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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색화 유감(有感)

윤진섭

이런 가정을 해 보자. 미국의 저명한 농학자인 존(John) 박사가 농촌진흥청의 초청을 받고 농장을 둘러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출국하기 하루 전날, 그는 뉴욕의 자택에서 간식으로 참외를 먹었다. 다음날 그는 한국에 도착한 뒤 곧바로 농장으로 가서 콩밭을 둘러보던 중 갑자기 변의(便意)를 느꼈다. 다급한 나머지 주변을 둘러보고는 아무도 안 보는 후미진 곳에 가서 실례를 했다. 시원하게 쏟아진 한 무더기의 똥 덩어리! 

문제는 지금부터다. 존 박사가 한국을 떠나고 몇 달이 지난 뒤, 그 자리에서 식물이 자라더니 노란 황금빛 열매가 열렸다. 이른바 ‘개똥참외’인 것이다.

문제 하나. 그럼 이 참외는 미국 참외인가, 한국 참외인가? 미국 사람이 미국에서 참외를 먹고 한국에다 퍼트렸으니 미국 참외일 듯도 싶지만, 한국의 토양에서 자랐으니 한국 참외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 참외가 하도 맛이 있자 시식을 해 본 농촌진흥청 직원들이 이 품종을 개발해 이름을 붙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씨를 퍼트린 사람의 이름을 따‘존(John)’이라고 하자는 사람, 아니다, 한국의 토양에서 자랐으니 이는 한국 고유의 품종, 따라서 ‘개똥(Gaeddong)’이라고 부르자 등등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Gaeddong’이가 우세, 몇 년의 시간이 흐르자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외국의 참외와는 다른 독특한 맛이 세계인의 입맛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남춘모, Beam, 2012, 코팅된 직물 위에 아크릴 칼라, 210×180cm


이른바 ‘단색화(Dansaekhwa)’라는 용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의가 딱 이 짝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비판의 세(勢)가 강해지는 것 같다. 단색화라는 용어가 부적합하다는 의견부터 시작해서 담론이 없다,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치우친 경향이 짙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백의민족에 근거한 백색미학은 오리엔탈리즘의 잔재다 등등 다양한 목소리가 흥미 본위의 언론을 중심으로 전달되고 있다. 단색화가 세계 미술계에서 부상된 이후 해외의 논자들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는데 반해 정작 이를 옹호하고 담론의 형성에 힘을 보태야 마땅한 한국 논자들의 논조는 비판과 비난 일색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우선 용어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비판하는 측의 요지는‘ 단색화(Dansaekhwa)’라는 용어에는 한국 단색화의 본질이 온전히 담겨있지 않기 때문에 부절적하다고 한다. 이 용어를 처음 제안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주장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어 의미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알프레드 코르집스키(Alfred Korzybsk y)의 추상사다리 이론을 빌릴 필요도 없이, 모든 이름이 대상의 실체적 본질을 다 담을 수 없다. ‘영수’는 영수다움을 다 드러내지 못하며‘한강’은 한강다움, 즉 한강의 속성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이 언어의 한계다. 

자연에 생태계가 있듯이, 언어에도 언어의 생태계가 있다. 언어의 변천사를 보면 어떤 언어는 사라진 반면, 어떤 언어는 꾸준히 살아남는다. ‘Dansaekwa’는 2000년에 처음 등장한 이래 20년이 흐른 지금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중이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우를 보면, 1950년대에 세계적으로 해프닝을 처음 시도한 구타이(Gutai/구체(具體)) 그룹과 60년대 후반의 모노하(Monoha/ものは(派))는 ‘Dansaekhwa’보다 훨씬 더 앞서서 세계적으로 통용되었으며, 세계 미술사에 등재된 바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이제 시작단계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우리는 언제까지 용어의 문제에 매달려 아까운 시간만 소비할 것인가. 지금은 인공지능의 시대다.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 단색화의 담론을 보강하고 구축해야 할 때인 것이다. 더 이상 시비는 그만!

- 윤진섭(1955- ) 홍익대 서양화과 학사, 동 대학원 미학과 석사, 웨스턴시드니대 대학원 철학 박사.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2004), 제3회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2016),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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