012), 미디어시티서울(2014) 참여. 현재 C12픽처스 대표(c12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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